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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TV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백일섭이 아내와 ‘졸혼’했다고 공개했다. 졸혼은 혼인관계는 유지하면서 부부가 서로 삶을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고희를 훌쩍 넘긴 그는 결혼 40여 년 만에 서로를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는 “예의를 지키며 정답게 사는 것이 좋지만 나는 성격상 그럴 수 없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방송이 나가자 늘그막에 부부가 서로 잔소리하지 않고 각자 삶을 존중하며 즐겁게 산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졸혼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펴낸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일본 노년층의 신풍속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그간 생소했는데 이번에 공론화되는 양상이다. 원조격으로 영화배우 엄앵란·신성일 부부가 꼽힌다. 이들은 오랜 기간 서울과 대구에서 각자의 삶을 살며 졸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통계는 없지만 졸혼 방식으로 사는 부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 졸혼일까. 백년해로에 목을 매지 않는 시대 흐름 탓이 크다. 2015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하다 이혼한 부부가 3만2626쌍이다. 전체 이혼의 29.9%로 3쌍 중 1쌍꼴이다. 둘이 정면 충돌해 황혼이혼으로 치닫기 전에 신사협정을 맺은 것이 바로 졸혼인 셈이다. 시쳇말로 이혼 아닌 이혼이다.

가족관계 전문가들은 기대수명 100세 시대인 만큼 졸혼 형태의 부부는 앞으로 더 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세태를 찬찬히 보면 중년 남성의 위기가 보인다. 황혼이혼도, 졸혼도 요구하는 쪽은 여성이 압도적이다. 제 손으로 세탁기 하나 못 돌리는 남성들에겐 긴장을 예고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내로부터 “애들 다 크면 보자”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미 옐로카드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롤모델이다. 30년 맞벌이하면서 아내에게 “밥 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고 한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밥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 없는 남성보다 남성 없는 여성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말은 진리다. 졸혼의 함의를 남성들이 알아차려야 한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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