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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겨울서 봄까지 광장 달구었던 갈등… 마침표 찍자

입력 : 2017-03-09 21:27:18 수정 : 2017-03-09 21: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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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봄호특집 ‘작가 4인이 본 촛불과 태극기’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래 줄기차게 달려온 탄핵열차가 오늘 종착역에 도착한다. 겨울에서 봄의 입구까지 내내 광장을 달구었던 ‘촛불’과 ‘태극기’ 시위도 절정에 이르고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연인원 10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인파와 그들이 들고 나온 상징물은 작가들에게 어떻게 포착됐을까. 계간 ‘문학동네’ 봄호 특집 ‘촛불과 태극기’에 기고한 30~60대 작가 4인의 이야기는 ‘운명의 심판일’인 오늘 각별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대학생들은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애국가를 부르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나는 그 태극기를 보면서 복받치는 울음을 느꼈다. 아, 우리에게도 나라가 있구나, 우리는 고아가 아니고 난민이 아니로구나, 이 절망과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구나… 아마도 그건 안도감과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김훈, 김사과, 이기호, 이영광 작가.
4·19 때 중학교 신입생이었던 소설가 김훈(69)은 ‘때리는 자들의 권력이 무너져버린 거리’를 행진하는 대형 태극기 앞에서 울음이 복받쳤다고 했다. 그는 그때의 태극기는 순결했고 강렬한 지향성으로 아름다웠지만, 태극기와 함께 뒤섞인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감이 소년기의 정치의식이었다고 술회한다. 박정희 대통령 전성시대에는 서울 도심 지역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이나 외국 원수들이 김포공항을 드나들 때 연도에 동원돼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는데 동원이 거듭되면서 “태극기가 억압과 지배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사춘기의 정치의식은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작금의 태극기 물결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일흔 살을 맞는 세모에, 내 소년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태극기를 흔드는 애국단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스스로 물었다. 그 질문은 난해했다. 한 시대가 가건물로 붕괴되는 듯싶었다. …왜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촛불의 대열 앞에서 펄럭이지 못하는가. 광복 칠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왜 태극기는 국민적 보편성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왜 태극기는 여전히 가건물 위에서만 펄럭이는가.”

나이든 선배 세대의 격정에 비해 젊은 소설가 김사과(33)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보낸 ‘내전전야’(內戰前夜)라는 기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던 날 맨해튼 5번가 고급 레스토랑의 표정관리하는 백인들과 구호를 외치는 분노한 시위대를 보면서 또 다른 분노가 트럼프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양편으로 갈린 사람들은 사실상 똑같은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공유하지만 왜 그들은 한편이 되지 못하고 반으로 찢겨” 있느냐고 묻는다. “과연 누가 나의 적이고, 누가 나의 편인가? 아니, 왜 저들은 나의 적이고, 왜 당신은 나의 편인가?” 김사과는 “내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면서 “행운을 빈다”고 조소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달콤한 말을 믿지 않는다. 사실조차 냉소한다. 정치에 대한 환멸은 극에 달했고, 뉴스는 사기꾼들의 감언이설로 전락했다. 더 이상 타인들을 믿을 수 없게 된 우리는 지금 지옥에 살고 있다. 지옥의 난민이 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패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빼앗아가는 자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과연 ‘패싸움’의 디스토피아만이 우리 앞의 세상일까. 40대 소설가 이기호(45)는 유머를 잃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그는 “한국문학에서 끝까지 유머리스트의 길을 유지하는 방법은, 젊어서 온갖 유머러스한 소설을 잔뜩 쏟아내다가 갑자기 절필하거나, 혹은 요절하는 것, 그 두 가지 길밖엔 없는 것 같다”면서 “이 땅의 유구한 역사는 선배 작가들에게서 유머라는 장르 자체를 아예 빼앗아가버리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50대 시인 이영광(52)도 절망보다는 희망의 편이다. 그는 “일천만 거주민의 피땀과 눈물과 웃음과 똥오줌을 다 받아 담고도, 신음 한 점 없이 흘러가는 저 한강이 늘 한강이었듯이” 이 땅의 희망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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