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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20〉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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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8 08:00:00 수정 : 2017-04-07 21: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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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니 마음의 키도 ‘쑥쑥’ 이십 년 전 가을, 우리 부부가 도시를 떠날 때 아이들 나이가 다섯 살, 세 살이었다. 이듬해 첫 농사를 시작하며 밭에 찾아와 놀아 달라는 둘째를 달래기도 하고 때로 야단도 쳐가며 집에서 놀기를 종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여름부터는 저물 때까지 농사일을 놓을 수 없기에 논밭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즈음 네 살배기 딸애는 모기에 물려 징징대면서도 일하는 엄마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귀농 전 세운 세 가지 원칙 중 하나가 ‘사람을 사지 않는다’여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다시피 해서인지 둘째는 아플 때에도 “어린이집에 데려다 달라”며 울던 모습은 우리 부부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감성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아내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시골의 모든 것들과 교감하며 자랐다. 특히 도시의 추억이 남아있는 큰아이와 달리 둘째는 완전한 시골 아이로 변신해 유치원 버스가 서는 동네 입구에서 집까지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길가의 꽃도 살피고 풀을 뜯어 아랫집 소에게 주기도 하며 놀멘놀멘 오느라 귀가는 늘 더뎠다. 한 번은 친구 네서 집까지 세 시간이나 걸려 실종 신고를 할 뻔한 일도 있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근원의 힘은 자연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라 생각하기에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자연과 접촉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두 아이는 비 온 다음 날 마당 가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스스럼없이 잡아서 밭에 넣어주는 꼬마 농부로 변신하고, 함박눈이 쌓이는 겨울엔 언덕에서 비료 포대를 타거나 꽁꽁 언 냇가에서 썰매를 탔다. 사십여 년 전에 우리들이 즐겼던 놀이를 똑같이 경험한 셈이다.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자연놀이.
#이야기가 삭제된 삭막한 교과서가 공부 염증 불러


그렇다면 시골에서 우리 아이들의 학습은 어땠을까? 요즘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별세계의 얘기 같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귀신같이 다루고 교과서보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시험을 위한 학습에 매달리게 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과서는 인류사의 보고라 할 분야별 지식과 이론을 단계별로 정리한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나이에는 피타고라스나 뉴턴의 법칙을 예로 지겨운 공식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의 수학자가 평생을 바친 스토리에 주목하라고 했다. 때문에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아보가드로의 가설과 벤젠의 분자 구조를 발견한 케쿨레의 고뇌와 꿈을 들려주었다. 내가 보기에 근의 공식이나 기체 반응의 법칙이 따분하고 지겨운 이유는 진진한 스토리가 삭제되고 공식만 남은 탓이다. 이는 비단 수학과 과학을 넘어 교과서와 현대 교육 전반이 마찬가지다. 당연히 생활과 유리될 수밖에 없지만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교과서니까, 공부니까….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큰애는 학습 욕구가 있어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둘째는 그야말로 바닥에서 맴돌았다. 고집도 세고 시쳇말로 학습에는 아예 취미가 없는 아이로 보였기에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걱정도 권유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은 것은 피아노 학원과 큰아이가 초등학교 졸업 후 읍내의 영어 학원에 한 달간 다닌 게 전부로, 이 또한 스스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다만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주문한 것은 ‘시작은 너희가 할 수 있지만 끝은 엄마 아빠가 정한다’는 약속이었다. 다른 것과는 달리 피아노는 일종의 생활 기술로 한 번 시작하면 가요라도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학원에 잡아둘 심산이었다. 무슨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쉽사리 싫증을 내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경험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다행이 아이들이 잘 따라주어 큰아이는 육 년을, 작은아이는 오 년을 유지했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서로 다르게 생긴 모습만큼이나 마음의 행로도 달랐다. 큰애는 성취욕이 커서 무슨 일이건 될 때까지 한다. 리코더를 배울 때도 생각만큼 안 되니까 밤이건 낮이건 손에서 리코더를 놓지 않았고 심지어 차를 탈 때도 챙겼다. 둘째는 그림 그리기와 만화, 공상하기를 좋아한다. 이 또한 나중에 무슨 일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할 때 도와 달라고 하면 첫째는 의무감으로라도 하지만, 둘째는 뺀질대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쓴다. 달래가며 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결국 밭에는 우리 부부만 남게 된다.


겨울이면 꽁꽁 언 냇가에서 아이들과 겨울놀이를 함께 한다.
#사고와 경험이 쌓이면 마음의 키도 자란다


그러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큰 변화가 생겼다. 큰애는 큰물에서 놀고 싶다며 천안으로 갔고 둘째는 면내 대안학교인 풀무고에 진학했다. 기숙형 농고인 데다 학습보다는 인성에 초점을 맞춘 학교인지라 아이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학교의 영향으로 생활과 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부탁하기도 전에 “뭐 할 일 없어요?”라며 적극적으로 농사를 도왔다. 입학 전에는 늘 어질러진 방 때문에 아내와 실랑이가 있었지만 입학 후에는 한결 나아졌다. 아마도 한 방에 몇 명이 모여 살기에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가벼운 사안이겠지만 부모로서 큰 걱정거리였는데 학교에서 잡아주니 큰 다행이었다.

고교를 마치고 큰애는 모 여대에 들어갔으나 몇 달 후 반수를 하겠다고 졸랐다. 자기가 원했던 곳이 아니라고 한다. 쉽게 허락할 사안이 아니기에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조건부로 허락했다. 재수를 하기 전 수련원에 가서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아 오라 요청했다. 아이는 한 달간 수련원에서 학습이 아닌 봉사를 하며 부실한 체력을 다졌고, 결심이 서자 공부에 매진해 전년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작은애는 졸업 후 농사를 짓겠다고 하여 일 년간 함께 해봤지만 여러 한계가 보여 다시 사회로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직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래도 계속 집에 있게 해 달라고 떼를 쓰기에 언니와 같은 조건을 달았다. 수련원에 다녀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다짐이었다. 내심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란 복안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수련 중에 생각에 바뀌어 대학에 가기로 했고 일 년여 준비 끝에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다. 준비하는 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이 들었지만, 뜻밖의 후원자가 나타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렇게 삶의 고비고비에 아이를 맡길 곳이 있고 도움을 줄 만한 이를 만나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또 큰애가 반수를 하러 고시텔에 들어갈 때 학습에 방해가 된다며 휴대전화를 건넨 것이나 두 아이 다 집안 형편을 고려해 등록금이 적은 국립대를 선택한 것은 부모로서 미덥고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둘 다 재학 중에 학내에서 ‘알바’를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지난 방학 때도 돈을 벌어 자매가 보름 넘게 미국에 다녀왔다. 진작에 아이들과 ‘대학생활 중 들어간 부모의 돈은 갚아야 할 빚’이라는 데 합의하여, 해외 여행을 자주 간 큰애는 적자요 짠순이 둘째는 흑자다. 낮은 등록금에 각종 장학금, 일을 하면서도 괜찮은 성적…. 부모로서 걱정이 없다.


큰아이 졸업식에 정든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스물 살 때 제일 듣고 싶었던 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또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무엇이 되라 어떤 자격증을 따라고 권유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애들은 지금껏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았다. 굳이 자율과 독립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애들은 적당히 풀어 놓으면 바짝 관리를 할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농부의 오랜 벗인 농우도 마찬가지다. 고삐를 맨 소보다 방목한 쪽이 새끼도 잘 낳고 폐사율도 크게 떨어진다. 하물며 사람은, 생각과 머리가 커 가는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랴. 부모 노릇은 딱 무릎 높이의 울타리면 충분하다.

그러니 아이들 교육 문제로 시골살이가 망설여진다면 걱정일랑 이삿날 동네 정자나무에 붙들어 매시라. 단 교육 대신 교감, 공부 대신 공감이 우선이다. 부모의 걱정과 우려가 아이의 꿈을 일센티도 성장시키지 못한다. 부모가 태산같이 흔들림이 없다면 아이들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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