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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태극기 보면 울컥… 후손들, 나라 소중함 깨닫길”

입력 : 2017-08-13 21:35:47 수정 : 2017-08-13 21: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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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 30여년째 대문에 태극기 게양 / “나라 부강해져 다신 나쁜일 없길”
“태극기를 보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울컥 솟아오릅니다.”

속리산 국립공원 길목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펄럭거리는 허름한 집이 한 채 있다. 충북 유일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7·사진)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대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가 2년 넘게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했다. 주변의 눈을 피해 속리산으로 흘러든 그녀는 남의집살이와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고독한 삶을 이어갔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마음씨 좋은 홀아비를 만나 결혼했지만, 병들고 지친 몸은 평범한 여자의 삶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걸핏하면 고열과 함께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와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독한 약을 입에 달고 사는 바람에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손톱이 빠지는 고통까지 경험했다. 결혼 20년이 넘도록 아이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위로처럼 다가선 것은 뜻밖에도 태극기였다. 어느 날 기력 잃은 몸으로 길을 걷다가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나라가 건재하고 내 눈앞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는 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섰는지 모른다. 그날의 감동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았고, 한참 뒤 남편과 사별해 다시 혈혈단신이 되면서 아침마다 대문 기둥에 태극기를 내걸기 시작했다. 벌써 30여년 전이다. 처음 10여년 동안은 동틀 무렵 태극기를 게양하고, 해지기 전 깨끗이 접어 머리맡에 ‘모셔두는’ 일을 반복할 정도로 정성으로 태극기를 챙겼다. 이 할머니는 몇 해 전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금과 위안부 생활안정지원금으로 모은 2000만원을 보은군민장학회에 내놓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조국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크고 든든한지 잘 알지 못할 것”이라며 “나라가 부강해져서 후손들은 나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은=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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