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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병사는 싸구려?"…장병 처우 논란에 숨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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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8 11:03:00 수정 : 2017-04-08 13: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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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안보를 강조하며 표심(票心)잡기에 한창이다. 안보를 중시하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서 안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중도 보수층으로 지지세를 확산하려는 의도다. 

K-9 자주포 승무원들이 사격훈련을 앞두고 포탄을 차내로 운반하고 있다. 육군 제공
안보를 강조하려는 대선 후보와 정당들이 강조하는 분야가 바로 병사의 처우 개선이다. 60만 대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병사들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통해 군 통수권을 행사할 준비를 갖췄다는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 여기에 군복무중이거나 입대를 앞둔 20대 청년과 그 가족 수백만명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정책 행보 한 번으로 핵심 지지층의 충성도를 높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으니 정치권이 병사 처우 개선 공약에 올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표심을 잡기 위해 내놓은 ‘달콤함 군 복지’ 정책이 선거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취를 감춘다는 데 있다. 그 원인으로는 병사의 가치에 대한 군과 사회의 시각이 지목된다. 병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병사의 처우 개선은 물론 2030년 한반도 안보 상황에 걸맞는 군대의 모습은 갖출 수 없다.

◆ 끊이지 않는 ‘애국페이’ 논란

군과 사회가 병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급여다.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들의 급여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턱없이 낮다. 애국심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애국페이’라는 단어가 공감을 얻는 이유다. 

GOP 부대 병사들이 드럼통에 담긴 연료를 운반하고 있다. 육군 제공
고용노동부가 설정한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다. 8시간 기준 일급으로 환산하면 5만176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유급 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으로는 135만2230원이다. 올해 병사 급여는 병장 기준 21만6000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의 16% 수준이다. 월 209시간 기준으로 시급을 환산하면 1033원으로 8시간을 일해도 일급은 1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 병사 급여가 우리 군보다 낮은 경우는 거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에 따르면, 1~3년간 의무복무를 하는 이집트는 병사들에게 최저임금을 그대로 적용해 1200 이집션 파운드(약 16만원)를 지급한다. 2년 의무복무제인 태국도 최저임금과 동일한 9000바트(약 30만원)을 준다. 4년 복무제인 대만은 최저임금의 33%인 6000 대만 달러(약 22만원), 최대 3년 의무복무인 이스라엘은 1616 쉐케림(약 49만원)으로 최저임금의 34% 수준이다. 2년 의무복무인 중국은 700위안(약 13만원)으로 최저임금의 34% 수준이며, 브라질은 1년 의무 복무하는 병사에게 700레알(약 24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는데 최저임금의 80% 수준이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동원 예비군이나 향방 예비군 훈련에 소집되어 훈련에 참가하는 청년들은 2017년 예산안 기준으로 일반 예비군 훈련에 소집된 청년들에게 하루 1만3000원의 실비를 보상받는다. 그러나 2015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예비군 1명이 훈련을 받을 때 지출하는 평균비용은 교통비와 식비를 합쳐 2만2190원으로 나타났다. 자비를 써가며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는 셈이다. 

한 병사가 영상공중전화로 가족과 통화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일각에서는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 국가에서 병사 급여는 일반 사회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월 20만원 수준의 급여는 병영에서 담배 등 기호품을 구입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병사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감안하면 병사들의 생명연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 구매만 고려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문화생활이다. 병사들이 병영에서 인간답게 생활하려면 오락과 외출 및 외박 등이 필요하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안하면 현재 병사 급여체계로는 충족하기 어려우며 가족의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열정페이에 애국페이까지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이 애국심을 기꺼이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 “문제는 돈이 아니다. 병사의 가치 문제다”

병사들에게 충분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를 급여만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

훈련병들이 각개전투훈련을 실시하며 돌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기자는 10여년 전 육군에서 복무하면서 목격했던 부대 정문의 현수막을 지금도 기억한다. ‘부대 비전투손실을 줄이자!’라는 문장이 적혀있던 현수막이 의미하는 바를 소대장에게 듣고 나서 기분이 매우 불편했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비전투손실’이라는 단어가 자살, 교통사고나 작업 중 사고 등으로 죽거나 다치는 경우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인 손실(損失)은 사람이 아닌 물건에 쓰이는 단어다. 기자가 봤던 그 현수막은 부대가 병사들을 인격체가 아닌 일종의 소모품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병사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같은 풍조는 1950년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숨졌다. 온 국토가 전쟁터로 변한 상황에서 죽음은 늘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죽음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죽음에 무감각해졌다. 전선에서 북한군과 싸우던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만명의 죽음은 통계상의 수치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처럼 병사들의 죽음은 군대에서 전사자 통계란을 채우는 숫자일 뿐이었고 인격이나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병사들이 부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도록 만드는 전쟁의 상흔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1960년대 이후에도 계속됐다.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보다 국가의 생존이 더 중요시됐고, 개인의 인격과 가치는 낮게 평가됐다.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 구조는 급속히 커졌고, 굶주린 청년들이 군에 몰리면서 인적 자원은 말 그대로 넘쳐났다. 급여는 최소한의 수준만 지급해도 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들이 애국심을 발휘해 헌신해달라”고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국토방위를 위해 입대한 병사들이 전투임무 대신 대대장 수발을 들거나 간부 자녀 과외, 테니스장 관리 등에도 투입될 정도로 군 인력이 방만하게 운영되어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사들이 사고로 죽거나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제대시키고 그 빈자리를 신병으로 대체했다. 병사를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청년들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도 군 조직은 계속 커진다는데 있다. 출산율 저하로 입대 가능 인원이 줄어들면서 군 구조 개편을 수반한 국방개혁이 진행중이지만 군 조직과 인력 운영은 여전히 비효율적이다. ‘병사=싸구려’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입대 가능 인원이 줄어들자 대체복무제를 폐지해서 부족한 병역자원을 메우겠다고 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에 기인한다.

2013년 10월 국군의날 행사에서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인식을 바꿔서 ‘병사=비싼 존재’라고 생각해보자. 국방부가 지출하는 전력운영비는 대폭적인 증가가 어렵다. 병사가 값비싼 존재로 바뀌면 국방부는 60만 대군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모병제 수준인 20~30만명까지 감축하기는 어려워도 기존 국방개혁안보다는 많은 병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병력이 줄어들면 군 구조 개편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전쟁 수행에 효율적인 작고 민첩한 조직으로 바뀌는 토대가 생기는 셈이다. 병사의 안전과 인권보호에도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지급해야 할 보상금도 지금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병영정책과 관련한 상당수의 이슈들이 저절로 풀리게 된다.

병사는 군대의 근간이다. 60만 대군 중 90% 이상이 병사로 구성되어 있다.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군대를 건강하고 활력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사를 대하는 인식의 전환이다. 병사는 병영을 구성하는 톱니바퀴의 일부가 아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한 소모품도 아니다. 병사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값비싼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병영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입영대상자들은 ‘내가 군대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군은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대답을 들려줄 의무가 있다. 병사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을 비롯한 종합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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