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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뿌리, 몸과 마음 넘어 문명에 있다

입력 : 2017-04-29 03:00:00 수정 : 2017-04-28 20: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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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대한 역사 속 인식 어떻게 변화했나
기원전부터 21세기까지 동서양 대상 탐구
중세엔 모든 질환 종교적 현상으로 해석
동양서도 악령이나 귀신의 소행 여겨
15세기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존재’ 감금 시작
실성(insanity), 광증(lunacy), 광란(frenzy), 조증(mania), 히스테리(hysteria)….

역사에서 ‘광기’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이것은 비이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써 사용한 일상용어이자, 정신착란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인들이 받아들인 용어였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과 비이성이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비이성은 문명인이 야만인이 되는 지점의 울타리 너머라고 본 것이다.

40년 넘게 광기를 연구해 온 영국 출신 의학사학자 앤드루 스컬은 신간 ‘광기와 문명’에서 역사 속 광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탐구한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중세에서 19세기까지 서양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면, 스컬은 기원전부터 21세기까지 동·서양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광기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주로 종교적 관점과 의료적 관점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왕 사울이 광기를 보이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아 저주에 걸린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광기를 종교적 현상으로 결부시키는 경향이 짙었다. 종교의 힘이 강했던 중세에는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질환을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광기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종교의학과 민간의학이 혼재하면서, 많은 질환이 악령이나 귀신의 소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리스 의사들이 정신질환이 자연주의적 현상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신에 의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몸 안에서 생긴 질환이라는 관점이 등장했다. 


실성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교과서인 ‘정신의학편람’에 나오는 실성의 유형. 교과서의 저자인 존 찰스 벅닐과 대니얼 핵 튜크는 광기가 다양한 형태를 띠며, 환자의 안색을 바탕으로 실성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광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대처 방식도 변했다. 15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광인의 집’이 등장했다. 초기에는 환자 10여명을 방에 수용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자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19세기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전 세계로 퍼지면서, 정신질환자들을 가두는 ‘대감금 시대’가 본격화된다. 이후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자를 보호시설에 수용하는 형태로 이뤄지게 된다. 정신병원의 수용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무렵부터다. 정신질환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이 주목받으면서 ‘탈(脫)시설화’가 이뤄졌다.

광기와 관련해 개인이나 가족,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광기의 사회적 영향이었다. 이 때문에 광기를 억제시키려는 제도들이 생겨났다. 17세기에는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살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모든 정신질환자가 여러 형태로 감금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법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정신질환자까지 위험인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은 가족에게도 부여됐다. 가족들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및 예방을 소홀히 하면, 예방에 실패한 벌이 주기적으로 가혹해졌다.

저자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 광기에 대한 인식이 현대에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기준이 세분화되면서, 정신질환자로 규정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상적인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일상적 특징들마저 정신질환의 하나로 해석된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제약회사 등 상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 같은 광기에 대해 저자는 문명의 반대편이나 변방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문명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화가나 소설가, 작곡가, 성직가 등이 오래전부터 광기가 이성 및 감정의 혼란을 통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해 왔던 점을 지목한다. 그는 “광기는 여러 면에서 문명의 지울 수 없는 일부”라며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동시에 결코 그렇지 않은 문제”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광기의 증상, 의미, 결과, 제정신과 실성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리느냐는 비이성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맥락에 깊이 영향을 받는 문제”라며 “광인을 제정신인 사람과 분류시키는 경계 자체가 논쟁거리”라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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