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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 맡겨졌기에 그녀는 위대해졌다”

입력 : 2017-09-23 03:00:00 수정 : 2017-09-22 15: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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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시절 물리학자였던 메르켈 / 유럽의 리더 되기까지 과정 그려 / 단호한 실용주의·신중함·포용력 / 그녀가 지닌 ‘특별함’과 삶 탐구
매슈 크보트럽 지음/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사/2만원
앙겔라 메르켈/매슈 크보트럽 지음/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사/2만원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2015년 10월 유럽연합(EU)의 지도자들은 벨기에 브뤼셀에 모였다. 회의의 안건은 하나였다. 바로 ‘난민’ 문제다. 불과 한 달 사이 수많은 사람이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공포를 피해 유럽으로 국경을 넘었다. 이 절박한 난민들을 환대해준 것은 독일과 스웨덴뿐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포용 정책을 펼친 것은 그가 ‘장벽 너머에서의 삶’, 즉 분단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신간 ‘앙겔라 메르켈’은 공산주의 독재정권 하의 동독에서 자란 메르켈이 무명 정치인에서 세계적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동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메르켈은 ‘사회주의 형제국’인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메르켈의 러시아어 공부는 당의 방침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방법이자, 레프 톨스토이와 같은 비판적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메르켈은 톨스토이를 비롯해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알렉산드르 푸시킨 등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즐겼다. 그는 훗날 “러시아어는 감성이 가득한 아름다운 언어입니다. 음악 같기도 하고, 우울함이 배어 있기도 하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5년 난민 수용을 결정한 것은 그가 ‘장벽 너머에서의 삶’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당시) 결정은 장기 전략이 아닌 긴급 상황에서 내린 인도주의적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베를린=AP연합뉴스
메르켈의 정치인생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됐다. 민주개혁당에 자원한 그는 불과 몇 주 만에 당 대변인이 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에 관심 없는 물리학자였던 그는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독일 내각 최연소 장관이 됐다.

정치인들은 대개 외교 관례에 따른 완곡한 언어를 구사하지만, 메르켈은 관례를 따르기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추구했다. 그는 ‘콜은 당에 피해를 입혔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당은 자립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콜 없이도 미래를 마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여기서 콜은 메르켈을 발탁해 독일 정계의 중심에 꽂아준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각별한 관계의 콜 전 총리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했고, 그의 후계자로서의 이미지를 지웠다. 메르켈은 한 인터뷰에서 “게임의 법칙을 고수하지 않는 사람만이 승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콜은 메르켈의 정치 역량을 높이 평가하기 보다 내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동독 출신 여성 정치인으로 봤다. 그러나 그들은 메르켈이 냉정한 단호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저자는 메르켈의 단호한 실용주의, 시간을 들여 신중히 생각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메르켈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과 방식에 대해 신중하고,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결과를 가늠했다. 2002년 총리직 입후보 선거를 앞두고 당내 인사 대부분이 메르켈이 출마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메르켈은 에드문트 슈토이버 바이에른 주지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메르켈은 대신 총선 이후의 원내대표 자리를 요구했다. 이후 선거에서 슈토이버는 패했지만, 메르켈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당수와 원내대표가 된 메르켈은 다음 선거에서 후보에 올랐다. 이는 메르켈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만든 선거였다.

총리가 된 메르켈은 도전자가 없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여제였다. 그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특히 100만명의 난민을 수용한 그의 포용정책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해 타임지는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독일 사민당의 슈타인브뤼크는 메르켈의 담대함에 대해 난공불락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난민 문제로 위기에 봉착했다. 사람들은 차츰 메르켈의 후계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난민을 수용함으로써 독일의 경제성장과 복지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메르켈의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결국 메르켈은 2016년 가을 이민정책의 변화를 선언했다.

저자는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메르켈이 위대하게 태어나지도, 타고난 웅변가도 아니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그녀는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고 평가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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