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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북극권 극한의 마을… 가는 곳마다 따뜻한 情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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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5 10:04:14 수정 : 2017-11-25 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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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레나강 하류 은둔의 마을/타아스 투무스, 지간스크, 크스타티암/‘문학작가의 마을’ 타아스 투무스/야쿠트 의식 ‘불의 헌제’로 이방인 맞아/악령 접근 막아주는 ‘살라마’도 인상적


‘에벤키족 집단 거주지’ 지간스크
韓보다 조금 넓어… 극동 탐험 거점지
겨울만 8개월…
산가르 주민들의 환대를 뒤로하고 우리 탐사팀은 보트에 탑승하여 레나강 하류로 향했다. 폐광으로 마을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 버려진 마을 타아스 투무스가 첫날 숙영지였다. 1958년 마을 근처 1800m 깊이 시추탑에서 가스가 발견된 이후 한때 주민 수가 500여명으로 늘어났던 타아스 투무스 마을은 그 불꽃이 사그라지자 마을도 사라졌다. 그러나 이 마을은 사하공화국에서 유명한 시인과 문학 작가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표도로프, 안드레이 크리보샤프킨, 루기노프가 그들이다.

우리는 이들이 매년 여름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집필했던 통나무집에서 숙영하였다. 타아스 투무스에는 탐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까운 마을에서 수십명의 주민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탐사단이 도착하자 제사장 복장을 한 주민이 우리를 맞이하는 의식인 불의 헌제를 진행하였다. 전통적인 야쿠트 의식의 일종으로 지난 일 년 무탈하게 생활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일 년 어려움 없는 생활을 기원함과 동시에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불의 헌제는 불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내 다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종교의식이다. ‘알그스’라는 축복의 기도를 읊으면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말젖을 발효한 ‘쿠무스’ 음료와 팬케이크를 손님에게 제공하였다.

불의 헌제가 끝나자 야쿠트인의 전통의식인 ‘살라마’를 실시하였다. 우리 탐사단원들은 말총으로 만들어진 새끼줄에 형형색색의 작은 리본을 매었다. 리본을 매는 동안 자기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살라마’는 야쿠트인들의 여름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다. ‘살라마’는 하늘의 신성한 신이 현세로 내려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살라마의 외형은 한국의 서낭당과 비슷하다. 살라마 노끈들이 형형색색 묶여 있는 지역이 신성불가침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소도와도 비슷하다. 오색의 매듭으로 지어진 말총 끈들이 둘러싼 지역은 신성과 금단의 지역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침범하거나 허물면 안 된다. 특히 악령으로부터 수호되는 신성한 의미의 살라마는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에 매년 2회 정도 의식이 거행된다. 타아스 투무스 인근 주민들은 살라마 의식을 통하여 우리 탐사단이 묵는 오두막 근처를 악령이 근접하지 못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불의 헌제가 끝나고, 불의 신에게 음식 일부를 제물로 바치고 남은 음식을 주민들과 탐사단들이 배부르게 먹었다. 북극권 신과 합일된 우리는 레나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오리 그리고 말고기, 야생에서나 채집할 수 있는 야생 열매로 만들어진 잼 등과 함께 보드카와 쿠무스로 길고 긴 북극권의 밤에 빠져들어 갔다. 

폐광으로 마을 주민이 뿔뿔이 흩어져 버려진 타아스 투무스의 마을에서 제사장 복장을 한 주민이 탐사단을 맞이하는 의식인 불의 헌제를 지냈다(오른쪽 사진). 탐사단원이 악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살라마 의식에 따라 말총끈에 리본을 묶고 있다(맨 위 사진).
아침 일찍 타아스 투무스에서 레나강 하류에 있는 40개의 무인도로 출발하였다. 40개의 무인도에서 야영을 한 우리는 북극의 아름다운 노을과 백야를 지켜보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넓고 흰 그리고 부드러운 모래가 쌓인 백사장을 거닐었다. 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 퉁구스계인 야쿠트인과 에벤키인들이 그러했듯이 레나강에서 낚시하여 그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굽거나 튀겨 먹었다. 레나강 물고기에는 잔가시들이 많아서 먹기에는 불편했지만 흰 속살의 쫄깃한 맛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야영하는 동안 바람이 세게 불어 보트가 출항할 수 없었다. 탐사단들은 레나강 탐사를 시작하기 전날 북동연방대학교에서 러시아 긴급재난구조청 직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레나강에 풍랑이 일거나 보트가 조난 혹은 전복됐을 때를 대비한 교육이었다. 보트를 운영하는 선장은 레나강을 탐사하는 내내 하루에 두 번씩 GPS로 우리 위치를 재난청에 보고하게 돼 있었다. 스푸트니크와 연결되는 전화로 40개의 무인도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 상황을 보고하려고 애쓰는 선장의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의 재난안전시스템의 우수성에 감사를 드렸다. 우리 보트와 마찬가지로 숙영지 맞은편에도 레나강을 운항하는 벌크선과 화물선들이 바람이 잦아질 때까지 정박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간스크 마을 에벤키 주민들이 탐사대를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
10여 시간의 기다림 끝에 밤 10시30분 이동이 허락됐다. 밤새 달리던 보트가 어느 기슭에 접안했다. 그곳이 북위 66도 북극권 경계표시지역이라고 하였다. 표시만 달랑 있는 강변에서 선장은 자신의 항해가 안전하게 끝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선장은 커다란 바위 위에서 한국의 제사와 비슷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제물 일부를 강과 들의 신에게 바쳤다. 한국의 ‘꼬시네’와 비슷한 행위였다. 이러한 만주 퉁구스계 종족들의 삶은 어쩌면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잠깐의 강변 산책을 마치고 에벤키족들의 집단 거주지인 지간스크로 향했다. 희미한 물안개가 낮게 가라앉은 레나강, 그 너머에 지간스크라는 표시가 보였다. 지간스크는 북위 66도 33분에 위치한 북극권 마을이다. 지간스크군은 한국보다 조금 큰 14만㎢로 레나강이 군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르며 흘러간다. 동쪽에는 베르호얀스크산맥의 거대한 산들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서쪽에는 야쿠티아 대평원이 놓여 있다. 군의 주도인 지간스크 마을은 북극여우 모피, 여우, 흑담비 등 수렵과 철갑상어, 연어, 시베리아산 송어, 붕어, 붕장어 같은 어획으로 살아간다. 지간스크라는 단어의 뜻은 에벤키어로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간스크군 예산 대부분은 사하공화국으로부터 지원받아 충당한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1635년 러시아 코사크인이 세운 지간스크 요새는 레나강 주변 식민지로부터 현물로 모피와 흑담비를 모집하는 요충지로, 그리고 북극 지역과 극동을 탐험하는 거점 역할을 해왔다. 1720년에는 500여명의 퉁구스계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1917년 이전까지 시베리아 유형지 중 가장 참혹한 지역으로 이름나 있었다. 이곳으로 유형 간 죄수 중 돌아온 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겨울철이 장장 8개월간 이어지며, 섭씨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지속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러시아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4개월 지난 뒤 받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극지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야 지간스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무선국과 선착장, 그리고 공항이 건설됐다. 순록 사육과 모피산업이 육성되었고, 수렵과 어업 그리고 목축업이 시작됐다.

현재 에벤키인들이 50% 이상 살고 있는 지간스크에는 먼 옛날 자신의 종교인 러시아정교를 버리고 무녀가 된 ‘아그라페나’라는 여성에 대한 전설이 있다. 18세기에 쓰인 설화집에 의하면 지간스크에 정착한 러시아인과 퉁구스계 민족들이 마법사이며 무서운 마녀인 아그라페나를 두려워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무녀에 대한 시간·공간대가 뒤섞여 기록돼 있어 그 진실은 전설 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 무녀에 대한 전설은 아파나시 야코블레비치 우바로프스키 작가에 의해 재탄생됐다. 러시아 남성과 야쿠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우바로프스키는 어릴 때부터 두 개의 문화 속에서 교육받았다. 19세기 중반 그의 작품 속에서 아그라페나가 살던 장소와 그 무녀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전설이 되살아났다. 그녀의 사랑을 받는 자는 행복하고 그녀의 미움을 받는 자는 불행해지는 신기 있는 무녀 아그라페나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간스크의 바위산 속 작은 집에 존재하고 있다.

지간스크에서 레나강을 따라 북쪽으로 90㎞ 올라가면 크스타티암이라는 에벤키 마을이 있다. 400여명이 사는 마을의 경제활동은 순록 사육과 사냥 그리고 어업이다. 젊은 남자들은 순록을 사육하러 눈 덮인 툰드라로 가고 없었고 마을에는 여성과 노약자,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크스타티암에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집안의 가장인 남자들이 순록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마을 주민들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인터넷이 있고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을에 태양광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 크기이면 마을 전체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크스타티암은 툰드라와 타이가의 접경지역에 놓여 있고, 짧은 여름 동안 식물과 나무들이 자라 키 작은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다. 마을은 영구동토지대 위에 지어져 있어 모든 건물이 지면으로부터 40㎝ 떨어져 있다. 그 때문에 파일을 박고 주춧돌 위에 놓인 건물이 여름 한 철 지표면이 살짝 녹아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마을 언덕 중간에 있는 얼음 동굴에 마을 주민들과 같이 들어갔다. 이 동굴은 마을 주민 전체의 냉동고 역할을 하고 있다. 한여름인데 영구 동토층 밑을 판 동굴 벽은 얼어붙어 있었고 그 안에 그들의 주식인 순록고기가 쌓여 있었다.

우리 탐사단은 크스타티암 주민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극한의 시베리아 북극권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크스타티암 주민들에게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얼굴을 보았다. 겨울철 해가 뜨지 않으며,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마을 크스타티암, 그곳에는 피부가 하얗고 우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에벤키인들이 살고 있었다.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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