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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65년-갈 길 먼 뿌리찾기] "내 아이 내가 키워요" 입양 대신 양육 선택한 미혼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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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0 19:14:54 수정 : 2017-07-20 20: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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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해외입양의 고통 줄이려면 <끝> / 2016년 입양아 92%가 미혼모 아기 / 주변에 임신 알리면 “어떻게 키울래”/ 미혼모들 ‘주홍글씨’ 낙인… 사회적 편견·냉대에 두 번 운다/ 낙태 강요 이겨내고 낳으면 입양 권유 / 학업 중단·취업 못해 품에서 떠나보내 / 홀로서기 돕는 대안학교 ‘자오나’ / 10대 미혼모·학교 밖 청소년 기숙생활 / 함께 아기 돌보며 상처 보듬고 치유 / 2년 지나면 1년 주거 지원… 자립 유도
“미혼모들이 건강하게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경제지원뿐만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 줘야 합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양육미혼모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서울 성북구 정릉의 자오나학교 강명옥 교장은 미혼모 지원 방향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북악산 끝자락에 안긴 덕에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자오나학교는 가톨릭 건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맑은 공기와 어우러져 내면의 상처를 잠시 잊게 해준다. 까치들은 날개를 펼 기미 없이 뛰어다녔고 길고양이들은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있었다. 자연과 사람, 동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청소년 미혼모가 자오나학교에 입학하려면 자신의 힘으로 아기를 키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강 교장은 “아이를 키울 의지가 있는 미혼모는 주변의 도움이 있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며 “조금만 뒷받침해 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면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아기 돌봄은커녕 자신의 삶조차 버텨낼 힘을 잃은 채 극심한 갈등상황에 놓인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가족뿐만 아니라 아기 아빠로부터 낙태를 강요당하고 고통 끝에 핏덩이를 안게 된 이후로는 입양을 종용당한다.

“아기를 어떻게 키울 거냐? 네가 무슨 능력이 있느냐?”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말이 피폐해진 심신을 찌른다. 아기 아빠는 연락이 두절되고 주변의 냉대와 편견 속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우리 사회에서 혼전 성관계, 동거 등에 대한 보수적 성관념은 많이 변화했지만 이에 따른 임신·출산을 죄악시하며 배척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혼외 출산율은 39.9%인 데 반해 한국은 1.95%였다. 혼외 출산율이 50%가 넘는 프랑스는 혼인신고를 한 부부 가구뿐만 아니라 사실혼 가구, 미혼모·부 가구 등이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각자가 선택한 가족형태 속에서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미혼모들은 주변의 낙태·입양 권유와 학업 중단, 취업의 어려움, 사회적 낙인에 시달리며 갖은 풍파를 겪는다. 이로 인해 많은 아기가 낳아준 엄마의 품을 떠나는 아픈 경험이 반복됐다. 지난해 입양아동(880명)의 91.8%가 미혼모가 낳은 아이였다.

기숙형 대안학교인 자오나는 미혼모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십대 소녀 미혼모들이 아기와 함께 살아갈수 있도록 교육, 양육, 자립에 이르는 통합지원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양육미혼모 3명과 아기 3명, 학교 밖 청소년 4명이 교직원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아이들의 검정고시 합격, 자격증 취득 등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도록 돕는 게 목표다. 오전 9시∼오후 4시 수업을 받는 동안 아기들은 자원봉사자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곳 청소년들은 아침에 부모가 깨워서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는 등 돌봄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교직원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원가정에서 부모에게 받아야 했을 관심을 주는 것이다. 자오나학교가 일반 미혼모 시설과 다른 부분이다. 이곳에는 복지시설마다 꼭 갖추고 있는 상담·치유프로그램이 없다. 함께 먹고 생활하다 보면 정색하고 묻지 않아도 자기 생각을 술술 털어놓는다고 한다.

미혼모 시설 중에 학교 밖 청소년을 함께 지원하는 곳도 여기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대안학교로 등록하기에 정원 수 등이 모자라 교육부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자치구 직원은 미혼모와 학교 밖 청소년을 분리해야 지원이 가능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강 교장은 “끝까지 두 대상을 함께 포용할 것”이라며 “엄마가 된 아이와 ‘이모’가 된 청소년이 함께 양육하며 치유하는 과정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미혼모 시설에서는 각자 아기가 있는 여성이 공동생활을 하며 지쳐가는 경우가 많다. 저마다 자기 아이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경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오나학교에서는 엄마가 학급 친구이기도한 ‘이모’에게 종종 아기를 맡긴다. “얘가 울어서 밤에 잠을 설쳤어.” 이모들은 짜증을 부리기도 하지만 아기가 초래하는 불편만은 기꺼이 감수한다.

이곳 아이들의 공통점은 엄마가 됐든 아니든 원가정의 상처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아이들이 순수하게 맑은 에너지를 내뿜는 아기를 같이 돌보며 자신이 받았던 양육을 되돌아본다. 상처가 덧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로와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학교 밖에 계속 머물다 보면 임신·출산의 위기상황을 맞을 수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인 예방교육이 된다.

자오나학교는 2014년 개교 전까지 지방 출신 여대생을 위한 기숙사였다. 1990년대까지 학생들의 공동체 공간 역할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취업준비에 바쁜 대학생들에게 숙소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역할을 바꾸게 됐다. 다만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민간의 후원으로 운영해 왔다. 아산나눔재단에서 자오나학교를 청소년을 위한 혁신리더로 선정해 지원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올해 말로 3년의 지원기간이 끝난다.

강 교장은 “자오나모델은 일반시설 같은 프로그램 위주 지원이 아닌 공동체 생활을 통해 청소년들이 생활 리듬과 안정감을 회복하고 학교 밖 청소년과 양육미혼모가 서로 돕게 되는 새로운 형태”라며 “여성가족부에 시범사업을 제안해 지속을 도모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자오나학교에서는 2015년 초에 입소한 2명이 졸업했다. 학교에서 규정한 2년의 기간은 끝났지만 아직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린 2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자오나학교에 있는 동안 2명 모두 대학에 진학해 학업과 생계,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지근거리에 자오나하우스을 마련해 1년간 제공하기로 했다.

“저희가 친정이 되기로 한 거예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찾아오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의미예요. 한없이 품어줄 수는 없으니 학교에서 2년간 생활하고 1년은 주거 지원 속에 자립을 도모하고 이후로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입양보다는 아기를 키울 의지가 있는 여성을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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