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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호의 사서삼매경](28)'不陳' 안철수, 좌파 이상주의와 맞서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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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6 15:00:00 수정 : 2017-08-26 10: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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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원정을 나섰던 조조가 허도로 돌아왔다. 곽가가 원소에게서 온 편지를 전했다. 원소는 공손찬을 치기 위해 식량과 군사를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불쾌해진 조조는 원소를 토벌하지 못함을 한탄했다. 곽가는 한고조가 항우를 지혜로 이긴 것을 거론하며 원소의 왕성한 세력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했다. 원소가 질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와 조조가 이길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를 들어 원소를 깨부수는데 어려움이 없음을 진언했다. 

이어 서주의 여포가 진정한 우환거리 임을 상기시켰다. 조조가 원소를 치려하면 여포가 반드시 허도를 비운 틈을 노릴 것이라 지적했다. 우선 원소의 요구를 들어주고 차후에 도모하는 것이 상책 임을 제시했다. 조조는 곽가의 말을 새기고 사신을 후하게 대접한 뒤 원소에게 벼슬을 내려달라며 조서를 올렸다. 잠시 강국의 압력에 굴복하는듯 했지만, 이는 후일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과도 같았다. <삼국지연의 등에서>


잘 지는 것은 중요하다.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잘 지는 것이다. 옛말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군사를 잘 움직이는 자는 군진을 치지 않는다고 했다. 군진을 잘 치는 자는 교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전을 잘 하는 자는 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패배에 잘 대처하는 자는 망하지 않다고 했다. 촉의 제갈량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장원'의 여러 대목은 잘 지는 것의 중대함을 일깨운다. 나라가 강성하면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군사를 잘 움직이는 자는 굳이 진을 칠 정도로 긴 싸움을 하지 않는다. 

군진을 잘 치면 상대는 부딪치기를 두려워 한다. 교전을 잘 하는 자는 미리 이기는 조건을 만들어 싸운다. 덜 아프게 지는 법을 아는 이는 패배해도 망하지 않는다. 패전을 잘 다루는 방법은 삼십육계 패전계에도 충실히 서술돼 있다. 성문을 열고 빈 성을 보여줌으로해서 적이 의심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공성계 등 여섯 가지 계책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위험한 수들로 이뤄져 있다. 전세가 패전으로 기울 때 쓸 극단적인 방법들이다. 마지막은 모두가 잘 아는 삼십육계 줄행랑, '주위상(走爲上)'이다. 일단 물러났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기려 하는 이에게 잘 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앞길이 껌껌해서다. 안철수 전 의원의 앞길이 첩첩산중이다.

안 전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장 택할 수 있는 길은 당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언주, 정동영, 천정배 의원을 딛고 당권을 쥐는 것이 그의 살 길처럼 보인다. 그 길의 진실은 행보가 힘든 자갈길이다. 당대표가 되려는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의 출사표가 절실했던 이들은 당내 초선과 친안(親安)들이다. 그들은 당의 파열을 걱정했다. 당이 공중분해 돼 상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될까 두려워 했다. 그들의 거두처럼 그들 역시 민주당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십여명만 남더라도 존재감을 유지하려면 당을 대표할 얼굴이 있어야 했다. 

안 전 의원이 험한 길을 향한 것은 철저하게 초선과 친안(親安)들의 필요에 부응한 것이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대통령 후보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 불안감이 커진 것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호남 의원들의 호의적 발언 때문이다. 호남 의원들의 몸값은 지금이 가장 높다. 그들에게 이적과 잔류는 단지 선택의 문제다. 나가지 않더라도 리더십을 흔들 가능성도 다분하다. 보궐선거 자리가 생기면 당대표로서 무게감을 보여달라고 하겠다. 이름값을 하라고 하겠다. 낙선하면 끝이다. 손학규 의장이 정계 은퇴를 선택한 것은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떨어져서다. 상대는 신인 김용남 전 의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손수조씨를 내세운 것은 이기려고 한 선택이 아니었다. 유력정치인이 정치지망생에게 진다는 것은 큰 의미다. 당을 가져도 바람 앞의 등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여러 이유들이 있어서다. 

서울시장 출마는 더 혹독한 가시밭길이다. 지방선거가 열리는 내년은 현 정부 2년차다. 힘이 왕성할 때다. 서울시장을 사수해야 체면을 세울 수 있다. 안 전 의원에게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대선 직후 "누구를 어디 장관으로 세우자"며 지지자들이 하마평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런 언급이 없던 후보가 둘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안 전 의원이다. 상대를 향한 무언의 서릿발이 느껴진다. 쉽게 승부해주지 않겠다. 우선 맞설 사람을 제대로 고르겠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대선을 통해 중량급 후보 둘을 만들어 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안 지사는 충청에 쌓은 민주당의 아성을 굳게 지켜야 한다. 여차하면 국정 2인자로 차출할 만한 인물이다. 이 시장은 정치적 입지를 키워줄 더 큰 판이 필요하다. 경기지사로 언급되고 있지만 한양땅을 밟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다. 분당보수도 열광하는데 강남보수를 흔들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안 전 의원과 이 시장이 TV토론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다. 이기면 발판도 되겠지만 대통령 후보로서는 명예만 지킨 셈이다. 지면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추락한다. 이 시장이 이기면 1부 리그로 승격되겠다. 박원순 현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면 일말에 희망은 가져볼 만하다. 양보 받았다고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는 겨우 돌고 돌아 정치 데뷔의 원점이다. 유일한 실리는 당대표를 나서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얻는 것이다. 시간을 벌었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에게 선택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하다.

포기하고 은거하며 재기를 노리는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정계 복귀를 계산한다. 세사와 멀어지는 것처럼 하다가 정치지형이 급변하면 돌아와야 하는 구실을 만든다. 많은 정치인들이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지만 안 전 의원에게는 어렵다. 꽉 막힌 길이다. 우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동교동 사람들은 북적북적 했었다. 목청을 높이면 당이 시끌시끌 하겠다. 그에 비해 상계동 사람들은 수가 적어 보인다. 끈끈하고 찰지지도 않은 것 같다. 불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의당이 결국 민주당과 합쳐진다고 가정하자. 당내에는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있다. 당이 어려워지면 신데렐라가 되기를 자청할 것이다. 구태여 토굴에 들어간 사람까지 부르지 않아도 된다. 토굴에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아니라 도망자로 기억 남겠다. 안 전 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잘 지는 방법은 큰 싸움을 피하는 것이겠다. 곧 고꾸라질 자리도 피해야 겠다. 세간에서 잊혀지는 일만은 반드시 피해야 겠다. 월왕 구천처럼 기다리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방법이 있다. 부산시장이다. 엘시티 등 여러 변수를 따져도 쉽지는 않겠다.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치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의 수도 있다. 서울시교육감에 나서는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 등 현 정부를 향한 원성이 커지는 분야가 교육이다. 교육감이 되서 좌파 이상주의와 맞서 싸우고 대중의 신뢰를 얻어 차후를 노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안이다. 출마를 위한 교육 경력은 이미 충분하겠다. 급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지적은 무시해도 좋다. 정치 생명이 끝나게 생겼는데 물불 따질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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