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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살리는한마디"괜찮니?"] 대한민국에 만연한 자살을 자랑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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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6 09:00:00 수정 : 2017-04-28 17: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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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자랑하는 문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젠가부터 자살을 재미삼아 이야기하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묘사하는 등 옳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공공연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 자살률은 이젠 거론하기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자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감대가 물씬 느껴지는지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처럼 상황은 심각한데 의외로 우리들의 평소 행동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말이다.

안순태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한 논문에서 “미디어에 투영되는 자살의 모습은 그 사회가 자살을 보는 거울과 같다”고 적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심정으로 바라본 미디어 속 자살의 모습은, 꽤 안타깝고 아쉽다. 자살사건에 대한 과도한 보도는 본 글에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많은 분이 이미 지적도 하셨고, 필자의 판단으로는 ‘자살보도 권고기준’과 일선 기자들의 자정작용,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의 모니터링으로 질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사항은 연예인들의 넋두리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살이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 특히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고 카메라 앞에 복귀한 연예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 “실제로 여러 번 자살기도” 등의 스토리를 쏟아놓는다. 자살을 감행할 때 사용했던 방법까지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발언들은 일정한 제한도, 가감도 없이 사회자나 동료 출연자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묘사되어 미디어의 헤드라인으로 재생산된다.

그분들의 힘든 시간과 극복의지를 폄하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도대체 왜 대중 매체에서 자살 넋두리를 늘어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연출하는 방송국에도 똑같이 답답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자살 넋두리의 위험성은 차인표와 손현주 등 동료 연예인들 또한 지적한 바 있으며, 자제를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세상 어느 나라보다 ‘연예인 따라하기’가 심한 나라, 12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중인 위기의 국가에서는 ‘이런 일도’ 조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뭐 그리 문제인가, 자살하게 하는 이 세상을 원망해야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지적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토크쇼 등의 방영 시간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간대라는 것이다. 아직은 성인들에 비해 판단력이 덜 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자칫 인생이 정말로 힘들 때에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 인생의 선택일 수 있음을 교육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우울증 등 자살로 치닫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불안 상태에 처한 이들에게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수의 연구에 의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일반인은 자살 관련 메시지나 스토리 등 자극물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 필자의 칼럼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살 위험군, 취약 그룹에게 연예인의 구구절절한 넋두리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극도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 중인 우리나라 노인층, 특히 경제적·육체적·감정적으로 고통의 정점에서 오직 TV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시는 독거노인들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자신보다 이래저래 나아보이는 연예인들의 자살 이야기는 상대적 박탈감에 무력감, 감정이입을 야기하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생각이다. 제발, 정말로, 연예인들의 자살 넋두리는 없었으면 좋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필자가 진행한 연구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드라마 속 자살 장면에 대한 조사였다. 2015년 8월부터 1년여간 오후 9~12시에 방영된 드라마 70개를 고찰했고, 실제로 자살 장면이 등장한 드라마는 반을 넘는 48개였다. 공중파 가운데 자살장면을 가장 자주 내보낸 방송사는 SBS였으며, KBS와 MBC의 드라마에도 상당한 자살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 자살상황에 대해 세밀한 묘사를 포함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자살시도의 시간과 장소에 대한 반복된 언급도 발견되었다. 자살에 사용된 도구와 약품은 물론이고 획득 경로까지 밝히는 드라마도 있어서 놀라웠다. 자살에 대한 원인과 배경, 감행의 순간까지 매우 선정적으로 표현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고찰되었다.

이처럼 위험 요소들이 골든타임, 즉 가족이 함께 휴식하는 시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MBC의 수·목 미니시리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는 '은호원'(고아성 분)이 대교 위에 올라서는 장면과 은호원, '도기택'(이동휘 분), '장강호'(이호원 분)가 자살시도를 암시하며 신발을 벗는 등의 장면을 방영했다.

이에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특정한 장소에서의 자살시도 장면이 해당 장소에 대한 관심유발, 모방 야기 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방심위는 아주 낮은 수준의 조치인 의견제시를 결정했으며, 이 같은 조치에 MBC 드라마 관계자는 “은호원이 한강에 뛰어드는 신은 투신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향후 인생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드는 모티브가 된 사건을 묘사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모호하고 사회적 책임성이 결여된 답변이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강에 위치한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이들은 5년간 무려 2000명에 육박한다. 우리는 이런 비극적 사회를 살아내고 있다.

“미디어에 투영되는 자살의 모습은 그 사회가 자살을 보는 거울”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혹시 우리는 세계 1위의 자살률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 극도의 비극을 자랑도 하고 재미삼아 말도 하며 창작물의 흔한 소재로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디어에서 자살 장면과 관련 이야기들, 도구나 방법 등은 아예 볼 수도 없고, 접할 수도 없었으면 좋겠다. 자살률이 조금 더 떨어지는 그날까지, 당분간이라도 말이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서강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장)

본 칼럼은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세계일보가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해 진행하는 연재형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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