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레 성차별적 대책 비판 많아
경기도의 한 지구대 소속 A경감은 지난 1월 회식 자리에서 순경 B(여)씨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했다. 은근슬쩍 손을 잡는 것은 물론 이같은 허벅지 이야기를 꺼내며 양손으로 B씨의 허벅지를 감싸기도 했다. A경감의 부적절한 발언과 신체접촉은 술자리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됐다. B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 업무의 최일선인 지구대, 파출소에서 일어난 성비위 사건의 한 사례였다. 잊을만 하면 터져나오는 성비위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경찰이 최근 ‘일대일 멘토제 폐지’, ‘순환근무 활성화’, ‘여성 사건관계자와의 만남 장소, 시간 한정’ 등을 포함된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찰의 대책이 성비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된다.
16일 경찰청이 마련한 ‘지역경찰 성비위 근절 대책’에 따르면 올해 1∼7월 파출소, 지구대 근무자들이 벌인 성비위 사건 13건(여성 경찰관 대상 5건, 일반 여성 대상 8건)을 분석한 결과 동료 여경을 대상으로 한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임용 3년 미만의 경찰관(순경)이었다.
일반 여성 피해자는 사건 관계자가 많았다. 경찰이 112신고를 한 여성 청소년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지속하고 자신의 차량에 태워 성폭행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건 관계자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이다.
경찰은 이에 최근 대책으로 △성비위 전력자와 여경의 순찰차 동승 차단 및 같은 순찰팀(근무조) 편성 금지 △여경과 접촉 가능성이 낮은 지역관서(부서)로 인사조치 검토 △아침조회와 근무교대시 주요 비위사례 반복 교육 등을 내놨다. 또 사건관계자와의 만남은 근무시간, 출동현장으로 제한하고 근무시간 외에 사적으로 만날 경우 최고 수준으로 문책하겠다는 조치도 세웠다.
하지만 일부 대책은 여경의 업무 범위와 환경 제한에 방점이 찍혀있어 오히려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임 여경은 가급적 매 근무마다 근무조 변경’, ‘특정 직원과의 연이은 근무 차단’ 등은 여경의 업무 적응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여경을 ‘성비위 유발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분히 담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길양 양성교육평등진흥원 양성평등교육부장은 “의도가 좋다해도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건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해당한다”며 “성비위 발생시 조직에 발붙일 수 없을 정도의 강도 높은 징계나 조처를 취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어 “근본 대책은 성비위 등 폭력에 대한 엄벌, 조직 구성원의 의식 개선을 통한 전방위적 노력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찰의 성범죄 관련 교육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연 1회로 지정된 의무 교육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의 ‘경찰 성범죄 교육 내역’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2014∼2017년까지 매년 한 두차례 전직원 대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진행했을 뿐이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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