이번에는 어디에선가 날아오기 시작한 작은 불빛이 군무를 시작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개회식장 상공을 날더니, 다섯 개의 커다란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들이 서로 하나씩 물면서 빛의 오륜기를 공중에 만든 것이다. 평창의 밤은 그렇게 지상과 공중에 펼쳐진 불빛의 향연으로 바로 그전까지 전쟁위기라며 동계올림픽이 과연 개최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걱정하던 한반도에서 인류평화를 위한 횃불로 무사히 점화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는 땅과 하늘에 펼쳐진 첨단 영상쇼를 보며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 발전했는가에 놀라며 연거푸 환호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니 평창의 밤을 밝힌 두 불빛의 공연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평화의 비둘기는 우리나라의 기술이었지만 드론의 오륜기는 우리 기술이 아니라 미국 인텔사의 기술이었다. 두 공연에 모두 1200이란 숫자가 등장한다. 땅을 밝힌 비둘기 촛불은 1200여명의 우리 공연자들이 많은 연습을 통해 현장에 참여했다. 하늘을 밝힌 오륜기 불빛에도 1200여대의 드론이 참가했다. 그런데 땅에는 1200여명이 필요했지만 하늘을 나는 데는 단 한 명의 운영요원이 필요했다. 비둘기 촛불은 우리나라 KT가 고심 끝에 개발한 5세대(5G)기술이 촛불의 밝기 조절, 음악과 공연자들의 시간적 일치를 위해 적용됐다. 물론 대단한 기술이었고 노력이었다. 그런데 드론 오륜기는 드론이 출발해서 공중에 머물다 다시 날아가는 방향과 좌표까지를 위성항법기술을 써서 정밀하게 입력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정작 공연에는 한 대의 컴퓨터와 한 명의 요원이 해결했다. 비둘기 촛불도 고난도이지만 드론 오륜기의 제어기술은 그 차원을 훌쩍 뛰어넘은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아프리카 수단에 광대한 신권국가를 세우고 호령하던 알 마흐디는 1883년 11월에 오베이드라는 곳에서 8만명의 대군으로 영국군 8000명을 포위해 몰살시켰다. 그러나 15년 후인 1898년에는 옴두르만이란 평야에서 그들의 기병 1만1000명은 영국군에 접근도 못 하고 수백 미터 앞에서 몰살당하는데, 그것은 영국군이 새로 무장한 1분에 600발을 쏠 수 있는 맥심기관총 때문이었다. 기술의 차이는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전쟁에서의 신무기의 차이를 이번 기술의 차이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겠지만 요는 평창의 밤에 펼쳐진 기술대전은 그만큼 우리가 열세였다. 우리로서도 다른 나라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최대의 노력을 했지만 저쪽이 차원을 달리하는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처음 비둘기가 만들어질 때의 환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쉬움으로 바뀌어 나타나게 됐다.
우리가 피나는 노력으로 일본의 반도체를 뛰어넘어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세계사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기술을 따라가면 미국은 다른 차원의 기술을 선보여 우리를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고 있다. 그 비밀은 단순한 기술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다양한 배려와 앞선 상상력의 차이였다. 일본의 소니가 정밀한 카메라나 선명한 TV수상기를 만든 것은 하드웨어 기술이지만, 애플이 수천 곡의 음악을 쉽게 저장해 듣게 해준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라는 소프트웨어였다. 너무 작은 글자판을 누르느라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글자판을 키우거나 손으로 누르고 문지르기만 해도 되는 휴대전화, 목소리로도 작동되는 휴대전화를 만든 것도 인간에 대한 배려가 출발점이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
어쩌면 이제는 땅보다도 하늘을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현실을 이유로 인간의 꿈을 꺾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꿈과 소망이 이뤄지는 세상을 위해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한 모으고 밀어줘야 기술이 인간을 위한 멋진 별로 다시 빛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것에 욕심내지 말고, 남의 생각과 상상력을 인정하고, 인간을 위해 마음을 쓰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것으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마음과 지혜를 다시 합할 일이다. 그날 평창의 땅과 하늘을 밝힌 불빛은 바로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자는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