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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한발 한발 佛心 담아 부처님 세상으로

입력 : 2017-05-12 21:00:00 수정 : 2017-05-12 19: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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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부석사
#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히는 부석사

얼마 전에 영주 부석사 근처에 지을 집을 설계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건축을 하면서 정말 직업 선택을 잘했다고 느낄 때는 바로 좋은 땅을 만날 때다. 마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듯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품성을 지닌 땅을 만나고, 그 땅과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설계를 하고 건물이 지어질 때 무척 즐겁고 행복해진다.

지도로만 봐도 그 땅은 아주 훌륭한 곳이었다. 땅을 보러 새벽에 길을 떠났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200㎞ 거리이고 두 시간 남짓 걸린다고 나왔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짧아졌다. 물론 물리적인 거리가 짧아진 것은 아니고 여기저기 도로를 많이 만들다 보니 예전에 발길이 닿기 힘든 곳도 이제는 아주 간단하게 오고 간다. 물론 그런 편리로 인해 잃는 것도 많지만….

이른 아침에 부석사 바로 옆에 있는 북지리에 있는 땅을 먼저 구경하고 부석사로 향했다. 사과 꽃이 하얀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고 어떤 꽃보다도 예쁜 새잎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는 아주 싱그러운 아침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산길을 올랐다. 아직 관광버스가 올 시간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높다란 일주문을 지나고 은행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경사진 흙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당간지주가 나온다.

당간지주는 원래 절의 경계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당간지주에는 높다란 깃대처럼 생긴 당간이 고정되고, 당간의 끝에는 절의 위치, 상징, 그리고 경계를 나타낸다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깃발이 걸린다. 그 깃발은 ‘번’이라 부른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일주문은 사실 위치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석단이 시작된다. 높고 여러 가지 크기의 돌들을 모아 쌓아 놓은 그 석축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석축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 돌들의 결합은 화엄이라는 어렵고 알듯 모를 듯한 불교의 이론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석축을 오르는 것은 절로 들어가는 것이고, 한 단계씩 인간이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이다. 오르고 오르면 그 끝에는 무량수전이 있고 그 아래 삼라만상이 발아래 펼쳐지는 부처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석사라는 절은 모든 것을 떠나 그 자체로 한 권의 훌륭한 경전이라 생각한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가운데 모두요 일체 가운데 하나이니,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로다.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작은 티끌 가운데도 시방세계를 머금으니, 모든 낱낱 티끌마다 이와 같도다.

부석사의 경치야 말할 필요도 없고 부석사 건축의 빼어남도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신라 말에서 고려까지 건설된 이 위대한 건축은 의상대사의 화엄에 대한 생각이 절의 배치에서부터 석축의 모양까지 녹아들어 있다.

부석사는 신라 말 문무왕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규모의 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곳은 신라의 변경이었고 군사적인 요지였다고 하는데, 의상대사의 제자들이 큰스님들이 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점점 규모가 커졌고, 특히 고려시대에 중창하며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고 현판은 잘 알려진 대로 공민왕의 글씨다.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의상과 그 후예들이 신라 각지에 건립한 화엄도량 가운데 제1의 가람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석축을 감상하고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를 오르면 나타나는 석등과 무량수전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 천상의 소리처럼 황홀한 예불의 시간

가끔씩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건축물의 선호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곤 한다. 그때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통건축 중에서 늘 제일 앞자리에 나오는 곳은 바로 영주 부석사와 안동 병산서원이다. 마치 한국 전통건축의 대표선수 같은 두 곳은 모두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 경관을 극대화하는 대단한 건축 설계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언제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간다.

그래서 나는 외려 그곳에 자주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릴 때 어린이날에 어른들 손잡고 창경원에 갔다가 사람의 파도에 휩쓸려 조난을 당해 본 이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사를 가더라도 비수기에 가거나 사람들이 없는 이른 새벽이나 저녁 늦게 가곤 한다.

예전에 송광사에 갈 때도 그랬다. 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이 구경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돌아가는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오후 여섯시 무렵이었는데 대웅전 마당에 가득했던 관광객들이 하나 둘 하교를 서두르는 초등학생처럼 경내를 빠져나가는 시간이었다. 하늘은 황금빛으로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고, 마당은 정말 그 시간의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정적이 감돌았다.

해는 하늘에서 땅으로 들어가며 높이 앉아 있는 관음전의 얼굴을 수평으로 환하게 비추었다. 처마의 그늘이 사라져 관음전이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시간의 한적함을 마당 한 구석에 앉아서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댕댕댕’하며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예불 시간이었다. 운판을 두드리는 소리로 저녁 예불의 문이 열리더니 여기저기에서 스님들이 두 손을 합장하고 줄지어 경내로 들어왔다. 대웅전 마당에 몇 남아 있던 관광객들은 스님들의 기세에 밀려 조용히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스님 몇 분이 범종과 법고가 있는 종고루로 올라가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치 졸고 있던 절이 벌떡 일어나 활개를 치는 것 같았고, 조용하던 절에 활기가 넘쳐흘렀다. 화려한 저녁 햇살과 더불어 손님들에게 잠시 맡겨졌던 절이 주인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여기저기 새벽이나 저녁에 예불을 들으러 참 많이 다녔다. 송광사처럼 예불이 아주 화려하고 장엄한 곳도 있고, 운문사처럼 단아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 무척 오래된 그 장엄한 의식에 참여하고 있으면 마치 천상의 소리를 듣는 듯 황홀하기도 했다.

절에서 잠을 자고 새벽 예불에 참석하면 참 좋겠지만, 느닷없이 하루 묵게 해주십사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올 리 없다. 절 근처의 여관에서 잠을 자고 새벽 세시에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산길을 오른다. 잠을 덜 깬 채로 맞는 새벽바람은 더욱 서늘하게 파고드는데, 산문을 넘어 절 마당으로 들어서 예불이 이루어지는 대웅전의 불빛을 만나면 거짓말처럼 포근한 온기가 몸을 녹여주곤 한다.

가봤던 중에서 예불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절을 생각해 보니 뜻밖에도 부석사다. 송광사를 다녀온 직후이니 이것도 이십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이다. “화엄종찰이고, 모든 건축인이 제일 좋아하는 부석사는 예불도 대단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춰서 부석사를 찾아갔다. 그때 부석사로 가려면 지금과 달리 원주까지 가서 산 넘고 물 건너 이화령 구비구비 고개를 넘어서 가야 했다. 중간에 쉬기도 하며 가니 다섯 시간 넘게 걸렸다.
여러 가지 크기의 돌들을 모아 쌓아놓은 부석사 석축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석축 가운데 하나다.
# 종교란 사람의 이야기들 들어주고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것

그때는 초여름이었는데 비수기였는지 절 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좋은 절에서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혼자(물론 혼자는 아니고 늘 그렇듯 부부가 함께 갔다) 구경하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다.

느긋하게 장엄한 부석사의 대석단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석축을 감상하고, 범종루를 지나면 쿵하며 나타나는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장관을 보기도 하고, 안양루 기둥에 기대 서서 어디로 가는지 씩씩거리며 달려가는 소백산의 연봉을 보기도 하면서 예불을 기다렸다.

예불을 시작하려는지 스님 세 분이 범종각으로 올라갔다. 한 분씩 운판을 두드리고 목어의 뱃속을 훑고 법고를 치기 시작했다. 그 스님들과 범종각 바로 앞에 참하게 앉아서 구경하는 우리 부부, 그날 저녁 부석사 절 마당에는 그렇게 다섯 명만 있었다.

스님들은 젊은 분들이었다. 법고를 두드리는 분 뒤에 서 있는 스님에게 목어를 두드리고 온 스님이 이야기를 건넸다. 일부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주변에 아무런 소음이 없었던지라 두 분의 대화가 너무나 잘 들렸다.

내용은 그날 있었던 일이었다. 아마 지나가는 어떤 스님이 문득 부석사에 들어와서 며칠 묵어가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마 추정컨대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스님 한 분이 그러라고 하며, 그 스님들에게 돌봐주라고 한 모양이다. 부석사가 워낙 유명한 곳이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지나다 들르는 방문객이 꽤 많았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하여 두 스님이 곤란해하며 주고받는 인간적인 두런거림과, 천상의 소리인 법고와 범종 소리와 더불어 깊고 깊은 산사의 노을은 검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물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않고 무량수전으로 들어가 불꽃 광배를 등지고 앉아 있는 엄격하게 생긴 아미타불에게 인사를 올리고 예불에 참석했다. 이후에도 많은 예불을 구경하고 참석했지만, 내게는 그날 부석사의 저녁 예불이 가장 좋았다. 성과 속이 같이 있는 듯한 그런 분위기가 좋았고, 또한 스님들의 인간적인 느낌이 아주 좋았다.

신이 되지 못하는 인간들이 찾아가는 곳이 절이고 그 인간의 어수룩함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아마 부석사 무량수전에 동향을 하고 앉아계시는 아미타 부처님도 그 소리를 들었던지 빙그레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종교의 역할은 그렇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댈 곳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느낌은 예전에 익산에 있는 숭림사라는 절에 갔을 때도 느꼈다. 아주 추운 겨울날 지도를 보고 더듬더듬 찾아들어갔다. 추위에 덜덜 떨며 산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니 멀리 양지바른 곳에 절 집이 몇 채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깊은 산속을 헤매다 불빛이 반짝거리는 외딴 오두막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다. 절의 영역으로 들어서니 아랫목처럼 햇살이 따뜻했다. 추운 겨울날이고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부석사에서 보았던 예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범종루의 목어와 법고.

절 마당으로 들어가 보광전을 보고 어슬렁거리는데, 저쪽 요사채로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고, 여러 명의 여자들이 그 이야기에 호응하며 웃고 있는 소리였다. 추측컨대는 절에 스님과 신도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듯했는데, 엄숙하고 지엄한 절의 분위기라기보다는 명절에 찾아간 큰댁처럼 푸근했다.

추운 겨울날 절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마음에 쌓인 때를 닦고 구겨진 마음을 펴는 그 풍경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본 것처럼 눈에 생생했고 세속에 찌든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건축,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건축은 언제나 그렇게 감동을 준다. 부처님 오신 날을 보내며 문득 내가 가봤던 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올려 보니 추운 날 우리를 녹여준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온기가 저절로 느껴졌다. 절은 그렇게 사람을 녹여주고 감싸안아 주는 곳이구나 싶었고, 그런 게 종교의 바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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