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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용사회 뿌리 흔드는 159만명 빚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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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9 23:43:04 수정 : 2017-11-29 23: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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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소액 연체자 159만명의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자 83만명과 대부업체 등 민간 금융회사 채무자 76만명이 대상이다. 이들의 빚은 6조2000억원에 달한다. 탕감액의 평가액을 30%로 가정할 경우 공적자금과 금융회사가 부담할 자금은 1조8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선심은 정부가 베풀고 부담은 국민이 떠안는 격이다.

사상 유례 없는 ‘전액 탕감’은 빚더미에 허덕이는 노약·취약 계층에겐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예상되는 부작용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신용질서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양심적으로 성실히 빚을 갚은 사람은 손해를 보고, 갚지 않은 사람은 이익을 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크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빚 갚으면 바보”라는 소리는 벌써 쏟아지기 시작했다. 탕감 대상에서 빠진 장기·소액 연체자들이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도덕적 해이는 부정 심리를 낳을 여지도 크다. 금융위원회는 국세청·국토교통부·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재산·카드·주택임대차 상황을 보고, 탕감 여부를 따지겠다고 했다. 부정 감면자를 ‘금융질서 문란자’로 등록해 최장 12년 동안 금융거래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왜 국민임대주택에 외제차가 수두룩하고, 대형 아파트에 살면서 거액 세금을 체납한 사람이 들끓겠는가. 정부가 스스로 신용질서를 왜곡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범죄 기준을 만드니 그야말로 ‘옥상옥 정책’이다.

‘벼랑 끝 채무자’를 돕는 제도는 탕감이 아니더라도 많다. 개인파산·회생·신용회복 제도가 모두 어려운 채무자를 구제하는 장치다. 연간 약 10만명이 이들 제도를 통해 땀 흘려 신용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제도를 제쳐둔 채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것은 신용사회의 질서를 허무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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