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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그녀를 믿지 마세요" 첩보전의 비밀무기 '허니 트랩'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입력 : 2017-08-06 08:00:00 수정 : 2017-08-30 15: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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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트랩(honey trap). 꿀처럼 달콤해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라는 의미로 첩보전에서는 여성이 미모로 남성을 홀려 상대의 정보를 빼내는 것을 뜻한다.

1930년대 중국 스파이였던 정핑루(鄭平如)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색 계>. 배우 탕웨이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역사적으로 첩보전에서 이름을 남긴 스파이들 중에는 여성이 적지 않았다. 권력과 정보를 쥐고 있는 남성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방첩기관의 경계가 남성에게 비해 약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심리적으로 파고드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특히 첩보전 역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여성 스파이들은 정보수집에 필요한 능력 외에 섹시함과 지성미, 사교술 등을 갖춰 권력자들을 유혹했다.

2500년전 중국 월나라 왕 구천이 보낸 서시가 오나라 왕 부차를 유혹해 파멸시킨 이래 잘 훈련된 여성 공작원을 활용한 첩보전은 중요한 국면에서 늘 활용되어 왔다. 냉전 시절 이후부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공직과 민간 사회에서 고위직 여성이 증가하자 이들을 유혹해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매력적인 남성 요원들을 의도적으로 접근시키는 ‘로미오 작전’도 등장했다.

◆ 대중문화에도 등장하는 허니 트랩

허니 트랩과 관련된 이야기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로맨스 등 대중들이 선호하는 내용이 적지 않아 대중문화에서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허니 트랩의 주인공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 마타 하리(Mata Hari)다. 

여성 스파이계의 전설로 기록된 마타 하리. 그녀가 실제로 스파이활동을 했는지 여부는 논란거리다.
여러 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국내에서는 동명의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언어로 ‘태양의 눈’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명은 마가레타 젤러(Margaretha Zelle)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마타 하리는 1905년부터 일곱 겹의 베일을 하나씩 벗어가며 알몸을 드러내는 스트립 댄스로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군부와 정계 고위층, 재계 인사, 네덜란드 총리, 프로이센 황태자 등과 관계를 맺었다. 유럽 전역에 걸친 그녀의 인맥은 각국 정보기관의 관심을 끌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그녀를 스파이로 의심하고 철저히 조사했다. 그 결과 1917년 독일군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프랑스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마타 하리가 실제로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여부는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1999년 영국 정보부(MI5)가 공개한 당시 정보보고서에는 마타 하리가 ‘H21’이라는 암호명으로 독일군에 군사정보를 빼돌렸다는 프랑스측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스파이 역사에서 허니 트랩의 상징으로 기록돼 여전히 신비로운 이미지로 남아있다.

영화 <색 계>에서는 남녀 주인공을 둘러싼 정보공작과 사랑 등이 뒤얽혀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중국 영화 ‘색계(色戒)’에서 여배우 탕웨이가 맡았던 여성 스파이의 실제 모델인 정핑루(鄭平如)도 뛰어난 미모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1930년대 상하이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중국 국민당 소속으로 일본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그녀는 일본이 중국에 수립한 친일 정부인 왕정웨이(汪精衛) 정부의 정보기관 책임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접근했으나 실패, 총살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임이 대표적인 허니 트랩으로 꼽힌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으로 영어가 유창하고 미모가 뛰어났던 김수임은 공산주의자 이강국과 사랑에 빠지면서 스파이가 됐다. 이강국은 훗날 김일성 정권에서 외무상을 지냈다가 간첩 혐의로 총살당했다. 김수임은 미군정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군사기밀을 빼내 북한에 넘기고 북한 공작원들을 숨겨줬다. 1947년 이강국의 월북 이후에도 스파이 활동을 계속하던 그녀는 1950년 4월 체포돼 6월 15일 사형됐다. 이강국과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고, 그녀의 스파이 행각은 냉전 시절 반공주의 선전에 이용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드라마와 연극으로 제작됐다.

◆ 성적 유혹에 비밀정보 무더기 유출 사고 잇달아

여성 스파이들의 공작 활동에 의한 정보 유출은 생각보다 잦고 그 위험수준도 심각한 경우가 많다. 조직에서 고위직에 오른 남성들의 경우 실무자로 일하면서 몸에 뱄던 긴장감이 엷어진다. 여기에 ‘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여성 스파이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같은 정보유출 사건은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국가의 위신과 관계된 일인데다 공개적으로 사건을 다루면 어떤 정보가 유출됐고 그 정보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스스로 밝히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된 사례만 봐도 허니 트랩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2011년 스파이 혐의로 대만 당국에 체포된 뤄셴저(羅賢哲) 대만 육군사령부 통신전자정보처장은 중국의 미인계에 넘어가 정보를 중국에 넘겼다. 2002~2005년까지 태국 주재 무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2004년 중국 정보기관이 파견한 당시 30세의 호주 여권을 가진 여성 스파이를 만났다. 뤄 소장은 이후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대만 군사 정보통신망, 대만 육해공군 정보통신망 등 기밀정보를 넘겼다. 대만군은 군용 휴대전화 앞자리 7자리를 0932498에서 0932490으로 교체하는 등 정보유출 방지작업을 벌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뤄 소장은 2012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그를 유혹한 중국 여성 스파이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은 이후에도 대만 군사기지 인근에 매춘부로 위장한 여성 스파이를 배치해 대만 군인들을 포섭하는 공작을 지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해군 관련 정보를 빼낸 혐의로 2010년 러시아로 추방된 카티아 자툴리베테르.
러시아도 여성 스파이를 적극 활용하는 나라다. 2010년 영국 정치계를 뒤흔들었던 러시아 출신 여성 카티아 자툴리베테르는 마이크 핸콕 하원 국방특별위원회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영국 해군 관련 군사기밀을 빼돌렸다. 자툴리베테르는 여성편력이 있는 핸콕 의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 12월 간첩행위가 발각돼 본국으로 추방당했다. 영국에서는 1963년 당시 국방장관 존 프러퓨모의 애인이었던 크리스틴 킬러가 실제로는 소련군 장교 유진 이바노프의 애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영국이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러시아 여성 스파이 중 가장 유명한 안나 채프먼. 신원이 드러난 직후 스파이 활동을 접었지만 TV 출연과 패션사업 등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러시아 여성 스파이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안나 채프먼이다. 본명은 애나 쿠스첸코인 그녀는 대외정보국(SVR)에서 스파이 교육을 받은 뒤 200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다른 미모에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녀는 미국 뉴욕 등지를 중심으로 고급 레스토랑이나 클럽을 출입하며 상류층 남성을 유혹해 정보를 수집,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와이파이(WiFi) 무선망을 통해 카페 밖에 있는 러시아 정보요원에게 암호화 된 정보를 전송하는 등 첨단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8세이던 2010년 미국 당국에 적발돼 추방당했다. 귀국한 직후 그녀는 스파이 생활을 그만두고 TV에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미모의 여성 스파이 외에 남성 스파이가 대거 동원된 경우도 많았다. 옛 동독의 해외정보지관을 이끌었던 마르쿠스 볼프는 1950년부터 30여년 동안 ‘로미오 작전’을 펼쳤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옛 서독은 전쟁으로 많은 남성들이 전사해 젊은 남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와 관공서, 산업계에서 근무하던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고독감에 시달렸다. 볼프는 젊고 지적인 미남들을 뽑아 서독에 침투시켰다. 서독 고위층의 비서로 각종 문서를 생산하는 여성 속기사와 연구원들이 표적이었다. 옛 서독이 신원 식별 시스템을 만들기 전까지 동쪽에서 온 로미오들은 총리실과 연방정보국, 주요 정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보까지 빼내 본국에 보냈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 대한 사랑과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 스파이를 활용한 공작은 계속될 전망이다. 게티이미지
지구촌이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로 하나가 되어가면서 정보요원에 의한 정보수집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해킹 등을 통한 정보수집이 인간에 의한 것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요원의 피와 땀에 의한 공작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은 해킹보다 더 낫다는 지적도 많다. 그 중에서 미인계는 오랫동안 쓰였던 전형적인 공작 수법이지만 그 효과는 치명적이다.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과 정보기관원들이 매력적인 이성에게 끌리는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허니 트랩에 의한 정보수집활동은 첩보 세계에서 계속 쓰일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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