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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원초적 본능 잊게 하는 경쟁사회… 변연계는 ‘자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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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6 21:07:59 수정 : 2018-04-25 13: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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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종족보존의 본능을 해방시켜라
출산율 저하가 예사롭지 않다. 2016년에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1.17명을 기록하더니, 올해에도 계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출생아 수는 3만4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감소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의 출산율이다. 출산율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4월의 혼인건수는 2만100건으로 1년 전보다 11.8% 줄었다. 결혼도 하지 않으니 출산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인구 10만명당 33.5명이 자살을 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 이상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종족보존의 본능

영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슨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란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신이나 외부 절대자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며, 창조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대신 생명을 지배하는 유전자의 이기적인 본능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그 본능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개체보존의 본능인 식욕, 수면욕 등과 자신을 유지 보존하려는 종족보존의 본능인 성욕, 모성애 등이 있다. 유전자에 각인된 이러한 본능은 실제로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가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뇌 속의 가장 깊은 중심부에 존재하는 변연계는 생명체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감정을 관장한다. 이 변연계는 모든 동물에 발달돼 개체 보호와 보존을 위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등동물로 진화할수록 뇌의 겉부분에 피질이 발달하게 된다. 대뇌의 피질 중에서 앞쪽에 있는 전두엽은 사고 판단 기억 감정조절 등 고차원의 정신작용을 관장한다. 본능의 절제나 조절도 전두엽의 역할이다.

개체보존의 본능과 종족보존의 본능은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으로서 생명체가 지구상에 태어난 37억년 전부터 발휘되던 것이다. 37억년 동안 수많은 돌연변이를 통한 진화에서 혹시라도 이러한 본능을 충실하게 실현하지 못하는 생물체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모든 종은 이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개체보존과 종족보존의 본능 말이다.

그런데 현대 인류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이 많아지고, 또한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활동을 지속하지 않는 현상이다. 전두엽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37억년 동안 생명 활동을 관장해오던 변연계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전두엽은 어떠한 외부 입력 때문에 변연계를 억압하고 있는 것일까.

◆전두엽이 변연계의 본능 활동을 억압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몇 가지의 욕구가 있다. 도대체 현재 우리 사회의 어떠한 요소들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본능까지 억압하게 만드는지 알아보자.

우리 사회는 사회 불안정성과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다. 직장을 가지고 자신 있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이 10%에 이른다. 당연히 결혼해 가정을 형성하고 아이들을 낳고 잘 키울 자신감이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결혼 생활을 보장해줄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많다. 당연히 직장을 잡지 못한 사람들은 주거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행복을 꿈꾸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어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하고 사회를 이루어 공동체 생활을 한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학교·국가의 사회를 구성하고, 그러한 사회 속에 소속돼 교류함으로써 안정을 찾는다.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 돼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리고 출산 후에 나타나는 여성의 경력단절은 사회적인 소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원초 본능마저 잊게 하는 과당 경쟁

우리 한국 사회는 매우 심한 경쟁 사회다. 어린이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경쟁의 강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나 자신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자녀를 기를 자신이 없는 부모가 많이 있다. 현대 사회는 질 중심으로 삶이 바뀌고 있다. 직장에서 일찍 퇴근해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은 당연히 자녀 양육을 희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결혼보다 비혼으로 자신만의 여유를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필자는 유학 시절에 1980년대 프랑스의 출산장려정책을 경험했다. 프랑스의 다양하고 정교한 출산장려정책은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출산율을 2.0으로 만들고 있다. 우선 결혼 제도부터 다양하다. 정식 결혼 외에 동거결혼, 계약결혼 등도 모두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해준다.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도 차별 없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현재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절반이 이러한 비정상 커플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동거나 계약결혼은 헤어질 때에 법적인 다툼 없이 간단하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호되기도 한다. 결혼 형태에 상관없이 함께 사는 커플은 소득수준에 따라 정부의 주거비용을 지원받게 된다.

◆변연계에 자유를 허(許)하라

임신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매달 산모의 영양비가 지급된다. 산모의 정기적인 건강진단은 당연히 무료다. 출산 비용이 무료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산모에게 위로금이 나온다. 이 위로금은 집의 월세보다 큰 금액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도우미 서비스가 제공되고, 매월 아동수당(우유와 기저귀 값)이 지급된다. 아동수당은 3세 이전까지 나오는데, 3세 되기 전에 동생이 태어나면 2배가 아니라 3배의 수당이 나온다. 아이를 연속해서 낳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탁아소 비용은 소득수준에 따라 비용을 내는데 저소득자는 무료다. 병원 진찰비와 모든 예방접종 비용은 무료다. 그런데 여기서 참고할 사항은, 아무도 부모들이 얼마의 비용을 내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탁아소뿐만 아니라 초중등학교 식비 등 납부금은 학교에 내지 않고, 시청에 내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안전망의 구축으로 혹시 내가 경쟁에서 밀리더라도 나를 지지해 줄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을 믿게 해준다. 경쟁의 강도가 완화되고, 실패하더라도 재기의 꿈을 꿀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프랑스의 사회정책은 삶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뇌의 전두엽이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를 억압하지 않도록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장려책과 사회보장책을 다각도로 준비 중이다. 변연계 본연의 임무인 본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변연계에 자유를 허(許)해 주기를 바란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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