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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마음먹은 건 끝장 보는 완벽쟁이… ‘암벽 여제’ 김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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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0 18:58:30 수정 : 2017-09-10 22: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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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 월드컵서 26회 역대 최다 우승 / 훈련 없는 날 '맛집 투어'가 취미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 선수.
“2015년 대구에서 대회가 있었는데 경기가 다 끝나고 남자부 결승 코스를 제가 한번 등반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작은오빠가 못 하게 하더라고요. 내가 자기보다 더 갈까봐. 그래도 했거든요. 그때 작은오빠가 밑에서 안전을 위해 줄을 잡아주는 빌레이(belay)를 봐줬었는데, 원래 줄이 좀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일부러 밑으로 잡아당긴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결국 제가 남자부 결승 코스를 완등했죠.”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더코아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난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29·스파이더코리아)은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영락없는 개구쟁이 막내의 모습이다.

김자인은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 밑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산을 사랑한 부모님은 막내딸에게 자일(등반용 로프)의 ‘자’와 클라이밍의 메카인 인수봉의 ‘인’을 따 ‘자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김자인은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오빠들과 똑같이 하려 노력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라는 이유로 클라이밍 선수로 활동 중이던 오빠들을 따라 청소년 클라이밍 캠프에 참여했던 것이 클라이밍 운명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클라이밍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김자인은 “그때 너무 무서워서 맨날 울었다”며 “어렸을 때는 클라이밍이 재밌는 것을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그가 클라이밍을 계속했던 이유는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끝장을 봐야 하고, 완벽하게 해야 되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재미보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한 클라이밍은 그렇게 그의 인생이 됐다.

김자인은 지난 8월27일 선수로서 역사적인 대기록을 세웠다. 이탈리아 아르코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4차 대회 여자부 리드 경기에서 우승을 거두며 역대 최다우승(26회)을 기록했다. 2015년 10월 월드컵 6차 대회 리드 부문에서 우승해,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젤라 아이터(31·은퇴)가 2011년 세운 기존 월드컵 리드 부문 개인 통산 최다우승(25회) 기록과 타이를 이룬 지 1년10개월여 만이다.

앞서 김자인은 2016년 월드컵에서 매번 2∼3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한 흐름은 2017년까지 이어졌다. 매 대회를 나설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한 번만 더 우승하면 최다 우승”이란 생각에 신경이 쓰였다. 몇 번 우승을 놓치며 아쉬움과 속상함이 교차했지만 이번 우승으로 그동안의 속앓이를 털게 됐다.

“너무 감격스럽죠. 제 자신도 신기할 때가 많아요. 저는 지금 진짜 잘하는 선수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갑자기 엄청 잘했던 게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만들어 왔거든요. 괴물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제가 우승을 제일 많이 한 클라이머라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지난 8월27일 이탈리아 아르코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4차 대회 여자부 리드 경기 정상에 올라 역대 최다우승(26회) 기록을 세운 김자인이 1일 서울 종로구 더코아클라이밍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4 스페인 히혼 IFSC 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다. 김자인은 당시 경기 중에 반드시 입어야 하는 국가대표 경기복 상의를 챙기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며칠 일찍 스페인에 도착했었던 터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하필 추석 연휴가 겹쳐 경기 전날 저녁이 돼서야 옷을 받아 경기를 치렀다.

액땜을 해서일까. 2009, 2012 세계선수권 리드 부문에서 준우승에 그쳤던 김자인은 2014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김자인은 “2014 세계선수권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며 “덕분에 내가 만약 실수해 꼴찌를 한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결승전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결승에서 완등을 하며 우승을 일궈낸 김자인은 “지금도 그때 장면을 보면 뭉클한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우수한 경기력으로 선수로서 일취월장해온 김자인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김자인은 2007년부터 월드컵 리드 부문에 출전하기 시작해 2009년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듬해인 2010년 월드컵 5회 우승을 이뤄냈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제대로 겪었다. 본격적으로 김자인의 행보가 빛을 본 것은 2011년 올댓스포츠에서 전문적인 매니지먼트를 받으면서부터다. 이후에도 꾸준히 김자인이 2011년 5회, 2012년 3회, 2013년 4회, 2014년 4회, 2015년 3회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자,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클라이밍’ 하면 ‘김자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김자인이 123층(555m)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를 등반한 일이다. 장수 예능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에서도 김자인이 롯데타워에 오른 일이 언급되면서 대중에게 ‘김자인’이란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말이 123층이지 유리를 통해 내려만 봐도 다리가 후들거릴 만한 높이다. 등반을 하며 무섭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장비를 안전하게 갖추고 해 만약 추락하더라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란 사실을 아니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고 덤덤히 말했다.

“사실 완등하고 나서는 인터뷰도 하고 정신이 없긴 했는데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집에 가면서 다시 보니 새삼 너무 높아 보이는 거예요. ‘내가 여길 어떻게 올랐지’ 하면서 되게 신기했어요.”

그러나 때론 사람들의 잘못된 관심이 김자인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경기 성적만으로 모든 게 판단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2등이든, 3등이든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좋은 성적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한물갔네” 같이 일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내 김자인은 “내가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어떤 결과를 갖더라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자인은 꾸준함으로 무장한 채 매일 자신을 단련해왔다. 일주일에 5일 정도 클라이밍 훈련에 임하는데, 오전에는 스포츠클리닉에서 재활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클라이밍장에서 4~5시간 땀을 흘린다. 이틀 훈련하고 하루 쉬고, 3일 하고 하루 쉬는 식이다. 요즘에는 몸을 풀기 위해 아침 수영도 병행하고 있다.

김자인에게 늘어지지 않고 꾸준히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물었다. “클라이밍이 재미있어서”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제일 즐겁게 잘할 수 있는 게 클라이밍이고 재미있는 것을 더 즐겁게 하려면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하니 절로 동기부여가 됐다는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분명 재미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은 ‘음식’ 얘기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김자인은 훈련이 없을 때 맛집을 찾아가는 것을 제일 좋아할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꼽는 게 어려울 정도로 너무 다 잘 먹는다”는 것이 본인 설명이다. 그런데 김자인은 41㎏대의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 저녁 식사 때는 토마토 같은 것을 가볍게 먹는 정도다. 그래서 선수생활 중 제일 힘든 것은 운동하는 것보다 체중 조절하는 것이란다. 운동은 힘들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체중 조절은 좋아하는 먹는 것을 참으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한 번 먹을 때 세 끼를 먹는 것 아니냐”는 농담에 김자인은 “케이크는 후식으로 먹는다”고 맞받아쳤다.

세계선수권, 월드컵 등에서 정상에 오른 ‘암벽 여제’ 김자인에게 남은 고지는 올림픽뿐이다. 2016 리우 올림픽까지만 해도 올림픽에서 클라이밍을 볼 수는 없었지만, 클라이밍은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하지만 기존 월드컵과는 다르게 올림픽에서는 리드(15m 높이의 인공암벽을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가장 높이 오르는지를 겨루는 종목), 볼더링(5m 높이의 인공암벽 4∼5개를 놓고 완등 횟수를 겨루는 종목), 스피드(10m나 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등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린다.

김자인의 1차 목표는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에 뛰기 위해서는 20명의 선수 안에 들어야 한다. 김자인은 주종목이 리드이긴 하지만 2011년 볼더링 월드컵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는 데다 올해 볼더링 경기에 계속 참가하며 기량을 올리고 있다. 나머지 두 종목과 성격이 워낙 다른 스피드는 차츰차츰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삶 자체가 클라이밍인 듯 보이는 김자인에게 선수 이후의 삶에 대해 물어봤다. “선수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클라이밍은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이라는 김자인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계속 클라이밍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클라이밍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단다. 하지만 평생 클라이밍만 할 것은 아닐 터, 질문을 바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다.

“아직까지 따로 생각한 것은 없는데 저도 사실 클라이밍 말고 배워보고 싶은 것도 많아요. 운동도 그렇고,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요리도 배우고 싶고요. 특히 빵 만드는 것…. 어쨌든 먹는 것은 싫어하는 게 없으니까요(웃음).”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암벽 여제’ 김자인은…

●생년월일 1988년 9월11일 ●직업 스포츠클라이머

●학력 일산동고-고려대(체육교육)-고려대 대학원(스포츠 심리학)

●키 153㎝ ●몸무게 41㎏ ●가족 아버지, 어머니, 오빠(김자하, 김자비)

●주요 경력

-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클라이밍 월드컵 리드 부문 역대 최다우승(26회)

- 아시아선수권대회 11회 우승

- 2015 IFSC 클라이밍 월드컵 통합 부문 1위

- 2014 스페인 히혼 IFSC 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 리드 부문 우승

- 2012 한국 최초 세계선수권대회 통합 부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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