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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복기한 트로츠키… “주인공은 민중”

입력 : 2017-04-29 03:00:00 수정 : 2017-04-28 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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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구체제 참을 수 없어 일어난 것”
트로츠키 멕시코 망명시절 쓴 혁명의 역사
민중의 참여가 어떻게 역사 바꿨나 분석
“개인의 회상과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엄격하게 고증된 문서로 서술” 강조
“1917년 2월 말까지 러시아는 여전히 로마노프 왕조의 나라였다. 그러나 8개월 후 볼셰비키들은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1917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가를 장악할 때 이들은 국가반역죄로 기소된 상태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뀐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러시아 출신 비운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1879~1940)의 말이다. 스탈린에 쫓겨 망명 길에 오른 1930년 무렵 멕시코에서 ‘러시아혁명사’를 썼다. 그는 이 책을 쓴 이후 10년쯤 지나 스탈린의 자객에 의해 피살됐다. 이 책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원망 같은, 패배자의 회한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러시아혁명의 전 과정과 역사적 의미,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이 책에 담았다. 특히 혁명 대열에 대중을 직접 참여시킨 것을 강조했다.

“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러시아 혁명의 가장 명확한 특징이다. 평상시에는 왕정이나 민주정, 국가가 인민 위에 군림한다. 역사는 정치 전문가들 즉 왕, 각료, 관료, 의원, 문필가 등에 의해 창조된다. 그러나 대중이 구체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러면 대중은 정치의 각축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은 그 장벽들을 부순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도덕가들의 판단에 맡겨두자.”


망명지에서 러시아혁명사를 집필한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왼쪽)는 이 책에서 “러시아는 대중이 국가 권력을 잡은 첫 유럽국가”라고 소개했다.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닥터지바고’의 한 장면이다.
그는 “대중은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지 미리 계획을 세우고 혁명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구체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혁명에 돌입했을 뿐”이라고 했다. 저자는 대중의 역할이 혁명 과정에서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민중의 직접 참여가 어떻게 역사의 줄기를 바꿨는지 분석한 탁월한 학자였고 혁명 투사였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 가운데 후진국이었다. 모든 사회 시스템과 제도는 대부분 유럽 국가들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나 후진국 러시아는 노동계급을 권력의 주인으로 올려놓은 첫 유럽국가가 되었다. 트로츠키는 이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책에는 혁명 직후 러시아의 실정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법원의 수위나 경비가 갑자기 항소법원의 주심 재판관이 되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병원의 잡역부가 병원장이 되고, 이발사가 고위 관료가 되었다. 어제의 소위가 사령관이 되고, 어제의 하인이나 일용직 노동자가 시장이 되었다. 어제의 기차 기름 당번이 역장이 되었고 어제의 자물통 제조공이 공장장이 되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트로츠키는 대중이 참여해 성공시킨 혁명이라면 대중이 참여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탈린 등 새로운 권력 엘리트가 아닌 대중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트로츠키의 지론이었다.

트로츠키는 새로운 권력층이 나타나 종래 구체제 같은 ‘실수’를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실권을 잡은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예측대로 철권을 휘두르며 인류 최대의 범죄를 저질렀다.

저자는 “이 책은 나 개인의 회상이나 기억에 조금도 의존하지 않았다”면서 “내가 혁명 과정에 참여한 것과 상관 없이, 나에게는 엄격하게 고증된 문서들에 기초하여 이 책을 서술했다”며 끝을 맺었다. 이 책은 종래 출판된 러시아혁명사같은 학술서가 아니다. 직접 혁명에 참여해 성공시킨 당사자가 겪은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역사서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게 사건만 나열되어 있진 않다. 사건마다 트로츠키의 생각과 역사적 시각이 가미되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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