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현주의 일상 톡톡] '성실히 빚 갚는 사람은 봉?' 채무 탕감 역차별 논란

입력 : 2017-08-03 05:00:00 수정 : 2017-08-02 09:04:0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금융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채권 25조7000억원이 연말까지 소각됩니다. 이럴 경우 214만3000명에 달하는 채무자들의 빚 기록이 금융 전산시스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요. 이들은 장기연체와 추심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같은 조치는 그동안 금융업계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추심이나 매각을 금지해왔지만, 불법·편법 추심이나 시효중단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데 따른 정부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다만, 정부가 나서 빚을 전액 갚아줄 경우 결국 국민 혈세(血稅)를 투입해야 하고, 채무자들에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채권 소각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해는 결국 정부가 메워 줄 수밖에 없습니다. 빚진 사람들은 '버티면 정부가 나서 해결해 준다'는 잘못된 기대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자발적 상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방향으로 부채 탕감 규모와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이른바 '죽은 채권'으로 불렸다. 금융회사가 빚 독촉을 포기함으로써 채무자에게 상법상 시효의 이익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은 지금까지 죽은 채권을 땅에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발적으로 갚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빚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도 포기했다는 내부 책임론 등이 이유였다.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가 죽은 채권을 소각하기로 한 것은 이처럼 관행적인 부실채권 관리 업무를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을 포함했다.

채권·채무관계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5년이 가까워지면 금융회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0년 단위로 연장(재연장)을 하곤 했다.

통상 25년까지 연장해도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채권 추심을 포기했다. 이렇게 해서 시효가 완성된 금융회사의 채권은 공공·민간을 합쳐 214만3000명, 25조7000억원이다.

◆불법 채권 추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듯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소각될 경우 불법 채권 추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원칙적으로 채권 추심이 금지되지만, 이를 넘겨받은 채권추심업체가 시효 이후에도 불법 추심을 저지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금융위가 이날 소개한 한 피해 사례에서 A씨는 한 채권추심업체가 "일부 선납금만 납부해도 원금을 대폭 감면해준다"는 안내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미끼였다. A씨의 일부 변제는 빚을 갚겠다는 의사로 간주해 채권·채무 관계는 되살아났고, 그는 혹독한 빚 독촉을 다시 받게 됐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소각으로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로 농업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B씨의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그러나 최근 금융거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당 금융회사를 찾아간 B씨는 "과거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갚을 필요는 없지만, 해당 연체기록이 여전히 남아있어 신규 거래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채권 추심은 받지 않지만, 금융회사 전산원장에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각으로 그에 대한 기록은 채무 없음이 되고,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같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채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회수율이 지극히 낮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굳이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소각하는 것은 엄연히 갚아야 하는 빚을 탕감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채무자 도덕적 해이 부추겨…금융회사 새정부 '눈치' 보나?

그러나 정권 출범 때마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신용 대사면'은 자칫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7000억원을 들여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72만명의 연체이자를 탕감하고, 신용회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 연대보증의 덫에 걸린 신용불량자 11만명을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버티면 다음 대선 때 탕감해준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신뢰를 기반으로 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고, 성실하게 빚을 갚는 채무자와의 형평성도 깨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경우 법에 따라 더는 채권자의 상환 청구권이 없고, 채무자는 상환의무가 없다"며 "채무자의 상환의무가 없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 우려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문제를 금융위나 금융회사가 뒤늦게 깨달은 것도 아닌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분히 정권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