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 자주포 승무원들이 사격훈련을 앞두고 포탄을 차내로 운반하고 있다. 육군 제공 |
문제는 표심을 잡기 위해 내놓은 ‘달콤함 군 복지’ 정책이 선거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취를 감춘다는 데 있다. 그 원인으로는 병사의 가치에 대한 군과 사회의 시각이 지목된다. 병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병사의 처우 개선은 물론 2030년 한반도 안보 상황에 걸맞는 군대의 모습은 갖출 수 없다.
◆ 끊이지 않는 ‘애국페이’ 논란
군과 사회가 병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급여다.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들의 급여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턱없이 낮다. 애국심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애국페이’라는 단어가 공감을 얻는 이유다.
GOP 부대 병사들이 드럼통에 담긴 연료를 운반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 병사 급여가 우리 군보다 낮은 경우는 거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와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에 따르면, 1~3년간 의무복무를 하는 이집트는 병사들에게 최저임금을 그대로 적용해 1200 이집션 파운드(약 16만원)를 지급한다. 2년 의무복무제인 태국도 최저임금과 동일한 9000바트(약 30만원)을 준다. 4년 복무제인 대만은 최저임금의 33%인 6000 대만 달러(약 22만원), 최대 3년 의무복무인 이스라엘은 1616 쉐케림(약 49만원)으로 최저임금의 34% 수준이다. 2년 의무복무인 중국은 700위안(약 13만원)으로 최저임금의 34% 수준이며, 브라질은 1년 의무 복무하는 병사에게 700레알(약 24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는데 최저임금의 80% 수준이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동원 예비군이나 향방 예비군 훈련에 소집되어 훈련에 참가하는 청년들은 2017년 예산안 기준으로 일반 예비군 훈련에 소집된 청년들에게 하루 1만3000원의 실비를 보상받는다. 그러나 2015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예비군 1명이 훈련을 받을 때 지출하는 평균비용은 교통비와 식비를 합쳐 2만2190원으로 나타났다. 자비를 써가며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는 셈이다.
한 병사가 영상공중전화로 가족과 통화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
◆ “문제는 돈이 아니다. 병사의 가치 문제다”
병사들에게 충분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를 급여만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
훈련병들이 각개전투훈련을 실시하며 돌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이같은 풍조는 1950년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숨졌다. 온 국토가 전쟁터로 변한 상황에서 죽음은 늘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죽음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죽음에 무감각해졌다. 전선에서 북한군과 싸우던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만명의 죽음은 통계상의 수치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처럼 병사들의 죽음은 군대에서 전사자 통계란을 채우는 숫자일 뿐이었고 인격이나 가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병사들이 부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
문제는 청년들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도 군 조직은 계속 커진다는데 있다. 출산율 저하로 입대 가능 인원이 줄어들면서 군 구조 개편을 수반한 국방개혁이 진행중이지만 군 조직과 인력 운영은 여전히 비효율적이다. ‘병사=싸구려’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입대 가능 인원이 줄어들자 대체복무제를 폐지해서 부족한 병역자원을 메우겠다고 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에 기인한다.
2013년 10월 국군의날 행사에서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
병사는 군대의 근간이다. 60만 대군 중 90% 이상이 병사로 구성되어 있다.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군대를 건강하고 활력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사를 대하는 인식의 전환이다. 병사는 병영을 구성하는 톱니바퀴의 일부가 아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 가능한 소모품도 아니다. 병사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값비싼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병영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입영대상자들은 ‘내가 군대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군은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대답을 들려줄 의무가 있다. 병사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을 비롯한 종합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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