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2013년 국내 개봉된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한 소녀의 거짓말 때문에 유치원 교사 루카스의 평범한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친구 딸인 클라라가 유치원 원장에게 “루카스가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하루아침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려 일자리도 잃고 이웃의 의심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 혐의를 벗은 후에도 주변의 마녀사냥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영화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죄없는 이들이 성범죄자로 몰려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박진성 시인이 얼마 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 자신을 미성년자라고 밝힌 한 트위터 이용자는 그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당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대두하던 시기라 파장이 컸다. 며칠 만에 성범죄자로 낙인이 찍혔다. 지난 9월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좌절한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8월에는 전북 무안의 한 교사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무고로 압박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죄없는 이들을 범죄자로 모는 무고죄가 급증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2734건이었던 무고죄는 2016년 3617건으로, 4년 사이 32.3%나 늘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 범죄 관련 무고 비율이 40%에 이른다. 지난해는 박유천 이민기 이진욱 등 유명 남성 연예인이 성폭행 혐의로 줄줄이 피소됐지만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성범죄 무고가 많은 것은 ‘법이 무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형법 제156조에 의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지만 대부분 벌금 정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무고로 기소된 2104명 중 불과 5%인 109명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되거나 약식명령이 청구됐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성폭력 무고죄 기준을 만들고 형량을 높여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2만여명이 동의했다. 급증하는 무고는 각박한 세태를 반영한다. 새해엔 무고(無辜)한 이가 무고로 무너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박태해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