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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얼음꽃처럼 영롱하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입력 : 2017-12-22 10:00:00 수정 : 2017-12-20 2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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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지붕과 에메랄드빛 바다 … 성곽을 걸으며 만나는 지상낙원 / 13세기에 세워진 철옹성 같은 두터운 성벽 안에선 꿈같은 낭만이… / 바다 건너 태양이 솟아오르면 붉은 아름다움으로 도시가 물든다 차라리 이 풍광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 때나,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에 이를 한 번 보면 ‘순간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단 한 번 마주한 풍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진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을 느끼려면 성벽투어가 제격이다. 2㎞길이의 성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황색 지붕과 푸른 아드리아해가 대조를 이루는 풍광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성벽을 타고 오르던 붉음은 점점 더 진해져 마침내 전체를 감싸 안더니 미친 듯이 활활 타오른다. 푸른 바다는 그 붉음을 애써 식히며 간신히 코발트 빛을 유지하지만, 회갈색 성벽은 오롯이 그 붉음을 떠안고 있다. 애초 붉었다면 이리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테다. 제 색을 잃게 할 정도로 바다 건너에서 솟아오른 태양의 강렬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치 바다 위 떠 있는 섬이 불타고 있는 듯 다가온다. 하루에 한 번 이 낙원은 불타오른다. 어디서도 마주하지 못한 붉은빛을 계속 담아두고 싶지만,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붉음은 찰나에 사라져버린다. 그러기에 더 중독성이 강하다. 이 순간의 풍광을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할 듯싶다. 여행하며 접하는 많은 풍광 중 잊히지 않는 모습이 있다. 

여행을 마무리하거나, 나중에 여행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장 오래 잔상이 남는 풍광이 하나씩 있다.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적인 모습 외에 나만의 느낌으로, 나만의 기억으로만 남길 수 있는 ‘꽂히는’ 풍광을 만났다면 그 여행지는 더 특별하게 여겨질 것이다.

불과 20여년 전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유고슬라비아, 유고연방. 나이가 지긋한 이들에겐 오히려 이 이름이 더 익숙하다. 유고연방에서 독립하기 위해 소속 국가들이 1991년부터 혈전을 치렀다. 유고연방은 다른 언어와 문화가 있던 민족들이 인위적으로 합쳐진 국가였다. 종교적으로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는 가톨릭 국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는 정교 국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가톨릭, 정교, 이슬람 공존 국가다. 민족, 종교 등이 얽혀 있던 발칸반도의 유고연방 소속 국가들은 독립 전쟁을 치르면서 ‘인종 청소’라 불릴 정도의 참극을 빚었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대가를 톡톡히 치른 뒤 유고연방은 6개의 독립국으로 분리됐다.

유고연방에서 1991년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한 국가가 크로아티아다. 1995년 전쟁을 끝내고 독립을 쟁취해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크로아티아는 독일어 발음이다. 영어로는 ‘크로에이샤’로 부르고 현지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현지어로 ‘흐르바츠카(Hrvatska)’로 부른다. 크로아티아의 상징과 같은 체크무늬는 아드리아해의 해상 무역권을 놓고 이들과 경쟁하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관련 있다. 10세기 말 베네치아 총독이 크로아티아 국왕을 포로로 잡은 뒤 체스 경기에서 이기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경기에서 이긴 크로아티아 국왕은 풀려났고, 이 국왕을 기리기 위해 국기에 체크무늬를 넣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 곳곳에서는 국가명 ‘흐르바츠카’와 국기에도 그려진 붉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가 눈에 띈다. 마치 현실이 아닌 지상낙원에 왔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주는 것처럼 말이다.

두브로브니크의 골목에 들어가면 중세시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걷는 것이 행복한 지상낙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자동차로 두브로브니크를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다. 가는 길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움 지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로 넘어갈 때, 보스니아에서 다시 크로아티아로 갈 때 등 두 번의 여권 심사가 이뤄진다. 이런 과정은 두브로브니크를 더 특별하게 한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곳에 무조건 입장시키지 않겠다는 듯하다.

밤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면 주황색 지붕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조명을 받고 있는 성벽과 검은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검은 바다 위에서 밝게 빛나는 성벽 풍광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두브로브니크를 ‘검은 진주’로 탈바꿈시킨다.


스르지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두브로브니크 풍광.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10여분 동안 두브로브니크 전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성벽으로 둘러싸진 구시가지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요새란 말이 딱 와닿는다.(위 사진) 두브로브니크 성탑의 작은 창에서 본 로브리예나츠 요새.
진짜 진주의 모습은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투어를 해야 만난다. 길이 2㎞의 성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황색 지붕과 푸른 아드리아해가 대조를 이루는 풍광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바다 쪽 성벽을 걷다 보면 절벽 중턱에 있는 카페를 볼 수 있다. 부자카페다. 성인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 틈새를 지나야만 갈 수 있다. 크로아티아어 말로 부자는 ‘구멍’을 뜻한다.

무너진 집들도 눈에 띄는데 20여년 전 전쟁의 상흔이다. 지금 여행자들이 걷고 있는 성벽은 20여년 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 포격을 받아 무너졌다. 당시 유고연방군의 두브로브니크 공격으로 구시가지 건물의 80%가 피해를 보았다.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두브로브니크를 내려다보는 스르지산 정상에서 보는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10여분 동안 두브로브니크 전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성벽으로 둘러싸진 구시가지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요새란 말이 딱 와닿는다. 필레문, 루자 광장, 성 블라이세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등이 있는 구시가지의 플라차 거리에 이르면 자연스레 몸이 골목 구석구석으로 향한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아치형 스톤게이트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8세기 대화재로 도시가 불에 탔지만 스톤게이트 안의 성모마리아 그림은 훼손되지 않았다. 지금은 가톨릭의 성지로 불린다.
◆한 달 내내 ‘메리 크리스마스’

이맘때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사흘 정도만 머물면 아마 평생 들었던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더 많은 캐럴을 들을 수 있다. 호텔 로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 거리의 수많은 노점에서, 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캐럴이 나온다. 물론 싫지 않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이니 흥겹다. 흥에 겨운 듯 현지인들도 노점에서 맥주, 와인, 커피 등을 마시며 겨울을 만끽하고 있다.

빨강, 흰색, 파란색 타일의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르크 성당. 지붕 왼쪽은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라보니아를 상징하는 문장이, 오른쪽엔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자그레브에서는 우리에겐 생소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도심에 펼쳐진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크리스마스 직전 4주를 대림절이라 하는데, 이 기간을 축제처럼 즐긴다.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노점들이 문을 열고, 크리스마스 이벤트, 음식 축제, 공연 등이 펼쳐진다. 유럽 국가는 어느 도시가 더 화려하고 멋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인지 경쟁을 하는데, 자그레브는 유럽 여행 웹사이트에서 2015년부터 3년 연속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한 최고의 목적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장 화려한 크리스마스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자그레브인 것이다. 이번 대림절 기간엔 내년 1월7일까지 마켓이 열린다.


이맘때 자그레브의 매력은 밤에 있다. 도심 전체가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거린다.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필레문, 루자 광장, 성 블라이세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등이 있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플라차 거리.
자그레브 도심은 언덕 위 어퍼타운과 아래의 로타운으로 나뉜다. 중앙역 부근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낮보다는 저녁이 운치 있다. 번화가인 옐라치치 광장까지 마켓을 지나 올라가면 전통 공연, 클래식 공연 등이 펼쳐지는 메인 공연장이 나온다. 마켓 노점에선 크리스마스 소품, 인형 등을 팔고, 겨울에 마시는 데운 와인 글뤼바인(뱅쇼)과 소시지빵 등을 먹을 수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13세기 몽골 침략으로 파괴됐고, 18세기엔 화재, 19세기엔 대지진으로 망가진 후 다시 지어졌다.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에선 전통 공연, 클래식 공연 등이 펼쳐진다.
현지인이 크리스마스 장신구를 한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광장 오른편 언덕엔 자그레브 대성당이 있다. 13세기 몽골 침략으로 파괴됐고, 18세기엔 화재, 19세기엔 대지진으로 망가진 후 다시 지어졌다. 광장 위 언덕이 어퍼타운이다. 성벽과 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아치형 스톤게이트를 지나야 한다. 스톤게이트 입구의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세기 대화재로 도심이 불탔는데, 스톤게이트 안의 성모마리아 그림은 훼손되지 않았고, 이후 가톨릭의 성지가 됐다. 스톤게이트를 지나면 빨강, 흰색, 파란색 타일의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르크 성당을 만난다. 지붕 왼쪽은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라보니아를 상징하는 문장이, 오른쪽엔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자그레브의 매력은 밤에 있다. 도심 곳곳의 노천카페가 불을 밝힌다. 어디든 자리를 잡고 맥주 한잔, 와인 한잔을 즐기자.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6개의 호수와 90여개의 폭포가 다양한 풍광을 연출한다.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이 너머로 여러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는데, 웅장하기보다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찾으면 물색에 반하게 된다.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에 따라 하늘색, 밝은 초록색, 청록색, 진한 파란색, 회색 등으로 보인다.
자그레브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6개의 호수와 90여개의 폭포가 다양한 풍광을 연출한다.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 너머로 여러 줄기의 폭포가 떨어지는데, 웅장하기보다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국립공원을 찾으면 물색에 반하게 된다.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에 따라 하늘색, 밝은 초록색, 청록색, 진한 파란색, 회색 등으로 보이는데, 오전, 오후 햇빛에 따라 물색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자그레브·플리트비체·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여행정보

→한국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크로아티아 여행은 주로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자그레브나 두브로브니크에서 항공편을 모두 이용할 수 있어 용이하게 일정을 짤 수 있다.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주 11회 운항하며, ‘이스탄불∼자그레브’는 주 10회, ‘이스탄불∼두브로브니크’는 주 4회 운항한다. 특히 인천에서 이스탄불 경유 후 자그레브로 가거나, 두브로브니크에서 이스탄불 경유 후 인천으로 돌아올 때 이스탄불 대기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해 환승의 불편함이 매우 적다. 또 터키항공은 마일리지 프로그램 마일즈앤스마일즈 회원을 대상으로 생일 또는 기념일(전후 3일까지 이용 가능)을 맞이한 이들에게 기내에서 축하 케이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탑승 24시간 전까지 터키항공 사무소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자그레브에서는 내년 1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대중 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자그레브 대림절 기간에는 자그레브 케이블카(Zagreb Funicular)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기상 상황에 따라 케이블카가 운행을 안 할 때가 있다. 택시를 타고 전망대에 갈 수 있는데 흥정을 잘해야한다. 숫자만 말하고 뒤에 단위가 크로아티아 화폐 단위인 쿠나인지, 유로 인지를 말 안 할 때가 있다. 1쿠나는 우리 돈 약 18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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