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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페셜 - 우주 이야기] (40) 공상가에서 개척자로, 그들의 우주 도전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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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6 14:22:54 수정 : 2017-12-16 14: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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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 선장인 프랭크 보먼(맨 오르쪽)은 달까지 왕복에 성공한 뒤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손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출처=나사
◆우주기술 개척자·우주 기업가·물리학자에게 영감을 준 소설들

달 표면에 착륙하진 않았지만, 인류 최초로 달까지 간 이들이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이다. 아폴로 8호는 1968년 12월 지구에서 달까지 비행한 뒤 귀환에 성공한다. 선장이었던 프랭크 보먼은 지구로 돌아와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손자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낸다.

“우리의 우주선(아폴로 8호)은 바비 케인의 우주선과 마찬가지로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사되었습니다. (…) 지구로 돌아와 태평양에서 착수한 지점은 소설에서 나온 곳에서 겨우 4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바비 케인은 1865년 쥘 베른이 쓴 소설 ‘지구에서 딸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의 주인공이다. 보먼의 편지는 100년 전 달나라 여행의 과학적 원리와 출발·귀환지점까지 예견한 상상력의 거장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루어지게 될 미래를 꿈꾼 이들이 있다. 몽상가이자 공상가였다. 또 그들이 상상한 세계를 직접 실행에 옮긴 이들도 있다. 개척자였다. 우주 개발은 공상가와 개척자들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그 사이에 책이 있었다. 개척자들을 우주로 이끈 공상가들의 책. 다른 이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때 우주 개척자들은 그 책에서 우주에 대한 상상력과 영감을 얻었다. 우주로 갈 수 있는 아이디어와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우주 개척자들은 어떤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을까?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각색해서 만든 흑백 무성영화 '달세계 여행'의 한 장면
◆치올코프스키, 폰 브라운이 탐독한 SF 소설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는 발간 당시 인류의 기준에서는 현실성 없는 황당한 소설이었다. 책에 따르면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고 인생의 목표를 잃은 무기 개발자들이 뜻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를 제작한다. 그런 다음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을 타고 달로 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달나라 여행을 꿈꾸고, 사람이 실제 우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러시아의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1857~1935)였다.

치올코프스키는 인류 최초로 로켓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로켓 이론의 아버지’, ‘우주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반작용 장치를 이용한 우주여행’이라는 논문을 통해 인공위성의 비행 원리와 우주정거장, 액체로켓 엔진, 다단 로켓의 원리 등 현대 우주 공학의 핵심 내용을 모두 제시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업적은 로켓의 추진 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방정식을 제시한 것이었다.

한때 전 세계의 우주 개발을 선도했던 러시아, 특히 우주 개발자들에게 그는 영웅으로 통한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도 그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발사되었다.

러시아의 과학자로 '로켓 방정식'을 제시한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왼쪽 사진)와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딸까지'의 표지에 실린 이미지.
치올코프스키는 어렸을 때 성홍열에 걸려 청력 대부분을 잃었다. 13세에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해 16세에 모스크바로 와서 도서관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이때 빠져든 책이 바로 쥘 베른의 소설이었고,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 바로 지구에서 딸까지였다. 그 책을 읽으며 우주를 상상하고, 그리로 날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치올코프스키는 당시에 이렇게 적었다.

“우주 공간과 교신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등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물론 쥘 베른의 소설에서 과학적 영감을 얻은 우주 개척자는 ‘로켓 방정식’을 제시한 그만이 아니다. 잠시 후 살펴볼 ‘로켓의 아버지’ 로버트 고다드, 현대 우주 발사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등도 어린 시절 지구에서 달까지를 비롯한 ‘지구 속 여행’과 ‘달세계 여행’ 등을 읽으며 우주에 대한 꿈과 과학적 상상력을 키웠다.

또 우주 분야 외에도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 ‘15소년 표류기’ 등은 지금도 모험과 도전 정신을 고취하며 과학기술 발전에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켓의 아버지’ 고다드를 우주로 향하게 한 소설

러시아에 치올코프스키가 있다면, 미국에는 로버트 고다드(1882~1945)가 있다. 고다드는 물리학을 전공한 교수로, 로켓 분야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 로켓을 개발한 선구자였다.

그는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을 개발해 시험에 성공한다. 비록 첫시험에서는 2.5초 동안 겨우 12m를 날았지만,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액체 연료 로켓을 실물과 시험으로 입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세를 자동으로 유지하며 비행할 수 있도록 자이로스코프를 탑재한 ‘자이로 로켓’도 개발한다.

첫 시험의 5년 후에는 이 로켓을 2600m까지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 연료를 소진한 로켓이 안전하게 땅에 착지할 수 있는 낙하산 기술까지 선보였다.

영국의 공상과학소설 작가 조지 웰스(왼쪽 사진)와 대표작 '우주전쟁'의 초판 표지.
훗날 ‘로켓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다드 역시 어린 시절은 평탄하지 못했다.

몸이 마르고 허약해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고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야 했다. 대신 그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물리학 관련 책을 빌려 읽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해에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을 읽고 본격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이 책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이듬해인 1899년 앵두나무의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내려와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올라갈 때와 다른 소년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존재가 매우 뜻 깊게 여겨졌다.”

나무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당시 나무에 올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우주 비행기술 개발에 한평생 전념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날은 10월19일이었고, 고다드는 그날을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고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

우주전쟁은 지금도 공상과학(SF) 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2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미 웰스는 ‘타임머신’과 ‘투명인간’ 등의 소설로 명성을 얻은 작가였다.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운하도 있다”는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관측 결과를 듣고, 이에 영감을 받아 우주전쟁을 쓰게 되었다.

2005년 할리우드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 '우주전쟁'의 한 장면.
그는 거대한 우주와 선진 외계문명 앞에서 인류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우주전쟁 이후 ‘외계인의 지구 침략’은 SF 소설과 영화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또 이러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웰스는 소설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면서 우주에 대한 상상력의 단계를 한차원 높였다는 호평도 동시에 받았다.

이런 소설에 영감을 받아 평생 로켓 개발에 전념했던 고다드였기에 다른 SF 작가들의 존경도 받았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자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렇게 말했다. “고다드, 우리는 달에 갔어요.”

◆일론 머스크도, 다이슨도 SF 소설에서 영감 얻어

과학자들만 책에서 우주적 상상력과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다. 기업인도 영향을 받았다.

민간 우주여행과 인류 화성 이주를 비롯한 재활용 로켓, 초대형 ‘BFR’(대형 펠컨 로켓) 개발, 진공 개념을 이용한 신개념 이동수단 하이퍼루프 등 손을 대는 프로젝트마다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가 있다. 일론 머스크(1971~) 스페이스X CEO(최고경영자)가 주인공이다.

상식을 넘어서는 도전과 과감한 투자에 주저하지 않는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무모한 공상가’라는 평가와 함께 인류의 미래를 앞당기는 ‘개척자’라는 존경도 공존하고 있다. 무모해 보이는 하는 그의 과감한 도전과 투자로 우주개발의 시계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흐르게 된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왼쪽 사진)와 그에게 영감을 준 더글러스 애덤스의 공상과학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표지>
이런 일론 역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책은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꼽은 작품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다.

이 책은 주인공 ‘아서 텐트’가 자신이 살고 있던 집과 행성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구에서 우주로 가는 배를 빌려 타고 은하계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범 우주적인 거대한 농담’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가 뒤섞인 SF 소설이다.

일런 머스크는 황당해 보이는 이 책이 더 큰 질문을 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SF 소설을 읽으며 던졌던 질문이 자신의 투자와 도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그의 과감한 투자와 상식을 뛰어넘는 도전은 무한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명한 물리학자도 SF 소설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다. 심지어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로 과학기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몽상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프리먼 다이슨(1923~) 박사는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물리학계에서 이름이 높다. 이 방정식이 20세기 물리학에서 가장 정밀한 이론이라 평가받는 양자역학의 산파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양자역학에 그치지 않고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크기의 우주로도 향해 있다. 원자력을 추진제로 사용하는 행성 간 탐사선을 개발하기 위한 ‘오리온 계획’에도 참여했다. 이밖에도 태양에서 발생하는 태양풍을 이용해 우주를 항해하는 기술과 우주 식민지 개발, 항성 전체를 둘러싸 그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다이슨 구(球)’ 등 미래 우주기술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다이슨 구(球)’ 상상도. 출처=사이언스얼러트
다이슨 박사가 영향을 받은 책은 올라프 스태플든이 1937년 발간한 ‘스타메이커’라는 SF 소설이었다. ‘세계 10대 SF 소설’에 포함될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 우주의 여러 문명을 접하면서 창조와 소멸을 반복하는 창조주 ‘스타메이커’를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다이슨 박사는 이 소설에서 천체를 인공적으로 둘러싸는 거대 구조물에 대해 읽고 아이디어를 얻어 1960년 ‘인공적 항성 적외선 복사선을 찾아서’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다이슨 구 이론 역시 이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책은 식지 않는 우주적 상상력의 '추진제'

많은 과학자가 그렇듯 우주 개척자들 역시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소한 것에서 엄청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다.

탄광촌에서 자란 소년이 나사의 로켓 개발자로 성장한 실화를 그린 ‘옥토버 스카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때 광부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호머 히컴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뉴스를 접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캄캄한 탄광 갱도 대신 푸르른 창공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히컴은 친구들과 함께 모형 로켓 제작에 몰두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 그의 우상인 브라운 박사의 격려를 받게 된다. 마침내 로켓 엔지니어로 성장한 히컴은 나사에 들어가 실제 개발에 참여한다.

국내에서는 이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10월의 하늘’(October Sky)이라는 재능 기부 프로젝트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향하는 로켓은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물론 그 힘은 추진제에서 얻는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도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한다. 그 힘을 얻는 원동력은 다양하다. 엄청난 돈과 인력,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우주를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힘은 식지 않는 열정과 영감일 것이다. 많은 우주 개척자들이 책에서, SF 소설에서 그런 원동력을 얻었다. 한권의 책이 그들을 우주로 향하게 했다.

모든 것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탄광촌에서 자란 소년이 우주의 꿈을 키워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로켓 엔지니어가 되는 실화를 그린 소설 '옥토버 스카이'는 1999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사진은 이 영화의 한 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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