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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에서 잡히는 숭어는 유난히 육질이 달다. 눈 내리는 바다에서 잡아올린 숭어를 눈 설(雪)자를 앞머리에 붙여 ‘설숭어’라고 불렀다. 설숭어, 시옷들이 리을 이응과 어우러져 발음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싱그러운 이름이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고 바야흐로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산란을 앞둔 숭어의 맛은 절정에 이른다. 가을부터 기름이 오르기 시작해서 산란기가 되면 눈꺼풀에 기름기가 잔뜩 끼어 앞을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산란기의 눈먼 숭어에게는 꽃낚시가 제격이다. 미끼를 끼우지 않고 바늘 주변에 비닐을 묶어놓으면 물살에 너풀거리는 비닐의 휘황한 빛에 현혹돼 숭어들이 달려든다. 꽃인 줄 알고 달려들었던 숭어는 날카로운 훌치기 바늘에 몸이 꿰인다. 눈먼 녀석들은 대담하게 연안의 수면 위를 무리지어 회유한다. 배아래서 꿈틀거리는 수백만 개의 알들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딘가에 뿌리기는 뿌려야 하는데, 아무 곳에나 산란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거나 생을 통째로 투신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몫을 감당하고 싶은 용기일지 모른다. 서해 바닷가에서 만났던 늙은 아낙의 숭어 이야기.

“우리 집 양반이 살아 있을 때는 숭어를 한 양동이 잡아오면 밤에 이렇게 숭어국을 끓여놓고 거나하게 한잔씩 했다우. 숭어란 놈들 이맘때면 알을 낳을라고 저그 강 밑으로 올라오는디 참 대책이 없는 고기들이어라우. 새끼가 머시다고 그런 미물들까정, 알 낳을 디를 찾느라고 물불을 안가린당게. 원래는 눈이 아주 밝은 고긴 디 알을 잔뜩 배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모양이여.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죄다 눈먼 봉사가 되고 만당게. 미끈하게 생겼다구? 잘 생기기만 허면 머 혀. 묵적지근하게 멀 기다릴 줄도 모르고 의심은 또 월매나 많은 디. 산란기가 아니면 그놈들 잡기가 쉽지 않어. 그물 치는 소리만 들려도 삼십육계를 놓아버려. 나가 비록 포장마차에서 술장시를 허고 있지만, 한때는 참 좋은 시절이 있었지라. 서방 있겄다, 넘부럽지 않게 배도 한 척 있었겄다, 철철이 고기를 잡아다가 팔고 놀러도 다니고…. 근디 숭어 입에다가 우리 영감을 바쳐버린 꼴이니 내가 이놈들을 국을 끓이고 회를 쳐도 술만 마시면 분이 안 풀린당게.”

영감님은 겨울 아침 홀로 바다에 나갔다가 실족을 하는 바람에 물속에서 숭어들과 그물에 한데 엉키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설숭어 철이 가고 살구꽃이 피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눈먼 숭어들이 영감님 안부를 전해줄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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