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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단출한 농촌살이…물품 재활용·소비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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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2 17:08:08 수정 : 2017-04-22 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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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끼고 줄이고 지혜롭게 소비하면 시골에서도 문제없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도시인들의 큰 걱정거리 두 가지는 첫째가 적응 여부요 다음은 소득이라고 본다. 20년 전에 농촌을 선택한 우리 부부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지만 삼십대 초반이라는 젊음만 믿고 과감히 도시를 떠났다. 이삿날 저녁, 허름한 농가에 짐을 풀고 돌아가는 친구들과 여동생 부부의 연민 어린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진작에 각오한 바가 있어 농촌행을 준비하며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가능한 한 사람을 사지 않고, 소량 다품종으로, 농기계도 외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연하면 되도록 지출을 줄이면서 위험 부담이 적은 농사법을 선택한 셈이다. 살림 또한 바짝 졸라매 내려올 때 세를 준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쓰지 않으려 정기 예금을 들었다. 집수리비와 생활비를 포함한 500만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종자돈만은 건드리지 않을 심산이었다.

타설한 콘크리트 미장마감을 하는 광경. 웬만한 일은 직접 해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즈음 귀농 관련 불문율은 3년 내 수지를 맞추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우리는 드물게 첫해부터 균형을 이뤘다. 그야말로 안 쓰고 안 사고 매사 독하게 따져가며 생활비를 줄이고 줄인 결과였다. 비 오는 날에는 우비 대신 관리기 덮개를 쓰고 고구마를 심었고 어떤 때는 허수아비 옷처럼 왕겨 포대에 구멍을 뚫어 걸치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농부가 밭에서 뽑아 던진 총각무를 수거해 오일장에 가서 팔기도 하고, 흑염소 중탕을 내리기 위한 도축비 만원이 아까워 직접 잡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귀농 초에 금융기관 출신인 아내가 밭일의 생산성을 나름대로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아내에 따르면 무언가 수확해서 팔기 위한 일은 시간당 1000원가량이고 팔 것이 없을 때는 절반 정도라 했다. 도시의 커피숍에서 일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비가 시간당 2500원이었으니 당시의 농업수익률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도시처럼 맨몸이 아니고 자경이든 임대든 땅에 거름과 씨앗을 넣어 가꾸는 등 투자가 앞선 사업인데도 말이다. 새내기 농부 기준이긴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기가 막혔다.

필자가 직접 시공한 정자. 시골에선 반목수가 되어야 한다.
신출내기 농부에게 시련의 절정은 그해 늦가을에 찾아왔다. 주력 작목으로 심은 생강값이 폭락해 차라리 수확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씨앗량에 비해 무려 열다섯 배가 나온 작물을 포기할 순 없어 서둘러 굴을 파고 생강을 수확했다. 굴을 파다가 두 번이나 무너졌지만 가까스로 마무리하고 생강을 임시저장한 다음 채소 장수들이 쓰는 확성기를 샀다. 시골에 와서 보니 빚 없는 농가는 젊은층이나 대농이 아니고 농부에서 상인으로 발 빠르게 변신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장날이면 읍내뿐 아니라 가까운 시·군까지 가서 가격이 적힌 골판지를 조끼처럼 앞뒤로 두르고 확성기로 외쳐 팔았다. 아내는 트럭 짐칸에서 팔고 나는 일륜차에 싣고 돌아다녔는데 청양장에는 혼자 갔다가 주차위반 딱지를 떼어, 긴 하소연 끝에 철회해준 일도 있다. 시골이다 보니 생강이 똥값이 된 사정을 경찰관도 알았기에 가능한 에피소드였다. 그래도 2000㎏ 넘는 생강을 다 팔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고, 그 사이 장날에 동네 사람을 비롯한 지역민들과 여러 번 마주쳤다. 그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차 바퀴가 구르면 돈이 들어간다

소비를 줄이는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는 시골에선 꼭 필요하지만 도시에선 넘쳐나는 것들을 수시로 싣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한 번은 굉장히 질 좋고 비싼 자투리 천막을 한 트럭이나 얻어와 밭고랑 폭으로 절단해 십수년간 재활용했고, 옷이나 신발은 외출용 외에는 거의 사지 않는다. 농가에 요긴한 고무통이나 함지들도 장만한 것보다 얻은 것들이 더 많다. 어찌 보면 구차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환경농업을 하는 마당에 이런 일들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차도 마찬가지로 아직 한 번도 새 걸 산 적이 없다. 새 차를 뽑아봐야 휘발성 유기화합물 세례에 세금만 더 낼 뿐이라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물품에 부여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엇보다 소득이 낮은 시골 생활에는 재활용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수 있다.

농사에서 은퇴한 어르신의 중고 농기구를 팔기 위해 늘어 놓았다. 후배는 거의 반값에 농기구를 장만했다.
차보다 몇 곱절 더 돈이 들어가는 집을 지을 때도 어떻게 하면 적게 들면서도 생태적으로 지을 것인가 고민 끝에 황토 벽돌과 나무를 소재로 건축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연면적 108.9㎡에 이르는 이층집을 지으면서도 7000만원도 들지 않았다.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얹고 베란다 지하에는 저장고를 갖췄음에도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기에 수천만원을 절감했다. 기본 설계는 물론 전기와 수도, 골조와 패널 작업, 보일러 배관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서 인건비를 줄여갔다.

이를테면 고가의 크레인 대신에 트랙터를 이용해 기둥과 보 같은 중량물을 올리고 정히 할 수 없는 부분만 외부 전문가에 맡기는 식이었다. 기초에서 준공까지 공사 기간이 남들보다 두 배 이상 길어졌지만, 급할 것이 없었기에 농사를 짓는 틈틈이 공사를 이어갔다. 특히 집을 짓기 전 인터넷 검색에 박람회를 둘러보며 관련 지식과 정보를 파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렇다 보니 창고나 비닐하우스 등 부속 시설을 지을 때도 온전히 남에게 맡긴 적이 없다. 무조건 동료와 품앗이가 아니면 직접 해결한다. 이러저러한 경험이 쌓여 나중에는 하우스 실습 강사로 나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간간이 시공을 맡아 살림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됐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농가 살림을 들여다보면 도시와 달리 수입 구조에 변수가 많은 편이다. 농업이 날씨나 병해충의 영향을 크게 받는 데다 수확기가 크게 일년에 두 번가량이어서 지출의 형태도 가능한 한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좋다. 시기 조절을 할 수 있는 각종 보험료를 비롯해서 하다못해 소소한 정례성 회비도 양해를 얻어 월납이 아닌 반기납 혹은 연납으로 바꾸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모아둔 돈에서 곶감 빼먹듯 쓰게 되거나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해 과도한 이자를 물게 된다.

귀농귀촌인에게 주어지는 정부와 지자체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고 각종 시범 사업이나 공모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입의 유형을 늘리고 지출을 억제하도록 한다. 그밖에 외식비, 통신 요금, 차량 유지비, 난방비도 필수 재점검 목록들이다. 때로 적절한 틈새 공략도 효과적이다. 한 예로 중형 휘발유 승용차를 중고 픽업트럭으로 바꾸면 거주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기름값과 세금면에서 유리하다. 도시보다 부담이 큰 난방비도 마찬가지다. 고가의 기름대신 연탄, 나무, 태양열 온수기 등을 적절히 혼용하면 같은 비용으로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날 수 있다.

#시골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우리 부부는 수년 전까지 2만4750㎡를 유기농으로 경작했다. 하지만 태생이 농부가 아니었기에 아내에게 무리가 되어 농사를 줄이는 대신 농촌 체험과 귀농 교육, 직장 생활을 함께한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선후배들도 대체로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데 전업농에서 서서히 겸업과 부업농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테면 남편은 농사를 짓고 아내는 직장 생활을 하거나 둘 다 농사 외에 방과 후 교사 등 다른 일을 겸하는 식이다. 더러 농사를 꾸준히 이어가는 농가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세는 전자인 것 같다.

지난 경험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드리고픈 말은 시골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선 부디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시라는 것이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동료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아보이는데 왜 그럴까? 같은 노력을 해도 도시에 비해 손에 쥐이는 건 분명 적은데도 말이다.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답이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동물을 마음껏 키울 수 있어서란다. 다른 이로부터는 자연에 가까운 삶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지어낸 말 같지는 않다.

만약 누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어서…’라는 답을 들려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서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20년 전보다 훨씬 더 가볍고 즐겁다.

이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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