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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정말 공주가 된 것 같아요"… 한복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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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9 10:09:57 수정 : 2017-04-09 15: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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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서, 거리에서… ‘한복 데이트’ / 20·30대 SNS ‘한복스타그램’ 인기 / 한국 온 외국인들 필수 관광 코스 / 관련 업계 ‘한복의 르네상스’ 반색 / 경복궁·인사동 인근 대여점 확산 / 질 낮은 ‘공장형 한복’ 양산 부작용 / 전통산업 부활의 기회이자 위기 / ‘한복 한류’ 이끌어갈 콘텐츠 개발 / 정부 차원 다양한 장려정책 필요
“와우, 정말 공주가 된 것 같아요!”

지난 2일의 경복궁, 독일인 나틀리(20·여)씨는 처음 입어본 한복에 연신 “그레이트”, “뷰티풀”을 외치며 즐거워했다. 한복의 ‘비단결’은 독일의 전통의상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나틀리씨는 “외국인이 그 나라 전통의상을 입는 것은 무척 의미있는 경험”이라며 “또 오고 싶을 것 같다”며 웃었다. 나틀리씨에게 한복을 소개한 대학생 권예현(24·여)씨는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오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한복”이라며 “어디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신했다.

이날 부산에서 서울을 찾은 대학생 김소연(24·여)씨 커플은 ‘한복 데이트’에 나섰다. 한복 데이트는 당일치기 서울 여행에서 가장 해보고 싶던 일이었다. 경복궁 근처를 거닐며 남자친구와 연신 사진을 찍은 김씨는 “최근 친구가 올린 한복셀카를 보고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완연한 봄날씨에 한복을 즐기는 젊은이들 부쩍 늘었다. 한복 차림의 그들은 봄꽃처럼 싱그럽고 예쁘다. 이들의 모습에 전염된 것인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복 입기는 서울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한복 르네상스(부활)’를 기대해 볼 만한 근거다. 하지만 유행에 기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한복대여소의 경쟁 등으로 ‘질낮은 한복문화’가 자리잡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복의 부활

한복열풍은 20·30대 여성들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복을 입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한복스타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관련 게시글이 10만건에 달할 정도였다. 이제는 차츰 외국인 관광객, 중년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온 안창섭(56)씨 부부는 셀카를 찍으며 “한복 입고 나온 게 결혼 26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중국인 장위이(27·여)씨는 “지난해 한국을 찾았지만 날씨 때문에 한복을 입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동료와 한복을 입으려 다시 왔다”며 활짝 웃었다.

한복은 이제 외국인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문화로 꼽힌다. 7일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전세계 한국인 유학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친구에게 꼭 경험시켜주고 싶은 한국 문화’로 ‘한복입고 고궁 거닐기’가 3위에 꼽혔다. 대학생 김인우(25)씨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이면서도 음식 등과 달리 권하는 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덩달아 관련 산업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2015년 경복궁과 인사동 근처 한두 곳에 불과했던 한복 대여점은 불과 2년 새 50곳이 넘게 생겼다. 이달 초 북촌에 한복 대여점을 개업한 이동걸씨는 “날씨를 타는 부분도 있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등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뜻밖의 열풍에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어부쳤다. 종로구에서 마련한 ‘한복 봉사활동’은 어린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최근 북촌전통공예체험관에서 ‘한복 봉사활동’에 참여한 중학생 윤지인(15)양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며 “사진도 찍고 봉사시간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종로구는 또 매월 둘째 주 화요일을 ‘한복입는 날’로 정해 직원들이 한복을 입도록 장려하고, 구내 음식점에서 한복 착용시 10∼20%가량 할인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여점 가격경쟁·중국산 한복… 질 낮은 한복 문화 우려도

한복 열풍의 이면에는 함정도 있다. 대여점 간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칫 질 낮은 한복을 입는 문화가 자리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한복 열풍은 크게 낮아진 대여비용 덕분이란 게 중론이다. 대여점이 늘면서 시간당 2만∼3만원선이었던 대여료는 이제 시간당 1만원 안팎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단가를 맞추기 위해 질 낮은 소재를 쓴 중국산 ‘공장형 한복’이 시장을 점령하면서, 정작 우리 전통한복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복 업계에서 한복 붐을 마냥 반기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1994년 1801개(종사자 2895명)였던 한복제조업체는 2002년 한 해 소폭 증가한 것을 제외하곤 23년 동안 계속해 감소했다. 2015년 현재 한복제조업체는 602개(종사자 1017명)가 전부고, 이중 588개 업체(97.6%)가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복 제조업체 관계자는 “디자인만 본 떠 값싼 재질로 만든 공장형 한복이 범람하면서 한복업 전반이 계속해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찍부터 한복 대여점을 운영해 온 정병훈씨는 “출혈경쟁이 심화하면서 품질에 대한 고민이 뒷전이 되고 있다”면서 “다림질이나 세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하루에 여러 번 대여되는 경우도 많다. 처음 한복을 입는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이 시커먼 소매 등을 보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대학생 권예현(24·왼쪽)씨와 독일인 친구 나틀리.
경기도 화성에서 온 안창섭(56)씨 부부.
◆“지금은 과도기… '드라이브' 필요해”

전문가들은 그러나 젊은 세대가 한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지금이 한복 르네상스의 적기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한복진흥센터 박선영 팀장은 “젊은 세대가 한복을 즐기는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인 상황”이라며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일본처럼 기모노를 입으면 택시비를 10% 할인해주는 등 구체적인 혜택이 많아져 한복이 일상 속에 자리잡는다면 관련 산업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감각있는 젊은 디자이너 육성도 당면과제다. 지난해 26년 역사의 전통의상학과가 사라진 배화여대의 박상희 교수(전통의상학)는 “정부에서 전통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취업률’ 같은 정량지표로 평가를 하다보니 한복학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한복을 배우고 싶어도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기모노 대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은 일본은 본받을 만한 사례로 꼽힌다. 좋은 품질의 기모노가 일상에 자리잡으면서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했다. 교토의 유명 기모노 대여업체인 유메야카타 관계자는 “가격경쟁보다는 숙련된 기술자들을 채용·교육하고, 매년 직접 디자인한 기모노 상품을 내놓았던 것이 꾸준한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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