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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트럼프에 배우는 사법부 무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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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7 02:17:28 수정 : 2017-04-11 14: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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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엔 사법부도 화풀이 대상 / 반이민 행정명령 중지 판사 비난 / 한국선 대통령측 헌재 모독 눈살 / 백악관 좌충우돌 반면교사 삼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투적이다. 에둘러 가는 법이 거의 없다. 이를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는다. 그에겐 적과 동지만 있을 뿐 제3자는 없다. 의회는 물론 사법부,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 CNN방송, 정치전문매체 등을 향해 진보 딱지를 붙이며 비난하고,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했다. 사법부도 화풀이 대상에 올렸다. 제임스 로버트 시애틀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소위(일개) 판사’라 칭하고 “혼란에 책임을 져라”고 주장했다. 호기롭게 공표했던 반이민 행정명령에 효력 중지 결정을 내린 로바트 판사를 향한 분노였다. 제9 연방항소법원이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때엔 “법정에서 보자”며 치기를 드러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마저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했다며 트럼프를 비판했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는 오히려 “미국 법원은 매우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판사들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던 존 제이는 대법관 재임 중 두 차례 선거에 나섰다가 뉴욕주지사로 당선됐다. 그는 뉴욕주지사가 된 뒤에야 대법원을 떠났다. 20세기 초 대법관으로 활동한 찰스 휴스는 대선에서 우드로 윌슨에게 도전했다가 1930년 판사로 복귀했다. 반대로 사법부에 불만을 제기한 대통령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는 2010년 국정연설에서 기업의 무제한 선거광고를 허용한 대법원의 1개월 전 결정을 비판했다. 특수 이해집단이 선거판에서 무제한으로 자금을 사용할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국정연설을 듣기 위해 의사당을 찾은 자리에서였다. 미국인이 존경한다는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존 마셜 대법원장을 향해 “뿌리 깊은 위선자”라고 수차례 비판했다.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의 노예제 유지 판결을 내린 토니 로저 대법원장과 두고두고 갈등을 벌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에 반대하는 대법관들이 늘자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정담’에서 대법관의 정년을 70세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 든 대법관들이 자신들의 정신적 병약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이 결정을 내릴 때 이들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는 거의 없다.

사법부가 사회적 변화에 스스로 응답한 경우는 더러 있었다. 법원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기관이지만 사회 흐름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도 종종 반영됐다. 오바마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대법원이 동성애자 결혼 허용과 낙태금지 반대 등 진보적 결정을 많이 내렸다. 보수적 대법관이 다수였지만, 사법부의 정의 실현 의지와 사회적 가치가 절충된 결정이었다. 트럼프의 정책 집행을 중지한 결정을 내린 연방지법 판사도 조지 W 부시가 지명한 보수적 성향의 판사이다. 트럼프가 존경한다는 보수파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두고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헌재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 헌법재판관과 변협 회장 등으로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들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가 하면 고성을 지르며 헌재를 압박하고 있다. 탄핵 심판 최종 변론 날짜(27일)가 결정된 뒤에도 치열한 법리 대결을 하지 않고, 법정 혼란만 야기했다. 대통령의 전격적인 하야 선언설도 한때 제기됐다. 대통령까지 지낸 피청구인이나 대리인단이 사법 체계를 부정하는 모습은 그들이 걸어온 길과 미래를 온전히 부정하는 꼴이다. 트럼프가 집권 초반부터 경험한 극대치의 혼란은 연방지법과 항소법원의 잇따른 판결, 법원을 향한 모독에서 비롯됐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자 ‘닥치고 공격’만 하던 트럼프도 조금 물러섰다. 이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세밀한 반이민 행정명령 수정안을 만들며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는 점점 나락이다. 체면도 실익도 없는 파괴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좌충우돌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면 과욕일까.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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