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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빽'에 웃고 '빽'에 울고…우린 부패공화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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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11 09:41:56 수정 : 2017-10-12 17: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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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보다 인맥 우선시… 혈연·지연·학연이 ‘부패의 고리’
#1. “저는 소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지난해 합격했어요. ‘SKY’라고 불리는 최고 명문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공기업 입사를 위해 몇 년간 착실히 준비한 덕이었죠. 같이 입사한 동기들 중엔 SKY 출신이 많다보니 주변에서 제게 농담처럼 이렇게 묻곤 합니다. ‘네 아버지 뭐 하시니’, ‘누구 조카니’, ‘어디 출신이니’ 등등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제가 정말 그런 빽이 있으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겠어요?’라고 농으로 되받아치긴 하지만, 기분이 정말 나빠요. 제가 실력이 아닌 누군가의 힘에 의해 여기에 들어온 것처럼 보는 거 같아서요. 언론에서 워낙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채용비리 기사가 많이 나오니까 사람들의 뇌리 속에 공기업 입사자 중 꽤 많은 수가 채용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봐요. 저처럼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입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 억울한 심정이 들죠” - 공기업 2년차 이모(30)씨.

#2. “저는 군복무를 면제받았어요. 크론병(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라는 희귀병 때문에 면제를 받았죠. 남들은 군 면제라고 하면 ‘좋겠다’고들 하죠. 다만 저는 너무 아파서 ‘건강해서 군대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요. 군 면제라 불편한 점이 있다면 대학교 시절엔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에 끼지 못하는 정도였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차원이 다른 편견에 기다리고 있더군요. 기업 면접 땐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가며 군 면제 사유를 설명해야 했고, 입사 이후 군 면제라고 하면 ‘빽이 좋나봐’ 식의 비아냥도 무수히 들어야 했죠. 고위직 청문회나 비리사건 때 병역문제가 단골손님으로 나오다 보니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거죠” - 회사원 김모(31)씨.

국회의원 아들, 친구 딸, 사장 조카라서...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채용 비리 레퍼토리다. 감사원은 지난 3~4월 공공기관 53곳을 대상으로 ‘채용 등 조직·인력 운영 실태’ 감사 결과를 지난 5일 발표했다. 그 결과 39개 기관에서 100건에 이르는 위법·차별 등의 사항을 적발했다. 그뿐만 아니다. 청문회 시즌이 되면 사회 고위층의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 병역기피, 부동산투기에 대한 얘기를 지겹게 듣는다. 이른바 ‘청문회 5종 세트’다. 하루가 멀다시피 터지는 방산비리와 공직자 비리로 인해 겪는 대형 참사까지. 오죽하면 대통령마저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측근비리로 인해 탄핵될 정도니까 말 다 한거 아닌가.

우리 사회에 이처럼 부패가 만연해 있다보니 위 사례처럼 합법적으로 군면제를 받은 자도, 실력으로 바늘구멍을 통과한 이들도 의심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부패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부패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연고주의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한창 유행했었던 힙합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의 ‘연결고리’라는 곡의 가사다. 이 가사처럼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대면했을 때 “어디 출신이세요?”,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ㅇㅇㅇ 아세요?” 등의 말들로 서로간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물론 이는 인간의 깊은 본능일 수도 있다.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서로간의 접점을 찾아야만 하니까 말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의 특징으로 정(情)을 꼽는다. 불쑥 초인종을 눌러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는 ‘한끼 줍쇼’라는 TV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 특유의 정에 기댄 덕분이다. 그러나 정에 연연하다보면 원칙보다 관계를 우선시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서로의 뒤를 봐주고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 같으면 도저히 해결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나 ㅇㅇㅇ이랑 되게 친한 선밴데~”로 시작되는 전화 한통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학연과 학연, 지연으로 중무장한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가 부패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관피아’는 연고주의로 인한 부패의 절정이다. 한국은 각종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고, 사회를 좀 먹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땐 ‘해피아’, 원전 비리에는 ‘원피아’, 최근 살충제 계란 사태에는 ‘농피아’까지. 각종 참사와 비리, 스캔들에는 빠짐없이 ‘~피아’ 시리즈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향우회와 번영회 등도 ‘끼리끼리 해 먹는다’

이선중 서울시립대 반부패시스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청렴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국가들에 비해 제도나 시스템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부패를 통제하고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연고주의가 영향을 끼친다.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연고주의 안에서 처리하면서 관리 감독이 소홀해지고, 부패가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숫자로도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부패

이쯤이면 궁금증이 드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얼마나 부패하다는거야?’ 다양한 지표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부패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지표는 독일의 비정부 국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에서 1995년부터 발표해온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가 있다. CPI는 베텔스만재단, 세계경제포럼,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정치경제 리스크 컨설팅, 세계은행 등이 국제적인 조사 및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여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반영해 산출한 지표다. 주요 조사내용은 공무원의 권력남용을 막는 메커니즘, 공무원의 공직의 사적 사용, 공적기금 운영 청렴성, 기업활동 과정의 뇌물, 부패 등이다.

한국은 1995년(41개국) 10점 만점에 4.29점을 받아 41개국 중 27위에 오른 이래 주로 30위대 후반부터 50위대 초반을 오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순위는 176개국 중 52위다.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라는 점을 비춰볼 때 CPI 52위는 부끄러운 수치다. 내전으로 사회가 시끄러운 아프리카의 르완다(50위)보다 낮은 결과다. 특이할만한 점은 2015년 56점(2012년부터 100점 만점으로 변화)으로 168개국 중 37위였던 한국은 지난해 53점으로 점수는 소폭 하락했지만, 52위로 15계단이나 대폭 하락했다. 역대 최대 하락폭이다. IMF 경제위기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1997~98년에도 9계단 하락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 여파일까. 정답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상학 한국투명성기구 상임이사는 “지난해 CPI 점수를 산출한 여러 조사 중 가장 늦게 측정된 것이 ‘세계 정의 프로젝트’의 2016년 9월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태블릿PC 보도’가 10월말이었음을 감안하면 국정농단 사태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누적되어온 도덕적 해이가 크게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PI에 반영되는 각 지표들의 조사 대상은 해당 국가나 해당 국가와 거래하고 있는 고위 기업인과 전문가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상임이사는 “조사 대상인 고위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해당국가 공직자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PI의 하락은 곧 한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투자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CPI의 하락은 곧 한국의 경제성장과 직결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 나라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부패를 조사한 지표도 있다. 바로 국제투명성기구의 ‘세계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 GCB)다. GCB에 따르면 한국은 일상에서의 뇌물이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이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일상에서의 뇌물이 가장 적은 나라그룹에 속한다. 지난해 1년 동안 업무와 관련하여 공공서비스, 경찰, 법원 등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3%가 뇌물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일본(0%), 홍콩(1%)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뇌물을 경험한 이들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반부패 정책에 대해 반감이 크다. 정부의 반부패정책에 대한 평가 점수는 1.92(‘대단히 잘못’이 1점, ‘잘못’ 2점, ‘잘됨’ 3점, ‘대단히 잘됨’ 4점)로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최악이다.

아울러 우리 국민들은 주요 사회 집단의 부패 정도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각 부문별 부패인식 정도(‘전혀 부패하지 않다’ 1점, ‘일부 부패가 있다’ 2점, ‘상당수가 부패하다’ 3점, ‘모두 부패하다’ 4점으로 계산)을 살펴보면 대통령/총리(2.54), 국회의원(3.10), 공무원(2.93), 지방의원(2.95), 세무공무원(2.53), 종교지도자(2.38), 기업경영자(2.74)에서 아시아-태평양 주요 15개국 중 최악의 수준이다. 경찰(2.48)과 판사(2.48) 역시 점수는 나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최악 수준을 면한 정도다. 이 결과에 대해 이 상임이사는 “물론 각 국가별로 시민들의 부패에 대한 ‘눈높이’가 다르긴 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는 일반 시민들과 공직사회 간의 부패 인식에 대한 괴리감을 나타내는 결과다. 일반 시민들은 공직 사회의 부패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불신하는 반면, 공직 사회는 스스로 깨끗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사회의 부패는 사회 상층의 문제, 권력형 부패라는 점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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