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의 경복궁, 독일인 나틀리(20·여)씨는 처음 입어본 한복에 연신 “그레이트”, “뷰티풀”을 외치며 즐거워했다. 한복의 ‘비단결’은 독일의 전통의상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나틀리씨는 “외국인이 그 나라 전통의상을 입는 것은 무척 의미있는 경험”이라며 “또 오고 싶을 것 같다”며 웃었다. 나틀리씨에게 한복을 소개한 대학생 권예현(24·여)씨는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오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한복”이라며 “어디에 내놔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신했다.
이날 부산에서 서울을 찾은 대학생 김소연(24·여)씨 커플은 ‘한복 데이트’에 나섰다. 한복 데이트는 당일치기 서울 여행에서 가장 해보고 싶던 일이었다. 경복궁 근처를 거닐며 남자친구와 연신 사진을 찍은 김씨는 “최근 친구가 올린 한복셀카를 보고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복열풍은 20·30대 여성들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복을 입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한복스타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관련 게시글이 10만건에 달할 정도였다. 이제는 차츰 외국인 관광객, 중년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온 안창섭(56)씨 부부는 셀카를 찍으며 “한복 입고 나온 게 결혼 26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중국인 장위이(27·여)씨는 “지난해 한국을 찾았지만 날씨 때문에 한복을 입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동료와 한복을 입으려 다시 왔다”며 활짝 웃었다.
한복은 이제 외국인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문화로 꼽힌다. 7일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전세계 한국인 유학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친구에게 꼭 경험시켜주고 싶은 한국 문화’로 ‘한복입고 고궁 거닐기’가 3위에 꼽혔다. 대학생 김인우(25)씨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이면서도 음식 등과 달리 권하는 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한복 열풍의 이면에는 함정도 있다. 대여점 간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칫 질 낮은 한복을 입는 문화가 자리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한복 열풍은 크게 낮아진 대여비용 덕분이란 게 중론이다. 대여점이 늘면서 시간당 2만∼3만원선이었던 대여료는 이제 시간당 1만원 안팎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단가를 맞추기 위해 질 낮은 소재를 쓴 중국산 ‘공장형 한복’이 시장을 점령하면서, 정작 우리 전통한복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복 업계에서 한복 붐을 마냥 반기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한복 제조업체 관계자는 “디자인만 본 떠 값싼 재질로 만든 공장형 한복이 범람하면서 한복업 전반이 계속해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찍부터 한복 대여점을 운영해 온 정병훈씨는 “출혈경쟁이 심화하면서 품질에 대한 고민이 뒷전이 되고 있다”면서 “다림질이나 세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하루에 여러 번 대여되는 경우도 많다. 처음 한복을 입는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이 시커먼 소매 등을 보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대학생 권예현(24·왼쪽)씨와 독일인 친구 나틀리. |
경기도 화성에서 온 안창섭(56)씨 부부. |
전문가들은 그러나 젊은 세대가 한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지금이 한복 르네상스의 적기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한복진흥센터 박선영 팀장은 “젊은 세대가 한복을 즐기는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인 상황”이라며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일본처럼 기모노를 입으면 택시비를 10% 할인해주는 등 구체적인 혜택이 많아져 한복이 일상 속에 자리잡는다면 관련 산업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감각있는 젊은 디자이너 육성도 당면과제다. 지난해 26년 역사의 전통의상학과가 사라진 배화여대의 박상희 교수(전통의상학)는 “정부에서 전통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취업률’ 같은 정량지표로 평가를 하다보니 한복학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한복을 배우고 싶어도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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