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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남북 관계 최대 장애물 ‘北 비핵화’…넘을 방법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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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4 06:00:00 수정 : 2018-01-13 18: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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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평안북도 영변에서 5MW급 원자로가 가동되면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1990년대 이래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가들이 매달려온 핵심 어젠다이다.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기 위해 국제사회는 제재와 압박, 대화, 경제적 지원 등 군사행동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으나 실패했다. 비핵화 문제가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와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종료회의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공동보도문을 교환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남북관계 개선이 진전을 보려면 군사적 긴장 완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 전략이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로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 대표적 예다.

지난 9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평창올림픽의 북한 참가 등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회담 당일 발표할 정도로 대화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하지만 북한측 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회담 말미에 북한 비핵화 언급과 관련해 강한 불만을 쏟아내 향후 남북 대화에서 비핵화 문제가 최대 장애물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낳았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9월 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ICBM으로 추정되는 화성-14의 핵탄두(수소탄)이라고 적혀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이유

북한에게 있어 핵무기는 체제를 지키는 방패이자 창이며,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기 위한 동력을 제공한다. 말 그대로 만능 도깨비 방망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감행할 나라는 없다. 전차와 장갑차, 전투기 등 재래식 전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할지라도 핵공격 위협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확보하게 되면 핵전력은 더욱 막강해진다. 적 후방 깊숙한 지역에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떨어뜨리면 적국의 전쟁수행능력과 의지를 단숨에 꺾어버릴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더불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를 개발한 이유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전쟁개입 의도를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다.
핵무기와 체제 유지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 예산 평가 센터(CSBA)는 2008년 연구보고서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20킬로톤짜리 핵탄두 20개와 액체 연료 추진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국가에 대해 미국은 체제 변환(Regime Change)을 시도하지 못한다”며 “핵전쟁 위협 강도가 높아질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와 군으로서는 제한적 군사작전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냉전 시절 중동전쟁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1967년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이집트는 1973년 10월 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며 전면전을 공언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기 위한 제한적 수준의 전쟁에 그쳤다. 이스라엘이 전면전으로 오해하고 이집트에 핵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집트군의 손발을 스스로 묶는 결과를 초래, 이스라엘의 반격을 막아내지 못한 채 패하고 말았다.

한미 연합군이 작전계획 5015에 따라 북한을 공격할 때, 김정은 체제가 위협을 받으면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머리 위에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다. 이같은 위협 때문에 미국은 북한 전역을 점령하거나 김정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작전계획 5027을 적용할 수 없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3일 “우리는 (북한) 정권 교체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 중국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38선을 넘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힌 점도 북한의 핵무기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핵무기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적 무기다. 경제력, 국제적 영향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한국에 뒤지는 북한에게 한국을 흔들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핵무기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한국이 선제공격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북한이 생각하는 순간, 한반도 정세 주도권은 북한에 넘어간다. 도발도 대화도 북한이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국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수동적인 임기응변식 전략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한 입지를 벗어나기 힘들다. 

북한이 핵실험을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 서쪽 갱도에서 굴착활동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ANL)의 핵실험 전문가 프랭크 파비안 등은 11일(현지시간)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촬영한 상업용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내내 서쪽 갱도 입구 주변에서 광차와 인력들이 목격됐고, 파낸 흙을 쌓아둔 흙더미가 현저하게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북한 비핵화는 대화 목적이지 시작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가 미국을 겨냥한 것이며, 이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지난 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핵무기연구부문과 로케트공업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며 “적들의 핵전쟁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작전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도 9일 남북 고위급 회담 직후 “우리가 보유한 모든 최첨단 전략 무기는 철두철미하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회담 과정에서 비핵화 문제가 논의됐다는 보도를 비난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앞세워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한 투 트랙 전략을 남북관계에서 구사하고 있다. 신년사와 고위급회담 결과는 북한의 투 트랙 전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신년사와 고위급회담 결과에 대해 “남측이 원하는 대화, 관계개선, 평창올림픽 등에 협조할 수 있다. 그러니 핵은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면 그런(비핵화) 얘기는 다시는 꺼내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에서 해병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주관으로 지난해 9월 7일 계속된 서북도서방어훈련에서 해병대 6여단 장병들이 적 침투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며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이동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북한의 투 트랙 전략에 직면한 우리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핵문제는 미국과 상대하겠다”는 북한과 “비핵화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 사이에 낀 형국이다. 국내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선(先)비핵화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남북 대화를 통해 북한에 6자회담 복귀나 북미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해야 한다는 여론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정교한 대북 전략이다. 북한이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해 대응한다면 정부도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유지해야 하며 남북 대화과정에서 북한에 할 말은 해야 한다. 하지만 협상 시작단계에서부터 비핵화를 언급하면 군사당국 회담은 물론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대화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

대화가 중단되면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으로 이어져 한반도 정세가 급랭할 우려가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국면을 최대한 살려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남북 대화 성과를 북미 대화로 연결한 뒤 남북한과 미국이 함께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한 번의 협상이나 대화로 끝날 이슈가 아니다. 25년 넘게 끌어온 해묵은 문제로 제재와 압박, 대화 등 갖은 방법으로도 풀지 못한 고차방정식이다. 복잡한 수학 수식을 푸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북한 비핵화도 완전 해결까지 먼 길을 가야 한다. 이 길을 완주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일단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이고 평화적으로 개최한 뒤 비핵화나 평화협정,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을 장기적 안목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9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남북 대화가 열릴 때마다 “북한에 핵포기를 요구하라” “비핵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대표단에 정치적 부담만 안기는 행위라는 점에서 자제해야 할 행위다. 판문점에서 북한 대표단과 만난 우리측 대표들이 ‘회담장에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가면 어떤 비판을 받게 될까’라고 걱정하는 순간, 판문점은 남북 대화의 장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의 장으로 전락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남북 대화가 제대로 이뤄질까. 대화 파행→도발→제재와 압박이라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완전히 차단됐던 대화가 어렵사리 재개된 상황에서 북한을 상대로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남북 현안을 한꺼번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배고프다고 쥐약 먹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면서 협상 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비핵화로 연결하는 점진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교함과 인내심.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가장 큰 덕목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을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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