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그의 아들, 오마르 페레스 로페스, 쿠바에서 온 시인을 만났다. 첫 이름 ‘오마르’는 페르시아의 전설적인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를 선물받은 엄마가, 그 추억으로 지은 이름이다. 페르시아의 민족어를 지켜낸 위대한 시인 오마르는 그 서사시에서 “그대 잠을 깨라. 먼동이 트자 태양은/ 밤의 들판에서 별들을 패주(敗走)시키고/ 하늘에서 밤마저 몰아 낸 후/ 술탄의 성탑(城塔)에 햇빛을 내리쬔다”고 노래했다. 혁명가가 사랑한 시를 뜨거운 고백처럼 애인에게 준 셈이다. 사랑은 하릴없이 그의 분신을 만들어냈다. 세월은 흘러 혁명가의 씨앗마저 이제 50대 후반, 시인으로 살아왔다.
오마르의 어머니 릴리아 로페스는 25년 동안 간직해 오던 출생 비밀을 아들에게 털어놓았다. 쿠바 혁명 영웅 체 게바라가 사랑한 여인이 그녀뿐이었을까. 아르헨티나 출신 청년 체 게바라가 남미 대륙을 횡단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에서도 남편 있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 황급히 달아나는 장면도 보인다. 독서, 여행, 춤, 욱하는 성질, 유머감각, 소유욕… 사실 혁명이란 일상의 욕망을 극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체는 첫 결혼 이후 1959년 쿠바로 진격하는 게릴라 전투 과정에서 한 여인에게 소총을 반지 대신 건네면서 청혼을 했고, 둘째 아내가 된 그 여인과 네 명의 아이를 낳은 후 볼리비아로 떠나 죽었다. 쿠바를 떠나면서 그의 여섯째 자식 오마르는 태어났지만 끝내 그는 몰랐다. 유부녀였던 릴리아 오페스에게 체는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 시집을 주었고, 애인을 추억하며 그녀는 아들 이름을 ‘오마르’로 지었다. 쿠바 정부와 체의 둘째 부인은 오마르의 존재를 적극 부인하는 데 비해 첫째 부인의 유일한 딸 힐다는 오마르를 자신의 혈육으로 껴안았다. 혁명처럼 여러 여자를 사랑했던 ‘체’를 지금 우리는 사랑할까, 말까. 혁명가의 아들 오마르는 그날, 그냥 쓸쓸하게 웃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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