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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낭만닥터' 이국종, 韓 의료계 품격 드높였다

입력 : 2017-11-28 05:00:00 수정 : 2017-11-27 08: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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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군인을 치료한 아주대병원 이국종 중증외상센터장(교수)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권역외상센터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의 권역외상센터 추가 지원 청원에 대한 동의가 급증을 넘어 폭증하고 있습니다. '중증외상 분야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지원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7일 올라온 이 청원의 동의자 수는 현재 '조두순 출소 반대'(54만6000여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데요.
이처럼 청원에 대한 동의가 쇄도한 것은 북한 군인 치료 과정에 대해 이 교수가 브리핑한 뒤 벌어진 논란도 일조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1차 브리핑에서 "북한 군인의 파열된 소장 안에 수십마리의 기생충이 있었고, 복강에서 분변과 함께 소량의 옥수수가 발견됐는데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 교수는 22일 브리핑에서 "의료기록 비공개 원칙과 언론의 알 권리 보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며 "북한군 환자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해 각종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중증외상 환자가 생기고, 이 가운데 약 3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봐도 한국은 무려 35.2%에 달해 미국, 독일, 일본의 15∼20%보다 훨씬 높은 실정입니다. 매년 중증외상 환자 1만여명이 제대로 된 치료시스템이 없어 죽어간다는 것이라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권역외상센터 추가 지원에 대한 여론이 봇물을 이루자 보건당국이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등이 소속된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귀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 내 권역외상센터 추가 지원 청원에 수십만명의 서명자가 몰리는 등 국민적 관심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시설과 인력지원을 더 확대하는 등 지원체계 전반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열악한 환경과 처우로 전문의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기피하는 현실을 고려해 인력 운영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권역외상센터 내 각종 의료시술 과정에서 진료비가 과도하게 삭감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수가체계를 다듬기로 했다.

복지부는 "응급시술은 별도 가산 수가를 책정해 지원해주지만, 충분히 보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권역외상센터 내 의료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보험급여를 해줄 수 있는 시술과 약품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닥터 헬기를 이용해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의료수가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의료행위나 약제에 대해서는 급여 기준을 정해놓고, 의료진이나 의료기관이 이 기준을 지켰는지 심사, 평가하고 불필요한 진료를 했다고 판단하면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 진료비를 깎는다. 이렇게 삭감된 의료비는 고스란히 병원이 책임져야 한다.

◆매년 중증외상 환자 1만여명 제대로 된 치료시스템 없어 죽어간다

앞서 이 교수는 환자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시행한 시술 진료비가 삭감 당하는 등 중증외상 외과 분야의 해결되지 않는 의료수가 문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개선대책을 호소한 바 있다.

그는 아주대 교수회 발행 소식지 '탁류청론' 50호(9월호)에 쓴 글에서 "원칙대로 환자를 처리했고 써야 할 약품과 기기를 썼으며 수술은 필요한 만큼 했지만 삭감 당하는 현실에 개탄했다.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나 추락 등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외상전담 전문의가 365일 24시간 대기하고, 외상환자 전용 수술실·중환자실을 갖춘 중증외상 전문치료센터다.

한국은 해마다 중증외상 환자가 10만명 이상 발생하는데도, 중증외상 진료 체계가 취약한 편이다. 한국의 '예방 가능 사망률'은 35.2%(2010)에 달한다. 사망자 3명 중 1명 이상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일본 등은 이 비율이 10∼15% 정도에 그친다.

정부는 예방 가능 사망률을 2020년까지 20% 밑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2년부터 전국에 권역외상센터를 지정하고 있다. 수도권·강원, 충청권, 전라·제주권, 경북권, 경남권 등에 총 16곳이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어 있다. 아주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9곳은 시설·장비 등 기준을 완비하고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면 시설·장비 구매비로 80억원을 받고, 연차별 운영비로도 7억∼27억원을 지원받는다.

◆훈련중 다친 韓·美 병사 치료…北 병사 살릴 정도로 충분한 연습된 듯

이런 가운데 주요 외신들도 이 교수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북한 귀순병의 회복을 위해, 한국인들이 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란 제하의 기사에서 이 교수를 조명했다.

WP는 "대담하면서도 세심한 매력남 의사 없이는 의학 드라마가 완성되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의 '맥드리미'(McDreamy)는 이 교수"라고 보도했다. 맥드리미는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남자 주인공 닥터 셰퍼드의 애칭으로, 꿈속의 왕자와 같은 완벽남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다.

WP는 북한 병사의 귀순 당시 북한군 4명이 군사분계선(MDL) 너머 남쪽으로 총격을 가하고, 뒤에서 40여발을 조준사격하는 등 유엔군사령부의 공개로 드러난 그의 극적인 탈출 장면을 소개했다. 이어 미군 헬기로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이뤄졌던 아슬아슬한 치료과정을 전하고, 치료를 맡은 이 교수의 이력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한 석해균 선장의 수술을 맡아 이미 주목받은 바 있으며, 36시간씩 일하며 현재 한쪽 눈이 실명이 된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메디컬센터 중증외과에서 연수를 받았고,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기리에 방영된 의학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등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한해에 3만명씩 외상으로 죽어가지만 마땅한 시설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정부에 외상센터 기금을 요청, 지금은 교통범칙금의 20%가 외상센터로 간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에 온 국민의 엄청난 관심이 쏠린 만큼 군 정보장교들이 북한 병사를 심문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교수가 이를 막았고 심문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이 교수에게 외상 외과의로서 미국 응급의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한국의 엄격한 총기 규제로 좀처럼 총상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2010∼2015년 발생한 총기 살인이 미국은 8592건이지만, 한국은 10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 교수가 군사훈련 중 다친 한국과 미국 병사들을 치료해왔으며, 이것이 이번 북한 병사를 살릴 정도로 충분한 연습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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