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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의심과 불신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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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30 20:48:34 수정 : 2017-11-30 20: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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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근거 요구하며 진실 찾아가는 활동
불신은 대화 않고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
중학교 다닐 때 외운 영어 단어는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부모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도 삶의 중요한 덕목이나 가치가 된다. 어릴 때 자주 듣는 말 중 믿음과 의심에 대한 내용도 적지 않다. ‘사람을 괜히 의심해서는 안 돼’라는 실례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을 의심하기보다 믿어야 한다는 문화에 살다 보니 ‘의심’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할 생각으로 여긴다. 철학과 인문학에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려고 한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으려면 먼저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의심을 끄집어 내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라는 말이다. 결국 더 이상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의심을 권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상과 달리 철학과 인문학에서 도대체 왜 의심을 자꾸 해 보라고 권유할까. 첫째, 의심은 확실한 근거와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활동이다. 불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내놓지 않고 뭔가를 주장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피울 수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워낙 큰 소리를 내서 떠들기 때문에 주위의 관심을 끌 수가 있다. 큰 소리가 거짓으로 판명 난다면 아무리 그럴싸한 주장과 미사여구로 수식된 표현도 들을 만한 가치가 없게 된다. 이에 누군가의 주장이 미심쩍으면 근거가 확실하고 이유가 타당할 때까지 의심을 그만둘 수가 없는 일이다.

둘째, 의심은 사람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와 쌓은 지식을 끊임없이 넘어서서 지속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활동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문명을 계속 발전시켰다. 만약 특정 시점의 문명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단계라고 생각하며 만족했더라면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일어날 수가 없다. 인간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의심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이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켜서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의심은 자연스러운 사유 활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의심을 권장하기보다 금기의 대상으로 바라볼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가 의심과 불신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어떤 주장을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고 믿게 된다. 의심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 확실하고 정당한 사실을 찾으려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반면 불신은 누가 무엇을 말하더라도 이미 듣지도 않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불신은 처음부터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천동설을 의심했기 때문에 지동설을 찾아냈고, 사람이 새와 달라 날 수 없다는 생각을 의심했기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는 의심의 노력을 통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의심하는 능력으로 빛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으면서도 의심에 낯설어할까. 우리가 기존에 있는 것을 믿고 따르면 모든 일이 잘 굴러가는 농업사회의 기억에 깊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으려면 불신의 골을 넘어 합리적 의심을 편하게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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