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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어린이집 주변 7%만 보호구역… 오가는 차들 사이로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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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31 19:21:31 수정 : 2017-08-01 0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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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놓인 어린이집 보행로 / 서울지역 6386곳 중 445곳만 지정 / 유치원 74%와 비교해도 크게 낮아 / 정원 100명 넘어야 의무 대상 해당 / 주차난 등으로 인근 상인과 마찰도 / 2017년 관련 예산 2016년의 28% 수준 그쳐 / 신청 어린이집 58곳 중 20곳만 수혜
2015년 9월, 당시 2살이던 수연이(여·가명)는 서울 강서구의 A어린이집을 나와 이면도로(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좁은 도로)로 뛰어나왔다. 건너편에 있는 놀이터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연이는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승합차가 수연이를 친 것이다. 수연이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주변을 오가는 차량이 어린이집 인근이라는 점을 알고 속도를 줄였더라면 막을 수도 있는 사고였기 때문에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수연이의 사고 이후 어린이집 앞 도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31일 찾은 A어린이집 앞은 여전히 차와 사람이 뒤섞여 좁은 길을 오가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표시는 없었다. 강서구 관계자는 “어린이집의 요청이 있으면 서울시에서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강서구가 사고 뒤 ‘천천히’, ‘주차금지’ 등의 표지판을 설치했지만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는 차량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내달렸다. 불법 주정차도 만연했다. 어린이집을 오가는 아이들은 엄마 손을 꼭 잡고 주차된 차들을 피해 걸었다.

어린이집 인근 보행길이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비율이 턱없이 낮은것으로 확인됐다. 의무 지정 기준이 너무 높은 데다 예산이 부족하고, 신청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오가는 어린이들의 보행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31일 서울의 한 어린이집 앞 골목길에서 한 여성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걸어가고 있다.
이창훈 기자
◆어린이집 100곳 중 7곳만 ‘어린이 보호구역’


보호구역은 초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 주출입문 반경 300m 이내의 보행로에 속도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는 제도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일부 구간 통행속도가 30㎞/h 이내로 제한되고, 표지판과 과속방지턱 등 안전시설이 설치된다. 노상주차가 금지되며,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벌점과 범칙금이 2배로 부과된다.

어린이들은 키가 작아 운전석에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사고위험이 크기 때문에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길은 보호구역 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어린이집 6368곳 중 인근 보행로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비율은 7.0%(445곳)에 불과하다. 아파트 등에 설치된 가정어린이집 3001곳을 제외하더라도 13.2%에 그친다. 초등학교(100%)와 유치원(74.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의무 지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인근 보행로는 조건 없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만, 어린이집은 정원 100명이 넘어야만 의무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정원이 80명인 유치원과 90명인 어린이집이 있다면 정원이 적어도 유치원만 의무 대상이 된다.

또 어린이집 중 정원이 100명 이상인 곳은 지난해 말 기준 5.8%(370곳)에 불과하다. 기준을 50명이 넘는 곳으로 낮추더라도 27.4%(1745곳)만 포함돼 애초에 현실을 무시한 채 기준을 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무 대상이 아닌 어린이집도 해당 기관장이 신청하면 인근 보행로를 보호구역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갈등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주차 등에 불편을 겪는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보호구역 신청을 막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자치구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어린이집 인근 도로에 자체적으로 ‘어린이 보호’ 표시를 하고 있다. 보호구역과 유사한 표시를 해 차량 속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보호구역 같은 법적 조치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다.

학부모 박모(30·여)씨는 “어린이집 앞 도로 바닥에 ‘어린이 보호’ 글자가 새겨졌지만 차량 속도는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청해도 예산부족으로 지정 안 돼


어린이집에서 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하더라도 예산 부족으로 지정이 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올해 서울시에 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한 어린이집은 58곳인데 이 가운데 지정된 곳은 20곳뿐이다.

서울시는 “예산이 삭감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보호구역 지정권은 광역자치단체장이 갖고 있고, 예산은 행정안전부와 지자체에서 5대 5로 부담한다. 보호구역 설치에는 1500만∼5000만원이 든다. 그런데 서울시의 예산은 지난해 9억7500만원에서 올해 2억7200만원으로 삭감됐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 주변도로 300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줄어든 예산이 걸림돌이다.

불안은 고스란히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 두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신모(34·여)씨는 “어린이집 바로 앞이 차가 다니는 곳이어서 늘 불안하다”며 “몇 십m만이라도 차량 속도가 줄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호구역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주석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위원은 “어린이들이 많이 다녀 사고위험이 큰 곳은 시설기준에 상관없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적어도 정원 50명 이상의 어린이집 인근 길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비 확보에 최선을 다해 보호구역을 매년 70~80곳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이창훈·김유나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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