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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 "마약 범죄, 처벌 위주 정책 한계…치료·재활에 중점 둬야"

입력 : 2017-12-24 18:58:42 수정 : 2017-12-24 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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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한국 정책 방향 전문가 대담 〈끝〉
김영호 을지대 교수/치료 등 비범죄화 정책/합법화 인식 경향 짙어/판매 때 과세가 합법화
박진실 변호사/치료·재활 형식적 운영/중독 상황 심층 진단해/치료 기간·방법 다변화
윤현준 인사랑硏 본부장/지정병원 운영 현실화/정확한 통계 확보 시급/의료용 마약도 폐해 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교정시설 내 치료 절실/많은 마약류 사범 접촉/정보만 얻어 출소 문제
각종 기록에 따르면 인간의 마약류 사용은 5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반면 마약류가 규제 대상에 오른 것은 20세기 초 서구 의학계에서 중독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면서부터로, 인류와 마약의 전쟁이 시작된 것은 겨우 100여년에 불과하다. 마약류에 대한 첫 국제협정인 헤이그 아편협약(1912년)을 토대로 미국은 1914년 연방마약법을 제정했고 세계적으로 처벌 위주의 범죄화 정책이 전파됐다.

하지만 1976년 네덜란드에서 ‘1인당 1온스(30) 이하의 마리화나 소지 및 사용’을 골자로 하는 아편법이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이후 마약류에 대한 비범죄화 정책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다. 범죄화 정책을 아무리 강압적으로 추진한다 해도 마약류 사용자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한계를 실감해서다.

전문가들은 비범죄화를 통해 마약류와 관련한 사망자 및 폭력 감소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각종 예산 및 사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76년 대마관리법에 이어 2000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우리나라는 아직 마약류에 대해 범죄화 정책이 주류를 이룬다. 각종 제도를 통해 마약류 중독자의 치료·재활에 대한 근거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 10회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전문가로부터 우리나라 마약류 정책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에는 김영호 을지대 교수(중독재활복지학)와 박진실 변호사, 윤현준 서강대 인사랑연구소 본부장,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이 참여했다.

김영호 을지대 교수
-올 한 해 ‘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시리즈를 진행하며 실상이 일반인의 인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 이를 부채질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윤현준 본부장=“마약류 중독 문제는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소수, 일부의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쟁과 양극화 등 각종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중독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곳곳에 있다.”

김영호 교수=“우리나라는 중독에 대해 일단 개인 차원의 문제로 치부한다. 중독자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왜, 어떻게 아픈가가 아니라 잘못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춘다. 선진국에서는 마약 문제가 의료·주거를 비롯한 일자리 등 일상 전반과 긴밀하게 연결됐다고 본다. 병원 치료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공중보건과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 등의 측면에서 각종 폐해를 줄이려는 종합적인 노력이 진행된다.”

박진실 변호사
-마약류와 관련해 범죄, 치료, 질병 등 다양한 시각이 있어 보인다.


박진실 변호사=“마약류 중독자는 일반 범죄자와 달리 스스로에 대한 피해자이고 뇌질환자이다. 현행법 위반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3자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라 보기는 힘들다. 중독상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음주사고에 비하면 확률이나 위험성은 월등히 낮다.”

-마약이라는 말만 들어도 혐오감이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데,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른 중독과는 어떻게 다를까.

김=“마약류 중독은 도박·인터넷·게임 등 다른 중독과 비교할 때 내성, 금단, 갈망, 조절 장애 등의 진행은 비슷하다. 하지만 신체적 증상 및 손상이 분명히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윤=“알코올 중독이 만성적인 질환이라면 필로폰 같은 각성제는 급성 중독이다. 뇌 자극이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흥분 빈도도 증가하기 때문에 쉽게 중독에 이른다. 이러한 차원에서 도박은 더 급성 중독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알코올 중독에는 관대하면서 마약류 중독에 대해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법 마약 외 의료용 마약 등 합법 마약으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조성남 병원장=“우리나라에서는 불법마약에 대한 범죄적 인식이 매우 강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면제나 마약성 진통제, 항불안제, 다이어트 각성제, 프로포폴 등 처방 약물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윤현준 인사랑 硏본부장
-치료·재활이 왜 이리도 힘든가.


조=“중독자들을 상담하거나 진료해보면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들도 중독이 질병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탓에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중독이 질병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치료방법과 과정을 알려줘야 한다.”

박=“마약류 중독자들을 위한 치료·재활 제도가 있지만 적용 기관의 인식 부족과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형식적으로 운영된다. 특히 치료감호제도는 중독 감정을 받더라도 검사가 청구하지 않으면 중독자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법원이 감정 결과를 보고 검찰이 청구하지 않더라도 직권으로 치료 감호 명령을 할 수 있다면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김=“국내 교정시설 수감자들은 기본적으로 현행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않는다.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심각하지만 교정시설 내에서의 낙인이 더 심각하다. 제대로 격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한 방에 투약자와 판매자를 함께 생활하도록 하는 건 정말 문제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
-중독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정시설을 왜 학교라 하는지 좀 이해가 됐다.


김=“치료·재활 교육 수용자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여성중독자 문제나 최근 10대와 20대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인데 이들을 위한 새로운 개입방법이 필요하다. 주 5일, 1일 8시간과 같이 주입식 강의의 틀을 벗어나 생애주기별, 욕구별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조=“교정시설 내 치료시설도 절실하다. 치료하지 않고 가둬만 두면 더 많은 마약류 사범을 만나고 관련 정보만 얻어 출소한다.”

-중독자들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와 과정, 이후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제각각인데 대책을 마련할 때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윤=“마약류 사용 기간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다르다. 초기 사용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현재 즐거움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아 단약이나 재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교육상담을 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20대에 시작해 20∼30년을 그냥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는 경우가 속출한다.”

박=“생애주기별 접근도 필요하긴 하지만 중독 이후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초범에게 제때 치료·재활이 이뤄진다면 중독을 벗어나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심층 진단을 통해 치료 기간과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초범이라도 단약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면 치료·재활이 쉽지 않다.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을 때가 단약 의지를 부여하기 좋은 시기이다. 단순 투약자들이 구속되면 교정시설에서 오히려 더 많은 마약류 사범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마약류 중독 쪽에도 변화가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약물 중독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의료, 법적 문제, 고용, 집, 가족지지 서비스 측면뿐 아니라 교정 프로그램, 기소·집행 유예, 비행청소년 문제 등 다양한 영역과 연결된다. 생활 복귀를 위한 총체적인 통합서비스가 필요하다.”

박=“중독자들의 가족을 만나보면 피붙이의 일임에도 터놓고 이야기하기는커녕, 사실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며 자책하는 것이 태반이다.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다. 부부가 갈라서며 힘들어지지만 자녀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중독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 가정에 복귀해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윤=“우리나라처럼 범죄화 정책이 심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필리핀의 삼진아웃 정책, 미국의 각종 패자부활 프로그램을 비롯해 유럽 지역에서는 비범죄화 정책이 일반적이다. 유럽에서는 단순 사용자는 구금이 아닌 치료를 권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투약자에게 계속 벌금을 부과해 치료로 유도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 사용자인지 오랜 중독자인지, 알선·판매자인지 등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처분 또한 변호사와 전문 사회복지사, 정신과의사가 함께 결정하기 때문에 중독자 입장에서도 중독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아들이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치료·재활이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김=“‘범죄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비범죄화를 합법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비범죄화는 기존 형벌 대상 중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 행위를 비범죄화하고, 설령 법익을 침해한다 하더라도 치료명령과 같은 형벌 이외의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론이다. 합법화는 판매 행위에 대해 과세하는 게 대표적이다. 비범죄화와 합법화는 분명히 다르다.”

조=“중독자들이 자조모임(Narcotics Anonymous)을 운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치료를 위해 중요한 과정이다. 제대로 효과를 기대하려면 전문적인 치료·재활과 연계돼야 하는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분위기, 안식처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제대로 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실태조사 및 통계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22곳이지만 한두 곳만 역할을 하는 치료보호 지정병원 운영도 현실화해 중독자들의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약류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훈련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회복자를 예방강사로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김준영 기자=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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