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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호반, 황금빛 억새 울음에 물들어 / 가을 안녕! 대전 대청호·장태산에서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스카이웨이’는 메타세쿼이아숲 사이에 만들어진 하늘길이다. 스카이웨이를 따라 걸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함이 느껴진다.
바람 한 가닥, 비 한 줄기에 가을이 참 쉽게 떠나가는 듯하다. 더 늦기 전에 가을을 마주하러 떠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산도 보고 싶고, 물도 보고 싶다. 이맘때 어울리는 인생샷 한 번 남기고도 싶다. 무작정 떠나고 싶어도,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이것저것 따져야 할 게 많아 지레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에서 가운데에 있는 곳이 어딜까 하면 대전이 떠오른다. 지도에서 보면 정중앙은 아니지만 교통을 생각하면 중심이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기찻길이 나뉜다. 그만큼 전국 어디서도 접근이 수월한 곳이다. 대전은 조선말 고종 때까지만 해도 지방관제에 오르지조차 못한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1800년대 후반에 가서야 ‘대전리’로 시작된 작은 마을은 1905년 경부선 대전역과 호남선 서대전역이 개통되면서 교통 중심 도시로 급성장했다. 불과 10년 만에 대전군이 됐고, 유성, 신탄진 등 주위 지자체를 하나하나 흡수해 광역시로 커졌다. 이곳을 여행지로 떠올리는 이들은 사실 많지 않다. 어떤 매력이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이맘때면 그야말로 가을 분위기가 가득가득하다. 만추의 절정을 알리는 다양한 색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위치만 중간이 아니다. 

취향에 맞는 만족할 만한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에 딱 떨어지는 장소들을 품고 있다. 이맘때 대청호와 장태산 등은 전국에서 가장 멋지진 않더라도 어디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풍광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런 풍광이 도심에 있는 숙소에서 멀지 않다. 꼭 자동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데가 아니다. 유명 여행지로 대중교통이 잘 연결돼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KTX를 타고 와서 스마트폰만 있다면 대중교통 노선을 검색해 원하는 목적지를 갈 수 있다. 승용차가 없어도 여행이 어렵지 않은 곳이다.


대전 대청호 추동습지는 억새와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을 정취가 한가득이다. 추동습지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 억새의 흰빛과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에 잠시 넋을 놓게 된다. 바람에 일렁이며 ‘군무’를 추고 있는 흰 억새 뒤로는 갈색의 갈대들이 하늘거린다.
◆하늘하늘 가을이 흔들린다

저게 갈대야, 억새야. 매번 볼 때마다 헷갈린다. 물 근처에서 자라는 게 갈대, 산에서 자라는 게 억새라고 생각하지만, 같이 섞여 자라는 경우가 많아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최소한 대청호에선 이런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갈대와 억새가 곳곳에서 하늘거린다. 그저 갈대나 억새를 본 후 “와∼ 예쁘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금강 물줄기 중 대전 대덕구와 청주 서원구 사이를 막아 대청댐을 세웠고, 대전과 청주의 앞글자를 따 대청호가 됐다. 대전과 충북 청주, 옥천, 보은 등에 걸쳐 있는 대청호는 둘레가 약 220㎞에 이른다. 대청호 주위의 등산로와 산성길, 임도, 옛길 등을 모두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데 이를 ‘대청호 오백리길’로 이름 붙였다. 21구간으로 나뉘는 오백리길 중 이맘때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4구간이다. 추동습지, 대청호자연생태관, 연꽃마을, 금성마을삼거리로 이어지는 4구간은 호수 주위를 따라 억새와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을 정취가 한가득이다. 그중 대청호 자연생태관부터 추동습지 부근이 백미다. 추동습지로 들어갈 수 있는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며 억새의 흰빛과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에 잠시 넋을 놓게 된다. 울긋불긋한 화려한 가을만 보다 흰색과 파란색 단 두 색이 조화를 이룬 가을을 마주하니 그 수수한 풍경에 마음이 동한다. 탄성이 나오는 화려함은 없더라도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서 시작한 너울이 마음속 전체를 휘감는 듯하다. 바람에 일렁이며 ‘군무’를 추고 있는 흰 억새 뒤로는 갈색의 갈대들이 하늘거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억새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추동습지 나무데크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시 ‘갈대’.
데크 한편에 놓인 신경림 시인의 시에 눈길이 간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의 군무와 시 한 편에 위로를 받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백골산 정상 백골산성에서는 대청호가 다도해처럼 조망된다. 호수 위에 군데군데 떠있는 작은 섬들을 보면 ‘내륙의 바다’란 말이 절로 수긍간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호수 주변을 걷는 편한 구간이지만, 5구간에서는 산을 타야 한다. 가을 낭만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백골산이다. 대전 동구 ‘바깥아감 버스정류장’ 부근을 들머리로 해야 한다. 주변에 주차장은 딱히 없다. 백골산은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으로 시작한다. 험하진 않은데, 만만치도 않다. 가파르게 길을 올라가다 보면 평탄한 길이 나온다. 낙엽이 수북하다.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아니다 보니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다. 산성까지 가는 길에 주위를 조망할 곳이 딱히 없어 매력이 크진 않다. 반복되는 경사길과 평탄한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1시간가량 걸으면 백골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을 보기 위해 산을 탔다. 대청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들은 많은데, 백골산성에서는 대청호가 바다의 다도해처럼 조망된다. 반대편으로 서해나 남해의 복잡한 해안선과 같은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져 있고, 호수 위에 군데군데 떠있는 작은 섬들을 보면 ‘내륙의 바다’란 말이 절로 수긍간다. 백골산성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어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산성은 많이 무너져 내려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백골산 정상에서 서쪽이 백제의 전략 거점인 계족산성이었고, 동쪽은 신라의 유명한 관산성이었다. 지금이야 대청호 풍광을 보기 위해 오르지만, 당시만 해도 백제와 신라가 마주보고 전략적 요충지인 금강을 차지하기 위해 혈전을 벌인 곳이다.

장태산자연휴양림에선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단풍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단풍비를 만날 수 있다.
◆바람 한 점에 가을이 떨어진다

대청호 억새의 수수한 가을 풍경과 대척점에 있는 화려한 가을을 보려면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가면 된다. 도로 주변에 열 맞춰 서있는 모습에만 익숙한 메타세쿼이아가 장태산에선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며 군락을 이뤄 붉게 흔들리고 있다. 해발 306m의 장태산 기슭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자연휴양림이다. 지금은 대전시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이 휴양림은 처음에 민간인이 조성했다. 건설사업을 하던 임창봉씨가 20여년간 휴양림을 조성했는데 운영난으로 경매에 넘겨졌고, 대전시가 인수했다. 휴양림 입구에서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임창봉’씨 흉상이다.

장태산자연휴양림에선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며 군락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가 붉게 흔들리고 있다.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스카이웨이’는 메타세쿼이아숲 사이에 만들어 놓은 하늘길이다.
장태산자연휴양림에서는 ‘숲속어드벤처’와 ‘스카이웨이’에 들러야 한다. 산이지만, 산책로 정도로 힘들지 않다.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숲속어드벤처’길로 들어가면 나무데크를 따라서 걸으면서 ‘스카이타워’까지 갈 수 있다. ‘스카이웨이’는 메타세쿼이아 숲 사이에 만들어 놓은 하늘길이다. 높이 10~16m, 폭 1.8m, 길이 196m의 하늘길인 스카이웨이를 따라 걸으면 아찔함이 느껴진다. 나무 중간 높이에 길이 나있어 평소에는 손이 닿지 않아 만져볼 수 없었던 메타세쿼이아 잎을 만질 수도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스카이타워’다. 높이 27m로 7층 아파트 높이인 스카이타워는 출렁거리는 느낌 때문인지 스릴도 있다. 타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붉게 물든 메타세쿼이아 숲 사이 데크를 걷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가을이 떠나가는 이맘때 이곳에는 단풍비가 내린다.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단풍이 떨어져 낙엽으로 변한다.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단풍이 떨어져 내릴 때면 추색(秋色)이 완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은 평탄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남녀노소 어려움 없이 단풍과 낙엽을 즐길 수 있다.
문중에서 성씨의 내력, 유명인물 등에 대한 내용을 새겨넣은 조형물이 모여 있는 뿌리공원.
대전에는 독특한 공원이 있다. 뿌리 공원이다. 이름만 언뜻 들으면 이색적인 나무 뿌리들을 모은 곳으로 생각하겠지만, 전국 유일의 ‘효’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이다. 자신의 성씨에 대한 유래를 알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족보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공원에서 성씨마다 일정한 부지를 제공하고, 각 문중에서 성씨의 내력, 유명인물 등에 대한 내용을 새겨넣은 조형물을 세웠다. 2015년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5582성이 있는데, 뿌리공원에 조성된 조형물은 220점 정도다. 가족이 함께 간다면 주로 얘기를 듣기만 하던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집안 내력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전=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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