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1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을 압박한 배경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협조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검찰과 특검은 문 전 장관의 항소심 판결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문 전 장관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두 회사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삼성-엘리엇 다툼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문제’라는 메모가 최원영 전 청와대 보건복지수석의 업무수첩에 기재된 점, 청와대 행정관과 복지부 직원이 삼성합병 안건과 관련해 주고받은 문자 등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또 문 전 장관이 메르스 사태 부실대응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1년 정도 쉬고 난 이후 연금공단 이사장직을 맡기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는 진술 등도 이 사건의 청와대 개입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검과 검찰은 삼성합병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장치로 보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삼성합병을 돕는 대가로 삼성이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에 나서는 등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골자다.
뇌물 혐의가 입증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정황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삼성합병 문제가 청와대와 무관한 개별 기업의 경영 현안이었다는 논리가 깨질 수 있다.
문 전 장관의 항소심 판결은 청와대가 개별 기업의 합병 문제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게는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청와대 개입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승마 지원 등이 뇌물 거래가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개별적으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국민연금이 삼성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 위법이 있었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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