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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난속에서도 희망을 키웠던…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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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3 10:00:00 수정 : 2017-03-22 20: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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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추억여행’ 인천 배다리마을·수도국산
쌀 한 되를 산 후, 남은 한 손에 연탄 두 장을 들었다. 오늘 밤은 다행히 아이들이 춥지 않게 잠을 잘 수 있을 듯싶다. 이번에도 가게에 돈을 주지 못해 치부책에 목록을 적었다. 월급이 나오면 밀린 외상값을 갚아 치부책에서 목록을 지울 것이다. 점방을 지나니 군것질거리가 눈에 띈다. 이불을 덥고 추위를 이겨내고 있을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안 된다. 사치다. 월급 날 사주리라 마음먹고 언덕배기를 오른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 숨이 찰 만할 때쯤 도착했다. 대문 옆 나무 문패가 보인다. 내 이름이 아니다. 방 한 칸에 우리 가족이 옹기종기 부대끼며 살고 있다. 언젠가 내 이름을 새긴 문패가 달린 집에서 살 날을 꿈꾸며 오늘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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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때였다. 그저 가족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열심히 사는 게 전부인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이 어떠했는지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옛날엔 이렇게 살았다”며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광복 이후부터 산업화 시절인 1970년대까지의 힘겨운 삶을 들려주더라도 그리 와닿지 않는다.
인천 원도심인 동구는 시간이 멈춘 듯 옛 시절의 모습이 보존돼 있다. 인천은 중구와 동구가 중심이었다가 점차 경기 지역을 흡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른 지역은 신도시로 개발돼 휘황찬란하지만 인천의 뿌리인 원도심은 그렇지 않다. 개관한지 60년이 넘은 미림극장은 고전영화 전용상영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간혹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면 인천 원도심인 동구로 가보자. 인천은 중구와 동구가 중심이었다가 점차 경기 지역을 흡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른 지역은 신도시로 개발돼 휘황찬란하지만 인천의 뿌리인 원도심은 그렇지 않다.
인천 동구청 인근 옛 시장 골목.
시작은 동인천역이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중앙시장을 지나면 단층 또는 2층짜리 저층 건물들이 대부분인 곳이 나온다. 배다리마을이다. 시간여행의 출발점이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배를 대는 다리가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곳이다. 그 전까지는 건물 사이로 난 수로로 배들이 들어와 난전이 섰다. 그 수로는 모두 매립돼 이젠 도로가 됐다.
한미서점에 헌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이곳은 시장뿐 아니라 병참공장, 성냥공장, 간장공장, 고무신공장, ‘왁친’(천연두 백신: 독일어 vakzin의 일본식 표기) 공장 등 당시로는 가장 발전한 기술을 가진 공장들이 모인 산업단지였다. 이에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조선인 노동자들이 터를 잡았다. 광복을 맞은 후 일본인들은 한국을 떠나면서 상당수 짐들을 놔두고 떠났는데 그 대부분이 책이었다. 일본어로 된 책은 불쏘시개로 쓰고, 한글로 쓰인 책은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6·25전쟁 후엔 본격적으로 헌책방들이 자리를 잡았다. 
한미서점의 독서 수첩.
한때 40여곳의 헌책방들이 모여 있어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5곳 정도만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책방인 ‘집현전’은 1953년 문을 열었다. 그 옆의 한미서점, 아벨서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중 노란색으로 칠해진 한미서점은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한 곳이다.
배다리마을 헌 책방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집현전.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도 20대 시절 이곳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 남편이 주안염전에 일자리를 얻자 박경리 선생은 이 동네로 이주했다. 고물상에서 무게로 재서 팔던 헌책을 구입해 책방을 열었다. 박 선생은 훗날 이 동네에서 살던 시절에 대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요일가게는 한 장소에서 요일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헌책방 골목을 둘러본 후엔 ‘요일가게’도 들려보자. 한 장소에서 요일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월요일에는 소설읽기, 수요일엔 수요미식회, 목요일에는 영화상영, 토요일엔 카페 등으로 운영된다.
배다리마을의 여인숙 골목.

배다리마을은 헌책방 골목뿐 아니라 다른 골목에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여인숙들이 모여 있는 골목과 2층 벽에 한자로 대인상회란 글자가 새겨진 옛 좌판 골목 등이 시간의 흐름을 무색케 한다.

옛 골목을 둘러본 후엔 수도국산으로 향하자. 배다리마을만큼 오래된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그 시절 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달동네 박물관이 수도국산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인천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국이 있어 수도국산으로 불린다. 수도국뿐 아니라 고향을 잃은 피란민과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달동네가 들어섰던 곳이다.
인천 동구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는 팥빙수 기계, 아이스크림 용기 등 예전에 사용했던 물품들이 전시돼 있어 향수를 자극한다.
박물관 내 어두컴컴한 조명을 따라 조성된 집들을 보면 슬레이트, 래핑(포장재), 현대식 기와 등 옛 주택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전봇대와 담벼락엔 ‘혼식으로 부강 찾고 분식으로 건강 찾자’ ‘썩은 자는 유흥가로 애국자는 일터로’ 등 지금 보기엔 촌스러운 문구의 포스터 등이 붙어있다. 이외에도 지금의 포인트카드와 같은 1954년에 쓰인 ‘단골증’ 등 옛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포인트카드와 같은 1954년에 쓰인 ‘단골증’.
동인천역 부근 ‘양키시장’은 미군이 쓰던 군복 등을 파는 곳으로, 지금도 찾는 이가 꽤 많다.

돌아가는 길엔 중앙시장을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중앙시장에서 동인천역 부근은 ‘양키시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미군이 쓰던 군복 등을 팔던 곳으로, 지금도 찾는 이가 꽤 많다. 양키 시장을 지나면 순대골목이다. 순댓국 한 그릇으로 시간여행은 마무리된다.

인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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