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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한 토막. 암소가 많은 외양간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젊은 황소가 기뻐하며 늙은 황소에게 말한다. “달려가서 몇 마리 차지하죠!” 늙은 황소는 느긋하게 답한다. “아냐. 천천히 가서 모두 차지하세!”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무릎이 약해져 잘 뛰지 못한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그래도 세월이 갈수록 어리석음이 줄어들고 지혜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 노인에게 길을 묻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뮤얼 앨먼은 시 ‘청춘’에서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고 읊는다. 나이는 마음의 자세다. 젊어서부터 노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순에도 젊게 사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든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피부의 노화는 훈장이라 하더라도 정신에 주름살이 잡히면 영혼이 시든다.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일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은둔자인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58)씨와 같이 나타났다. 칠순이 넘은 딸, 육순이 넘은 아들 둘도 같이 불려왔다. 롯데그룹 지배자들이 한꺼번에 모인 곳은 아름답지 않게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이었다. 이들은 그룹 차원의 경영비리로 재판에 회부됐다. 휠체어를 타고 입장한 신 총괄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니 누고” “와 이라노”와 같은 말을 반복하고 횡설수설했다. 지팡이로 치며 “롯데는 100% 내 회사인데 무슨 재판이야”라고 일본어로 소리치기도 했다. ‘신격호의 여자’와 딸 아들은 눈가를 훔쳤다.

신 회장은 19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했다. 밥솥을 만들다 풍선껌으로 대박을 치면서 롯데제국을 일궜다. 지상 555m 높이로 솟구친 롯데월드타워를 지어올린 제국의 제왕이다. 누구나 불멸을 꿈꾼다. 신 총괄회장은 제국을 세웠으니 그런 마음이 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제국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성공과 철저한 몰락밖에 없다”고 했다. 떠날 때, 그만둘 때를 잘 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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