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연습때도 눈물이 뚝뚝… 먹먹한 카타르시스 느껴”

입력 : 2017-08-20 21:07:39 수정 : 2017-08-20 21:07:3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뮤지컬 ‘서편제’ 소리꾼 송화역 차지연 / 2010년 초연이후 계속 주인공 맡아 / 앞 못보는 감정 표현하려 렌즈도 빼 / 관객, 판소리 하겠지 선입견 가졌다 / 감성 후벼파는 세련된 표현에 놀라 / 처음 공연땐 ‘삶의 무게’ 무대서 풀어 / 이젠 힘든 시간 뒤로하고 진심 다해
“엊그제 런스루(예행연습)를 봤어요. 아직 매만져야 할 게 많은 상태인데도 저, 김문정 음악감독, 이지나 연출 모두 처음부터 계속 울었어요. 촌티 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꾸역꾸역 올라와서…. 셋이 동시에 눈이 마주쳐 ‘우리 주책이다, 뭐 하는 거니’ 했죠.”

뮤지컬 배우 차지연(35)에게 ‘서편제’는 특별한 작품이다. 2010년 초연 후 올해까지 매번 소리꾼 ‘송화’역을 맡아온 것만 봐도 그렇다. 뮤지컬 ‘서편제’는 1993년 작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올해는 30일부터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차지연은 “‘서편제’는 비싸고 화려한 호텔 뷔페만 계속 먹다가 갑자기 양푼에 담긴 막국수, 잔치국수를 먹었는데 아주 깊고 담백하면서 개운한 느낌”이라고 했다.
강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가진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지난해 11월 출산하자마자 올봄부터 ‘마타하리’, ‘서편제’를 연이어 하는 데 대해 “제 의도가 아니라 전부터 프랭크 와일드 혼 작곡가와 아이반 멘첼 작가가 추천을 해줘 ‘마타하리’를 더 이상 사양하기 어려웠다”며 “‘서편제’ 역시 출산 후 복귀작으로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대극장 뮤지컬들은 보통 라이센스거나 창작이어도 작곡·대본을 외국 분이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화려하고 빈 구멍 하나 없죠. 그런데 가발 쓰고 남의 삶을 사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엄청난 볼거리에 몸담고 살다 갑자기 ‘서편제’를 만나면 먹먹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렇다고 ‘서편제’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에 기댄 틀에 박힌 작품은 아니다. “그런 선입견이 안타깝다”는 차지연은 “우리 것을 흠집내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깔끔하고 세련되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보신 분들은 놀라고 가세요. 판소리하고 그러겠지 했다가 직접 보고 충격받아서 ‘언제 다시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처음 극장에 발걸음하도록 만드는 게 힘들어요. 저한테도 숙제예요. 보통 제 공연하면 지인들한테 ‘뭘 또 보러 와’ 이러는데 ‘서편제’는 제가 티켓을 사서 나눠 줘요. (작곡가) 윤일상 오빠가 만든 뮤지컬 곡들도 정말 좋답니다. 감성을 후벼파면서도 고급스러워요.”

‘서편제’에 대한 그의 애정은 2막에서 시력교정용 렌즈를 빼고 연기하는 데서도 엿보인다. 평소 그는 렌즈를 안 끼면 앞이 안 보일 정도이지만, 2막에서는 항상 흐릿한 시야로 무대에 오른다. 아버지 때문에 눈이 먼 송화에 더 다가가고 싶어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무엇을 조금 더 표현하고 싶어요. 렌즈가 없으면 동생 ‘동호’가 나타나도 잘 안 보일 정도예요. 아버지 뒤를 끈 잡고 따라가는 장면도 진짜 안 보여서 그런 거예요. 그 끈이 제 생명끈이죠. 그러다 실수하리란 두려움도 항상 안고 가요. 그 두려움과 긴장이 더 무대를 살려주는 것 같아요.”

이제는 초연 멤버 모두 애틋한 사이가 됐지만 ‘서편제’ 초반 그에게 걸린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는 “당시 판소리할 배우가 없어 이자람 언니의 더블 캐스팅을 못 뽑던 중이었다”며 “저는 판소리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이유로 뽑혔다”고 했다.

“대학로 노래방에서 이 연출, 김 음악감독, 이자람 언니 앞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노래방 조명이 돌아가는 아래서 자람 언니가 판소리를 선창하면 따라 불렀죠. 이 연출님이 ‘지연아, 이번 작품은 이자람의 서편제다, 네가 욕을 먹더라도 슬퍼 말아라, 너도 너만의 뭔가가 있겠지’ 하셨어요.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나름대로 송화로서 슬픔을 표현하려 애썼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잘 봐주셨죠.”

당시 그는 “송화라는 가면을 쓰고 울듯이, ‘나 너무 힘들어’하고 말하듯이 무대에서 아픔을 표현했다”고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였다. “말도 안 되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감당해야 할 일이 줄지었다”고 한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그였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열심히 해도해도 아무도 날 인정해 주지 않고…. 항상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어두웠죠. 피해의식, 열등감, 자격지심 덩어리라는 욕도 들었어요. 일이든 가족 문제든 삶이 너무 공허하고 버거웠어요. 삶의 무게가 너무 커서 유일하게 풀 수 있는 곳이 무대밖에 없었어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맘대로 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었죠. 유일하게 위로받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는 “그 일들로 비뚤어졌으면 엉망진창이 됐을 텐데, 그래도 감당해낼 만한 사람이었기에 그 많은 일이 저한테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그는 힘들어하는 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바라게 될 만큼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됐다. 그는 “지나갈 때까지 잘 견뎠으면 좋겠다는 게 제가 그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 같다”며 “(‘서편제’ 가사처럼) 살다 보면 살아지게 된다”고 했다. 힘든 시간을 뒤로하고 결혼과 출산을 거친 그는 요즘 무대에 책임감·사명감을 느낀다. “한 작품 할 때마다 최선과 진심을 다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멋있는 배우로 늙어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젊음, 톱 이런 데 집착하지 않고 멋있게 내려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멋있는 여배우로 남을까 생각해요. 배우로서 저렇게 살다가 죽는 것도 멋있겠다, 그런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기대됩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