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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다뉴브강] 소설 '장미의 이름' 속 멜크…현대문명과 결합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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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8 10:00:00 수정 : 2017-05-25 21: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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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우 협곡을 지나 멜크로
장미기사(薔薇-騎士)의 성으로 불리던 팔레 아우어슈페르크는 빈 요제프 슈타트 지구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으로 여름마다 거대한 콘서트가 열린다.
잠결에도 귓가에 음악이 젖어든다. 지난밤 저녁 콘서트는 ‘장미기사(薔薇騎士)의 궁’으로 불리던 팔레 아우어슈페르크에서 열렸다. 빈 요제프 슈타트 지구의 시내에 자리 잡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궁전은 아우어슈페르크 귀족의 저택을 개조해 만든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다. 

크루즈 갑판에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밤을 보낸 후 아침을 맞을 수도 있다.
이 궁전이 ‘장미기사의 궁’으로 불리는 데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이 궁전은 로프라노 백작의 저택이었는데, 오페라가 로프라노 백작의 인물을 모델로 사용하면서 ‘장미기사의 궁’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현재는 소규모 음악회가 열리면서 빈 시민들뿐 아니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클래식을 선사하고 있다. 

빈을 떠난 크루즈는 크렘스와 멜크(Melk) 사이 35㎞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바하우 계곡을 따라 이동한다. 낮은 구릉지인 바하우 일대에서 1천년 전부터 포도생산지로 유명하다.
모차르트와 스트라우스의 아름다운 음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진 공연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아름답게 치장된 공간에 앉아 주변을 가득 채우는 클래식 선율을 듣고 있자니 마치 수백년 전 귀족이 된 기분이다.

크루즈로 돌아오는 내내 클래식 선율이 귓가를 맴돈다. 크루즈는 날을 넘기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음악의 도시 빈을 떠난다.

크루즈 선상 데크에서 승객들은 각자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지난 밤의 감흥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서서히 움직이는 뱃길을 보고자 객실 밖 라운지 앞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선상 데크로 올라섰다.

오스트리아 최대 규모의 바로크식 건축물이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하우 계곡의 상징 멜크 수도원을 크루즈 승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빈을 떠난 크루즈는 계곡을 따라 크렘스(Krems)로 들어서고 있다. 오스트리아 최대 포도주 생산지 중 하나인 바하우(Wachau) 동쪽에 위치한 크렘스는 전통적으로 ‘바하우로 가는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구릉지인 바하우 일대는 기름진 땅으로 천년 전부터 포도주를 생산해 왔다. 산비탈에 자리 잡은 포도밭은 다뉴브강 계곡의 크렘스와 멜크(Melk) 사이 35㎞에 걸쳐 펼쳐져 있다. 아침 해가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 계곡을 비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포도밭의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든다.

멜크 수도원 황제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과 남편 프란츠 스테판 초상화.
해가 기지개를 펼 무렵 오른 갑판에는 아침공기를 맞이하기 위한 승객들 사이로 빨간색의 물체가 덩그러니 선베드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다가서서 보니 침낭 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새벽 이슬에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이 부모로 보이는 어른과 딸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이 갑판에 올라와 침낭에 파묻혀 있는 사람을 깨운다. 나를 보며 멋쩍은 듯 인사를 건네고 자매가 싸워 새벽녘에 객실을 나갔다고 한다. 움직이는 크루즈라 멀리 가출(?)을 못한 것이 다행인 듯하다. 잠깐의 치기였겠지만 덕분에 별들로 물들은 밤하늘은 실컷 감상했을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수도원 두 번째방 초록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매달리셨던 나무십자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오전 11시쯤 되어서야 다음 목적지인 멜크에 도착한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다시 선상 갑판에 올랐다. 이른 아침과는 달리 트랙을 돌며 조깅을 하는 사람, 퍼팅 연습을 하는 사람, 흐르는 강물과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다뉴브강이 조용히 흐르는 소리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채의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크루즈는 나아간다.

수도원 네 번째방에 있는 12세기 보리수로 제작한 평화의 십자가.
가파른 계단식 포도밭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경사가 심한 포도밭이 여러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어느 순간 좋은 향기가 주위를 감싼다. 봄이면 이 지역 대기를 채운다는 그 유명한 살구나무 꽃들이다. 계곡 위로는 이름 모를 성들의 유적이 높이 치솟아 있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마을에는 아름다운 후기 고딕풍의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계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중 하나는 뒤른슈타인 수도원으로 파란색과 흰색이 혼합된 탑이 멀리 떨어진 선상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수도원 다섯 번째방의 성체 보관함.
드디어 크루즈는 계곡을 지나 정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승객들은 함께 선상에서 점심을 먹고 그룹을 나눠 멜크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나섰다.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최대 규모의 바로크식 건축물이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하우 계곡(Wachau Valley)의 상징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통틀어 가장 큰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다. 1106년 바벤베르크 왕가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기증한 왕궁을 개축한 것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움베르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수도원이자 소설에 등장하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수도원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영상물을 조각품에 투영해 보여준다.
수도원 관람은 박물관과 도서관, 부속성당 등 내부와 정원, 공원 등 외부를 둘러보는 코스로 나뉜다. 수도원 박물관은 11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옛 건물의 모습과 달리 빛과 레이저, 영상물 등 현대 문명을 결합하여 유물을 보전, 설명하고 있어 색달랐다. 곧이어 대리석과 아름다운 천장화로 꾸며져 있는 홀을 지나 테라스에 이른다.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수도원에서 다뉴브강과 고요한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담한 마을 위로 높이 솟은 쌍둥이 첨탑이 내려다보인다. 넓은 테라스에서 마을 경치를 사진에 담고 수도원에서 연결된 도서관으로 향했다. 종교, 역사적으로 귀중한 10만권의 장서가 책장에 진열되어 있다. 중세 필사본 1800권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글을 모르는 교인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성화.
금박을 입힌 조각상들과 천장화가 이 도서관 내부를 찬란하게 비춘다. 일부만 개방되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고서들이 놀랍기만 하다. 역사의 시간이 책장 한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멜크 수도원 대리석 홀의 천장화.
금으로 된 장식과 프레스코화, 천장화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섰다. 햇살 가득 내리쬐는 아름다운 공원 계단을 따라올라 잠시 일행을 떠나 산책을 즐겼다.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한걸음 한걸음이 상념에 젖어들게 한다. 

바위언덕 위에 세워진 멜크 수도원 테라스에서는 다뉴브강과 고요한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테라스에서는 마을 위로 높이 솟은 쌍둥이 첨탑이 내려다보인다. 시계탑 사이로 양 옆에 천사를 거느린 예수님상이 있다.
오후 늦게 되어서야 크루즈로 되돌아왔다. 도착한 선상 라운지에서는 모차르트에 관한 설명이 한창이다.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오전에 지나쳤던 지역의 와인이 제공된다. 

금으로 된 장식과 프레스코화, 천장화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멜크 수도원의 성당.
이 순간의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지나온 도시의 추억을 담아 또 다른 이야기를 맛보게 한다. 

멜크 수도원 정원을 크루즈 승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음식이다. 해지는 뱃머리에서 수도원을 다시 바라보며 남부 오스트리아의 풍요로운 문화경관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 새긴다. 대자연 한가운데서 흥미진진한 경험을 품고 하루를 보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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