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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파와 사대파 대결로 점철된 역사… 지금도 진행중

입력 : 2017-05-12 20:59:26 수정 : 2017-05-12 20: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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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관점은 개인의 생각이나 위치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소수의 특출한 영웅이 역사를 이끈다는 영웅사관(英雄史觀)이 있는가 하면 다수의 평범한 민중이 역사를 이끈다는 민중사관(民衆史觀)도 있다.

신간 ‘자주파 vs 사대파’는 우리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자주파적 관점과 사대파적 관점에서 제시한다.
자주파는 한국인 스스로가 노력을 통해 나라를 이끌고 성취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좋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사대파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에 비해 뒤처져 있으며 한국인 스스로 역사를 이끌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도 좋은 가치를 찾기 어렵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자주파로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있다. 또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를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사대파로는 한글 창제에 반대한 최만리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가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세계관’이 팽배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상당수 지도층이 중국 대신 일본을, 광복한 이후에는 일본 대신 미국을 종주국으로 삼으며 사대주의 세계관에 머물렀다. 이처럼 종주국에 기대는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자립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종주국으로부터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저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사대주의에 대해 ‘뛰어난 상대의 장점을 배우자’는 전략식 사대주의가 아닌 ‘강한 나라를 위해 우리가 손해봐도 좋다’는 광신적 사대주의라고 비판한다.

이 같은 광신적 사대주의는 조선 중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선조로 대표되는 사대파와 이순신으로 대표되는 자주파로 나뉘게 된다. 자주적인 힘으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전사했고, 도움을 준 명나라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사대파가 조선 사회를 장악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국의 사대파가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역사의 흐름을 헤쳐 나가는 데도 무능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같은 사대주의가 오늘날에도 만연하다고 본다. 광복 이후 한반도는 새로운 종주국인 미국의 그늘에서 7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대주의의 대상이 명나라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6·25전쟁에서 미군이 5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는 논리는 현대판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고 비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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