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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 인문상식] 사람 자아의 통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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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4 20:56:56 수정 : 2017-12-14 20: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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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되지 않고 신뢰 없으면 관계 끊어져 / 시대가 부과하는 정신적 고통 성찰해야
사람의 자아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 이상일까. 보통 우리는 사람이 때때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더라도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일관성이 없으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 없는 만큼 신뢰하기도 어렵다. 예상이 되지 않고, 신뢰가 없으면 사람은 관계를 지속할 수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친한 사람이 의외의 언행을 하게 될 경우, 바로 그 자리에서나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전번에 평소 당신답지 않게 처신했어”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질문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평소에 어떠한 일관성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과 그 사람이 일관성을 벗어나게 되면 적절한 설명과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말과 함께 그 사람을 멀리할 수 있다. 철학과 법학에서도 사람이 일관된 삶의 태도를 갖는다는 자아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자아의 통일성이 전제돼야 도덕적·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람이 이전에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책임 있는 일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외의 일들을 보면 사람이 인격의 통일성을 가졌다고 믿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중학생은 같은 연령대의 친구를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정치 지도자는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갈등을 부추겨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며, 대형 재난 사고가 발생하면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조롱하는 언행을 일삼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뉴스에서 다중 인격이니, 사이코패스니 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제임스 맥어보이가 영화 ‘23 아이덴티티’에서 24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케빈’을 연기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자아가 하나가 아니라 무려 24가지나 된다고 하니 그냥 소설적 상황으로 생각하겠지만, 영화의 케빈은 1955년에 태어나 양아버지로부터 성 학대를 받는 환경 등으로 24가지 인격을 가지게 되고 결국 여대생을 납치하고 강도행각을 벌인 빌리 밀리건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 주위에 케빈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할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또 다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케빈을 정신병원 등에 감금해 격리시키려고 한다. 즉 케빈과 우리의 거리를 떼어놓는 사회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런데 다중인격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인격의 변신을 통해 자신을 지키려는 개인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중인격으로 빚어지는 범죄와 사고는 당사자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고 사회적으로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다중인격을 평소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괴물로 돌변하는 흥밋거리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개인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과하는 고통의 양과 질을 성찰해야 하고, 개인도 시대로부터 받은 고통을 극복하는 다양한 길을 찾아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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