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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사대·종북형 문화혁명을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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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09 21:15:26 수정 : 2017-10-09 2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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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철학도 없이 美·中 사이에서 / 우왕좌왕하는 위정자들을 볼 때 / 그들의 무책임한 이념지향이 / 역사를 후진시키는 것은 아닌지 인간은 고대에는 주로 신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역사를 전개했다. 중세에는 신화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를 통해 역사를 전개했다. 그렇다면 근대란 무엇일까. 근대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가장 포괄적인 정의는 그러한 신화와 종교의 자리에 ‘역사’를 대입했다는 점이다. 인간집단은 그만큼 역사라는 현재적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역사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역사적 항해의 나침판은 국가철학이다.

자신의 철학이 없으면 남의 철학이라도 가지고 와서 역사적 항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근대이고, 현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남의 철학으로 근·현대의 항해를 해 온 셈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구의 근대국가는 자신의 국가철학을 확립한 나라들이다. 저들이 흔히 보편성이라고 운운하며 후진국을 억압하고 압도하는 것은 모두 저들의 국가철학을 숨긴 가면들이다.

요컨대 헤겔의 ‘절대정신’은 독일의 국가철학을,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프랑스의 국가철학을, 베이컨의 ‘경험론’은 영국의 국가철학을,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듀이의 ‘실용주의’는 미국의 국가철학을 의미한다. 이들 선진국은 자신들의 삶의 지표로서 국가철학을 완성했기에 선진국인 것이다. 어느 고상한 철학자가 철학을 국가철학으로 격하시켰다고 항의한다면 저들의 삶을 위해 철학을 확립한 나라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본래 초월적이기에 이념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정신을 외면할 경우 무지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만다. 철학이 이데올로기가 된 데는 확실히 헤겔의 공이 크다. 헤겔을 뒤집은 마르크스는 철학의 이데올로기화와 실천의 강도를 높였다. 근대에 들어 남의 이데올로기(공산사회주의)로서 가장 재미를 본 나라는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중국이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제물로 바쳤지만 그 이데올로기로서 나라를 통일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전체주의의 오명과 함께 해체되고 말았다. 중국도 현재 공산당귀족의 정경유착과 부패청산으로 헤게모니 싸움 중이다. 공산사회주의든, 국가사회주의든 사회주의는 그 이름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감소와 삶의 하향평준화 및 파시즘으로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그렇다면 한반도는 어떤가. 서구의 공산사회주의와 자유자본주의를 들여온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진 끝에 6·25라는 동족상잔의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치르고서도 온전히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아직 한민족의 삶을 영위할 통일철학을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국민의 배도 채우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왕조전체주의’로, 세계적 문제아로 떠오르고 있다. 근대에서 북한은 역사적 후진을 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한은 산업화를 통해 소득의 증가와 물질적 풍요는 달성했다고 하지만, 아직 부익부 빈익빈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방황의 틈을 타서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식민체질)의 유령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요컨대 종북(從北)과 친중(親中) 사대주의가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나라를 빼앗긴 구한말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가렴주구와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망하고 있는데도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붕괴되고 있는 중국을 섬기면서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얼마나 모화사상이 골수에 박혔으면 제 죽는 줄 모르고 섬겼을까. 오늘날 ‘친중파’들을 보면 사대주의와 조공(朝貢)본능이 되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구한말처럼 한반도는 세계열강의 각축장인데, 정작 한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한국이 한창 경제개발을 할 때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나라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한때 중국통일의 이념이었던 마오쩌둥사상을 시대착오적으로 유지하려 한 공산당과 인민들의 무지의 소산이었다. 나라의 문화유산을 다 부숴놓고 국민생활을 피폐하게 한 빛 좋은 개살구가 중국문화혁명이었다. 암흑의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이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이 박정희의 개발전략을 배운 것은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러시아 푸틴의 롤 모델도 박정희라고 한다.

국가철학도 없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의 무책임과 이념지향이 역사를 후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과거의 이념(도그마)에 얽매이면 결코 밝은 미래를 전개할 수 없다. 오늘의 소위 혁명이라는 것이 중국의 ‘문화혁명’과 같은 꼴이 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6·29선언(1987년)을 통해 민주화의 큰 진전을 이루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1997년)를 극복함으로써 민간 주도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구가할 발판을 마련했다. 10년 주기의 두 고비를 넘긴 것은 한국인의 자랑이다. IMF 홍역을 치른 지 딱 20년이 된 지금 혈맹인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요구했다. 위정자의 오만과 무지는 국민을 도탄에 빠뜨릴 수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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