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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은 있고 조용필은 없는 것…'겸연쩍다'는 싸이, '얼굴이 다르다'는 유오성

입력 : 2017-07-29 09:33:00 수정 : 2017-07-28 14: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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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코엑스에 설치된 싸이 손목동상(왼쪽)과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동(銅)색깔이라는 점을 빼면 닮은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
서울 강남 코엑스 앞에서 세워진 가수 싸이의 '(말춤)손목 동상'이 최근 구설수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렇게 돈을 들여 '손목 동상'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사자인 싸이도 "너무 과한 느낌이 든다"며 동상이 뜬금없다고 겸연쩍어했다.

이를 계기로 몇 몇 연예인 동상에 대해 알아 본다.

▲ 과거 동상은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또는 제국의 황제나

동상은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의 기념상'을 말한다.

예전엔 동상을 함부로 세우지 않았고 세우지도 못했다. 이순신 장군, 넬슨 제독 등 나라를 구한 영웅이거나 천하를 호령한 정복군주 등 몇 몇의 업적을 기리고 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 세워졌다.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일은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남이섬에 세워진 '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왼쪽)-최지우 동상. 스타 동상을 관광마케팅에 활용한 첫번째 케이스로 살아있는 연예인 동상 원조이다.
▲ 살아있는 연예인 동상 사실상 1호는 배용준

우리나라에서 연예인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연예인 동상은 비용, 사회적 합의 문제 등으로 쉽게 세워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살아있는 연예인 동상 건립안은 꺼낼 엄두를 못냈다.

21세기들어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드라마와 영화 등이 수출품으로 등장하자 연예인 동상이 홍보차원, 역사적 의미 등에서 하나 둘 세워지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연예인 동상 원조는 배우 배용준.

배용준은 2002년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을 많아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일본으로 수출된 겨울연가는 2003년 4월부터 9월까지 NHK를 통해 방영돼 '욘사마'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배용준의 일본내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며 관광코스가 된 겨울연가 촬영지를 보는 것이 일본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겨울연가 촬영지가 일본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하자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각종 마케팅에 발벗고 나섰다.

이때 배용준 동상에 세워졌다.

강원도청은 2004년 12월 24일 겨울연가 주 촬영지였던 남이성에 배용준-최지우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일본팬들과 일본 언론들이 몰려와 동상 제막식을 지켜볼 정도로 큰 화제거리였다.  

고향인 영월에 세워진 배우 유오성 동상. 영월엔 유오성 동상이 또 하나 있지만 중국에서 만든 탓인지 얼굴이 닮지 않았다.
▲ 영월 홍보대사 유오성 동상은 2개나, 각각 얼굴 달라

배우 유오성 동상은 그의 고향 강원도 영월에, 그것도 2개나 세워졌다.

고향 사랑이 남다른 유오성은 한 방송에서 동상이 설치된 사연에 대해 "영월 탄광촌이 폐광된 뒤 관광으로 활로를 찾겠다고 나선 고향을 위해 2001년부터 홍보대사를 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군청에 근무하던 친구가 '고마운데 도와줄 게 없다며 동상이라도~'라며 제작했다"고 웃었다.

2011년 세워진 자신의 동상에 "동네 꼬마들이 낙서를 해 놓았다"라는 유오성은 "다른 동상 하나는 영월 LNG발전소에 있는데 중국에서 평면 사진을 보고 제작한 까닭에 내 얼굴과 다르다"고 고백했다. 

화개장터에 있는 가수 조영남 동상. 화개장터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그의 공을 기리는 한편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세워졌다.
▲ 배호· 김광석은 있고 조용필·이미자는 아직, 조영남 동상은 '화개장터'에 

가수 동상은 작고한 몇 몇 스타만 있을 뿐 살아있는 가수 동상은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 있는 조영남 동상 정도뿐이다.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를~"라는 조영남의 히트곡 '화개장터'로 많은 이들이 알게 됐다. 

이런 사연에도 2014년 말 화재로 불에탄 화개장터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하동군 등은 관광객들을 보다 많이 끌어 모으려는 취지에서 조영남 동상을 세우는 아이디어를 내 2015년 4월 화개장터 재개장 때 동상 제막식도 아울러 열었다.

이와 달리 가요계에 미친 영향력 등을 볼 때 동상 하나쯤은 있을법한 조용필과 이미자 동상은 아직 없다. 

1971년 29살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 배호의 동상은 죽은지 38년이 지난 2009년 8월 서울 용산 삼각지에 세워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누가 울어' '안녕' 등 히트곡을 남긴 그를 잊지 못한 팬들이 모여 동상을 건립했다.
요절한 배호 동상은 그의 대표족 '돌아가는 삼각지'의 용산구 삼각지, 가객 김광석 동상은 출생지인 대구에 있지만 설립 취지는 약간 다르다.

배호 동상은 그를 잊지 못한 팬들에 의해 만들어진 반면 김광석 동상은 관광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지자체 주도로 세워졌다.

▲ 스타 동상의 모범은 스위스 몽트뢰의 프레디 머큐리 동상

연예인 스타의 업적을 기리면서 관광상품으로 멋지게 활용되고 있는 대표적 예가 전설적인 그룹 '퀸'의 리더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년 9월 5일~1991년 11월 24일)동상이다.

스위스 몽트뢰 레만호수가에 있는 프레디 머큐리 동상. 박력넘쳤던 그의 공연모습을 본뜬 작품인 몽트뢰의 대표적 관광상품이 됐으며 문화재로까지 불리고 있다.
머큐리 동상은 그가 죽은지 5년이 지난 1996년 스위스 몽트뢰 레만호반에 세워졌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8년 몽트뢰의 '재즈페스티발'에 참가한 뒤  몽트뢰에 반해 눌러 살면서 몇 몇 음반을 내 놓았다.

이를 기리기 위해 몽트뢰시는 프레이 머큐리 동상을 세우고 그의 녹음실을 보존했다.

이후 머큐리 동상은 몽트뢰를 찾는 이라면 반드시 찾아가 포즈를 취해야만 하는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됐으며 몽트뢰 관광수입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지금 머큐리 동상은 관광명소를 넘어서 소중한 지역 문화의 하나로까지 자리잡았다.  

박태훈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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