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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가능성과 희망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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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5 20:36:59 수정 : 2018-01-25 20: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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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이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가능성 키우지 않고 희망 사항만 노래할 뿐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다고 하면 다들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한다고 해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지루해 다른 일에 대한 호기심을 품는다.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강하게 다른 일을 꿈꾸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특정 나이가 아니라 전 연령층에 걸쳐 골고루 나타난다. 초등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으면 ‘시험 없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한다. 나이가 들어 은퇴한 사람은 지금보다 한 10년 또는 20년 정도 젊으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처지를 아쉬워하게 된다.

사람은 막연히 지금과 다르면 좋겠다거나, 여기를 벗어나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거나 하는 다양한 동기에서 지금 여기와 다른 삶을 꿈꾼다. 문학과 영상은 상상과 환상의 기법을 사용해 지금의 나를 순식간에 다른 세상으로 옮겨 놓는다. 종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신의 은총과 기적의 이름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철학은 현실과 이상을 문제로 설정하고 오랫동안 다뤄왔다.

사람이 지금의 현실에서 다음의 이상을 바란다고 해서 공짜로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스포츠에서는 하위 랭킹의 선수가 1위를 꺾고 우승 세리머니를 멋있게 하며 국가적 영웅이 되고자 염원할 수 있다. 재계에서 서열 100위 밖의 기업이 갑자기 1위로 도약해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세계의 기준이 되고자 염원할 수 있다. 이것은 문학과 예술적 상상력과 종교적 기적을 통해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 일은 인문학에서 가능하지 않다. 경험에 비춰 봐도 없고, 확률로 따져도 일어나기 희박한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현실이 이상에 다가갈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기 위해 가능성의 개념을 사용한다. 주체가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상을 이루기 위해 진실하게 노력하고, 사회적으로 그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이 조성돼 있다면, 현실을 이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가능성과 희망 사항은 구분해야 한다. 희망 사항은 앞으로 좋은 일이 있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기대의 목록을 나타낸다. 예컨대 희망 사항은 가수 변진섭이 부른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라는 노랫말과 닮았다. 밥을 먹으면 남자나 여자 모두 배가 나오기 마련이지 배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가능하지 않다.

좋은 사회는 사람의 가능성을 키워주고 또 가능성을 믿고 뒷바라지를 하고 사람도 가능성을 키워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려고 할 것이다. 보통 사회는 사람의 객관적 지표만을 중시하고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사람도 자연히 가능성을 키우려고 하지 않고 희망 사항을 노래할 뿐이다. 가능성을 믿고 그걸 키우면 이상이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희망 사항만 믿고 그걸 노래하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만 안겨주지 이상에는 결코 다가갈 수가 없다. 최근 비트코인 열풍과 정당의 이합집산에서 혹자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대상을 바꿔서 부르는 희망 사항의 노래라고 하면 지나친 비관일까?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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