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만연한 ‘악의 힘’에 대한 고찰
사람에겐 누구나 파괴충동 숨겨져 있어
허무함 메우는 순간의 성취감 때문에 악행
저자 “국정농단 배후는 과잉의 악” 진단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신간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에서 우리의 일상을 잠식해 들어오는 ‘악의 힘’에 대해 고찰했다.
일본의 섬소년 살인사건에서 일본 국민은 가해자인 청소년들을 비난했지만, 그들의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귀축’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긴 청소년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악에 빙의된 채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유의지가 없었던 이들에게 인간의 법으로 재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논리다. 더불어 청소년들의 사형을 주장한 이들 역시 선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의 저자인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국정농단 사태의 배후에는 이른바 ‘과잉의 악’이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모습. |
2015년 일본에서 발생한 ‘섬소년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애도하며 지역 주민들이 꽃다발을 쌓아 둔 모습. 연합뉴스 |
문제는 점차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서 있는지 모르거나, 삶의 기준이나 가치가 애매해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가 초래한 불평등과 불공정은 이렇게 공허함을 파고든 악을 더욱 키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회에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람들을 허무함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을 세상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과의 연대의식이 필수적이다. 흉악범들을 증오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역시 함께 살아가려는 연대의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러한 연대의식에서 희망을 찾으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멈추지 않고,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악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최근 국정농단 사태에서 일어난 촛불 물결 역시 이런 연대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국정농단 사태의 배후에는 이른바 ‘과잉의 악’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이 진부한 악에 포기하거나 무관심을 가장하지 않았고, 악을 응시하며 다시 한 번 새로운 민주화를 향한 행보에 나섰다는 점에서 한국은 빛나 보인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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