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의식 속에서는 여러번 죽고 사는게 인생”

입력 : 2017-03-24 03:00:00 수정 : 2017-03-23 21:53: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황현진 장편 ‘두번 사는…’ 펴내
1979년 10월 26일 두 명의 박정희가 죽었다. 하나는 실제 역사 속 1917년생 남자였고, 또 하나는 같은 이름을 가진 1960년생 여자였다. 여인 박정희는 분만 중에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살았다. 그 아이 ‘구’는 김구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고심해서 지은 것인데, 짓고 보니 박정희나 김구나 모두 총에 맞아 죽은 이름이어서 아비 조금성은 방바닥을 내리쳤다. 황현진(38·사진)의 두 번째 장편 ‘두 번 사는 사람들’(문학동네)은 ‘구구’라고 불리게 된 그 아이와 조금성이 경북 구미 쯤으로 상정된 도시로 내려가 하숙집을 열면서 모인 군상을 중심으로, 그들과 연계된 인물들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짠하고 때로는 비장한 톤으로 줄줄이 풀어낸다.

하숙집에 들어온 기욱, 용태, 노파를 축으로 이어가되 이들의 출생과 연관된 윗세대들이 종횡으로 등장한다. 이들 이야기는 하나의 축으로 이어지지 않고 각각 개별적인 몫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한 대목씩 따로 떼어 읽어도 무방하다. 각 조각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인간형을 드러내면서 지나온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조금성은 조복남과 김말녀의 외동아들인데, 복남이 감나무에서 떨어져 씨를 생산할 수 없는 몸으로 소문이 파다하던 터에 아이가 생겨서 금성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복남은 친구가 일본으로 유학 간다고 슬퍼서 함께 술을 마시다 얼떨결에 시위대에 휩쓸려 독립운동가로 소문났고, 김말녀는 째보 남편에게 시집가는 걸 거부했다가 여성운동가로 소문난 캐릭터. 독립운동가와 여성운동가의 결합으로 나온 사생아 같은 외동아들이 조금성이다.

금성이 박정희와 만나게 된 사연, 박정희의 부모 두남과 두자에 얽힌 사연 등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기욱은 컬러텔레비전을 만드는 공장에서 산업역군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다 금성의 전기기사 이력을 빌려 쓴 탓에 감전돼 죽는다. 영태는 서해 항구도시 양공주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엄마가 미군부대 앞에서 저항했던 일을 깊이 새겨 최루탄 날리는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수많은 인물들에 개별적인 특징을 부여하고 흥미롭게 살려낸 솜씨가 만만치 않다. 황현진은 “세월호의 죽음이든 궁정동의 암살이건 굴곡진 수난의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은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반드시 숨이 끊어지는 실제 죽음이 아니더라도 의식 속에서는 여러 번 죽고 다시 사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