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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 올라도 중증장애인 월급은 2만원…노동권 인정 딜레마

입력 : 2018-01-01 13:00:00 수정 : 2018-01-01 13: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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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복도의 모습. 승강기 주변과 벽 여기저기에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예외 조항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하루 일당요? 한달에 2만원 받는데요.”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조건 개선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중증장애인을 자녀로 두고 있는 이 여성은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해 11월21일부터 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하고 40일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사가 있는 건물의 여기저기는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A4용지 호소문과 대자보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의 요구는 요약하면 ‘중증장애인 상대 최저임금 예외조항’을 폐지하고 중증장애인의 근로를 ‘노동’으로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법 7조에 따르면 정신이나 신체 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중증장애인 등)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 적용에서 뺄 수 있다.

그간 정부는 낮은 임금이라도 기업의 중증장애인 고용을 촉진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취지에서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반해 중증장애인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을 들어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 1급 정모(22)씨도 최저임금 적용을 바라고 있다.

정씨는 서울의 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보호작업장)에서 봉투를 접고 상표를 붙이는 일을 하고 있다. 특수학교 졸업 후 취업하려 했으나 쉽지 않아 이 시설에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일거리가 없으면 그는 비슷한 사정의 중증장애인 3명과 함께 시설의 한 방에서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대기한다. 운이 좋아 일거리가 들어오면 업무를 시작한다. 이렇게 만든 상품은 장애인생산품으로 분류돼 판매된다.

정씨가 이렇듯 일해 받는 돈은 한달에 2만원에 그친다. 아직 교육생 신분인 탓이다. 근로자로 전환되면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기는 하지만 매달 10만원 안팎이 고작이다. 중증장애인의 업무는 최저임금적용을 받지 않아 ‘노동’보다 ‘교육’과 ‘보호’의 의미가 강한 탓이다. 

정씨의 어머니는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 취업은 안 되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나가는 것”이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적장애 2급 장애인 임모(25)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임씨 역시 서울의 한 직업재활시설에서 주방 수세미 등을 포장하는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그가 받는 월급은 10만원. 여기에서 4대 보험 가입에 따른 본인 부담분을 떼고 나면 7만원 가량이 손에 쥐어진다. 여기서 또 식대가 차감된다. 이 때문에 임씨의 부모는 “아직 너는 적자다”라며 슬픈 농담을 건넨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의 복도 벽에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예외 조항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직업재활시설은 본래 장애인을 상대로 직업교육을 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와 달리 현실은 일거리를 찾지 못한 중증장애인들이 적은 수입에 만족하면서 머무르는 장소와 다름없다.

‘2016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은 19.7%에 불과했다. 이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경증장애인의 고용률(43.6%)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같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증장애인 노동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최저임금도 시간당 2630원으로 낮았다. 작년 시간당 최저임금 6470원과 비교하면 40% 수준이다.  

뇌병변 2급 장애인 고모(26)씨는 “비장애인에 비해 생산성이 부족하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월급이 너무 적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12월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 위에서 최저임금법과 노동기본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면서 이들 장애인이 느끼는 괴리감은 클 수밖에 없다. 

전장연 관계자는 “이번 농성의 의미가 중증장애인 임금을 비장애인 수준인 7530원으로 달라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저임금 제외 조항에 따라 중증장애인의 근로는 ‘노동’으로서 인정조차 못 받고 있다”며 “이렇게 중증장애인을 차별하는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공공 일자리를 신설해 일자리를 늘려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덧붙였다.
 
전장연에 따르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3년 한국 정부에 중증장애인 대상 최저임금 예외조항을 삭제하고 대안을 따로 마련하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정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진과 고용부 직원들이 농성 현장을 찾아 대화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공단 관계자는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 쪽 부담도 있고, 공단 기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논의가 필요한 일이라 단기간에 명확한 대안이 나오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고용부와 함께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글·사진=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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