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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연애조무사' '헌법조무사'…직업비하에 우는 간호조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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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5 20:40:50 수정 : 2017-07-27 14: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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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조무사’ 혐오표현 확산에 자괴감 커 / 간호수요 늘어나 조무사 역할 커질 전망 / “日 ‘준간호사’ 美 ‘실무간호사’처럼 바꿔야”/ “자격 시험 난도·전문성 강화가 먼저” 지적도
“연애조무사?”

간호조무사 이모(31·여)씨는 최근 중고등학생인 친척 동생들로부터 이른바 ‘조무사 드립’을 알게된 뒤 자괴감이 상당하다. 서로를 “연애조무사”라며 키득거리는 동생들에게 물어보니, 연애에 서툴거나 이론만 빠삭한 사람을 일컬어 ‘연애조무사’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각종 단어에 조무사를 붙이는 ‘조무사 드립’이 인기라는 동생들의 설명에 이씨의 얼굴은 절로 붉어졌다.

더구나 얼마 전 간호조무사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성화고 간호조무사과 학생들이 스스로를 ‘조무레기’라고 부른다는 글을 보고 씁쓸함을 느꼈던 터였다. 이씨는 “병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직업의식도 있다”며 “왜 유독 간호조무사만 희화화하고 손가락질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료현장에서 간호사와 손발을 맞추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이지만, 온오프라인을 막론한 이유 없는 괄시 탓에 상처받는 일이 적지 않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간병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간호조무사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1년에 2차례 치러지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 수는 2013년 이후 매년 4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시험은 2만2397명이 응시해 1만8340명이 합격했다. 해마다 3만∼4만명의 간호조무사들이 생기고 있는 것인데, 이는 관련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서는 4년제 간호학과를 졸업한 간호사만으로는 늘어나는 간호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호조무사가 더 많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한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간호조무사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불친절’하다거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5년차 간호조무사 A(여)씨는 “얼마전 소개팅 상대방으로부터 ‘쉽게 짜증내지 않느냐’, ‘직업 때문에 성격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식의 말을 들었다”며 “사람들에게 직업이 간호사조무사라고 하면 은근히 무시당할 때가 많아 굳이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뜻밖의 비하도 겪었다. ‘막말’로 구설에 오른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솔직히 말해서 조리사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어디 간호조무사보다도 못한 그냥 요양사 정도라고 보시면 된다”고 언급한 것.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간호조무사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깔려있다는 평가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최근 ‘아는 척 하는 사람’, ‘유사한 일을 하는 사람’ 등 의미로 ‘OO조무사’라는 혐오 표현이 확산하고 있어 이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다. 헌법 강의를 하는 연예인을 지칭해 ‘헌법조무사’로, 유소년 리그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에게 ‘축구조무사’, 여경을 ‘치안조무사’라며 비꼬는 식인데 ‘모자른’, ‘부족한’, ‘엉터리’ 등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있다.

이같은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탓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병원을 나와 한 회사에 취업한 B(27·여)씨는 “간호사를 도와 환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전문직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라며 “환자나 의사, 간호사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자격지심도 컸다”라고 말했다.

물론 과거 몇몇 간호조무사들이 마취된 환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수술실에서 케이크를 들고 사진을 찍는 등 ‘무개념’ 행태가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일부의 일탈을 전체 직업군에 대한 비하로 연결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이 강하다. 또 일부 병원에서 저임금으로 간호조무사를 고용한 뒤 간호사 업무를 맡기는 관행부터 바로잡아야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간호조무사 업계에서는 ‘조무사’란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중의 편견을 고착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약어인 ‘조무사’란 단어만 봐서는 직업적 정체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1987년 당시 ‘간호원’이 ‘간호사’로, ‘간호보조원’이 ‘간호조무사’로 바뀐 이후 30년 동안 호칭에 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간호사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법개정이 번번이 무산됐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업무 성격 등을 고려했을 때 ‘조무사’란 명칭보다는 일본의 ‘준간호사’나 영미권의 ‘실무간호사’(LPN, licensed practical nurse) 등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며 “현재 협회의 영어 표기를 ‘KLPN’으로 쓰고 있고, 언론에서도 간무사란 약칭을 쓰고 있는 추세다. 관련 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명칭 변경에 앞서 그동안 부실 논란에 휩싸였던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강화하고, 민간에 맡겨진 양성 구조를 전문학과 개설 등을 통해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전문성을 강화해 ‘전문 의료인’이란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1월 시행된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에 따라 간호조무사들이 자격신고를 위해 매년 8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받게 됐다”며 “늘어나는 간호수요에 맞춰 간호조무사에 대한 전반적인 자격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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