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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입력 : 2017-05-05 09:00:00 수정 : 2017-05-04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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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찾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영화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되도록 관찰자적 시점에서 보여주려 한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경험들을 함께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난 내가 관심을 두는 것, 내가 만들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찍는 편이다. 작업을 거듭할수록 새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꾸준히 행진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1990년대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마이클 윈터바텀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재진행형 작가다. 극영화 감독으로 출발한 그는 ‘인 디스 월드’(2000) 이후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단순한 이야기꾼을 넘어 현실과 대결하는 시네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40여 편의 장편영화를 숨 가쁘게 만들어 온 그의 주제는 한없이 드넓다. 가족, 음악, 여행, 테러, 사랑, 자본, 난민, 권력,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음식, 문학, 전쟁, 탈레반 등 주요 키워드만 추려도 동시대의 관심사를 모두 아우를 정도다. 열정이 넘치는 그는 생산하는 작가이자 가장 역동적으로 영화 매체를 활용하는 감독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한-영 교류의 해’를 맞아 영국문화원과 함께 ‘마이클 윈터바텀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한 감독에 대한 조명이 아니라 유럽에 대한 1900년대 이후의 시선을 조망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 윈터바텀의 영화세계를 통해 현대 영화를 통찰한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관타나모로 가는 길’(2006)을 관람한 뒤 그를 만났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요한 내용일수록 간결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생각할 바를 명확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다. ‘웰컴 투 사라예보’(1997)가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삼아 등장 캐릭터에 허구를 가미한 작품이라면,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95%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시네아티스트로 불리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한 장면.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무혐의로 풀려날 때까지 2년 동안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영국인 무슬림 ‘팁톤 3인방’의 이야기를 다큐 형태로 그려낸다.

네 명의 파키스탄계 영국 청년들이 친구의 결혼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이들은 여정 중 아프가니스탄에 들르는데 그곳에서 미군의 폭격을 만난다. 아수라장이 된 도시에서 한 친구를 잃은 셋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합군에게 붙잡힌다. 이들은 미군에 넘겨져 관타나모로 끌려가 탈레반으로 오인받으며 2년 동안 학대당한다. 극적인 각색에다 뉴스 화면 등 실제 기록물까지 첨가한 작품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윈터바텀 특유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건에 대한 증언을 냉정하게 전한다. 수용소에서 모멸적인 대우와 가혹한 심문을 당하는 장면들은 그들의 고통을 ‘있던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영화의 엔딩은 2004년에 무혐의로 풀려난 세 사람이 런던에 살고 있는 모습이다. 감독은 현실과 지옥의 경계가 멀지 않다고 말한다. 관타나모는 현실 속에 있다.

“긴 세월 구금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어느덧 적응해서 심문과 고문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게 중요했다. 실제와 영화적 흥미 사이의 균형 말이다.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을 종종 사용했는데, 미군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고문했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음악을 쓴 셈이다. 영화 속에 그려진 것보다 이들은 더 가혹한 취급을 당했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청년 셋이 등장한다. 이들의 경험담에 3∼5%의 허구를 적절히 섞는다.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항상 나를 짓누르는 고민거리다.”

윈터바텀 감독은 오랜 시간을 들여 영화 속 세 인물을 설득했다. 영화화 과정에서 수많은 토론을 거치며 차근차근 주제에 접근해 나갔다. 그들의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비결은 긴 시간을 함께 보낸 데 있다. 한 달여 동안 함께 숙식했는가 하면, 자료 수집 차 이란과 파키스탄 등에 동행했다. 그들은 이 영화를 찍는 동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수용소에서 막 풀려났을 때 이들을 바라보던 시각과 영화가 상영된 이후의 시각은 크게 다르다. 처음엔 아무래도 뭔가 테러와 연관이 있어서 갇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눈길이 강했던 거다. 내가  누구든 관심을 가질 만한 날것 그대로의 소재를 찾아다니는 이유다.”

윈터바텀의 영화에는 영원한 고통도, 확실한 희망도 없다. 그 사이 어디쯤의 길 위에서 영화가 펼쳐지고 카메라가 다가간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가 하면 클럽에서 파티를 열고, 밴드의 공연을 따라가기도 한다. 시간의 변화를 담는 그의 여정은 ‘고통’과 ‘열정’ 사이에서 무수한 변수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다.

전주= 글·사진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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